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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블와이파파 Dec 09. 2024

아버지가 없던 날, 우리의 대화.

아버지 같은 아빠가 되기 싫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출근하시면 집에는 나와 두 명의 누나만 남았다. 큰누나는 나이 차이가 많아 주로 친구를 만나거나 밖에서 활동하는 일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나는 둘째 누나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둘째 누나와는 정이 많았다.


누나들은 공부를 잘했다. 특히 둘째 누나는 가정 형편상 학원을 다닌 적이 없었는데도 초등학교 때부터 늘 학급 임원을 했고, 나중에는 전교 임원도 맡았다.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그런 누나가 자랑스러웠다. 방학이 되면 누나에게 공부를 배우기도 했다. 영어 알파벳은 거의 누나에게 배웠고, 산수와 다른 과목도 누나가 가르쳐주었다. 흔히 가족에게 공부를 배우면 어렵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기억이 없다. 누나는 방학 숙제를 도와주기도 했는데, 돌이켜보면 숙제의 반 이상을 누나가 해줬던 것 같다. 정말 누나 덕을 많이 보며 자랐다.



어느새 나도 두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첫째는 딸이고, 둘째는 아들이다.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아들도 누나가 있어서 좋겠다. 아빠도 그랬거든.”
그 말을 하며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로 돌아가곤 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아버지가 출근하면 누나들과 시간을 보내고, 아버지가 퇴근하면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와 마음으로 깊게 교감한 기억이 없다. 가끔씩 삼 남매가 각자의 이유로 아버지에게 섭섭했던 점들을 떠올린다. 한때는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누나들에게도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 나름의 아쉬움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누나들이 성인이 된 후, 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놀라곤 했다. 두 누나는 아버지에게 정말 잘했다. 그 모습은 내가 아버지에게 보이는 태도와는 비교될 만큼 다정하고 존경심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린 시절의 앙금이 남아서인지 아버지에게 투명스럽게 대하곤 했다.


몇 년 전 여름휴가 때, 일본에 있는 큰누나를 만나러 갔다. 큰누나는 하던 일의 연장선으로 일본에서 살고 있었고, 5년에 한 번 정도나 한국에 올 수 있었다. 우리 가족과 둘째 누나의 가족이 함께 일본으로 가서 모두 모였다. 좋은 시간을 보냈고, 여행이 끝나갈 즈음 마지막 날 밤, 자연스럽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버지는 이번 여행에 함께하지 않으셨다.

누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그동안 마음속에만 묻어 두었던 상처들이 하나둘 드러났다. 삼남매 모두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느꼈던 아픔과 아쉬움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울었고, 밤새도록 대화했다.


큰누나는 아버지가 엄격했던 이유를 어른이 된 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어린 시절의 외로움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둘째 누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인정받으려고 더 노력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나 역시 내 안에 남아 있던 감정들을 꺼내며, 누나들과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서로를 위로했다. 큰누나는 나에게, 나는 둘째 누나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아픔을 나눴다. 그날 밤, 우리 삼남매는 비로소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게 되었다.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고, 이제는 이해할 수 있는 것들도 있었다. 그 복잡한 감정들이 우리를 울게 하고, 위로하게 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고민이 많았다. 이 이야기가 아버지를 잘못된 사람으로 보이게 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모든 기억은 어린 시절의 것일 뿐이고, 지금의 아버지는 그 시절의 모습과 다르다는 것을. 아버지에게 일본에서 나눈 대화를 말씀드리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그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를 더 미안해하실 것 같아서다. 때로는 어떤 기억은 마음속에 묻어두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과정은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겁이 많고 위축된 아이였다. 지금의 나는 그 아이에게 말을 건넨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네가 최선을 다해서 잘 자라줘서 고마워. 그리고 그런 너를 진작 보듬지 못해서 미안해.”


그렇게 글을 쓰며 과거의 나를 이해하고 위로한다. 그 시절의 나는 그저 불완전한 어른들과 불안한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었던 아이였다. 지금의 나는 그 아이를 품어주며, 어른이 된 나 자신에게도 다독이는 말을 건넨다.


가족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관계는 조금씩 변화한다. 아버지와의 관계도, 누나들과의 관계도 그렇게 성장해왔다. 삼남매가 함께했던 일본에서의 밤은, 우리가 서로에게서 치유와 공감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를 위로하고, 현재의 내가 그 상처를 마주하며 글을 쓰는 이 과정은 나 자신과 가족의 관계를 회복하는 첫걸음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깨닫는다. 가족은 완벽하지 않지만, 함께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더 단단해질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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