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짐만큼은 미리 덜어두겠다는 준비
“나무에게로 가리 / 해에게도 가지 않고 달에게도 가지 않고 / 한 그루 큰 말씀 같은 나무에게로 가리 // 깊고 고요한 잠 / 나뭇잎은 쌓이고 세상에서 나는 잊히고 (---) ” < 수목장 / 권대웅 >
언제 죽을지 모르면서, 죽음 준비는 언제부터 해야 할까. 오히려 알 수 없기에 ‘미리 준비’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암을 앓았던 선배 한 분은 ‘얼마 전 납골당을 예약했다’며 사진을 보여준다. 마치 편히 쉴 집을 마련해 놓은 듯 편안한 얼굴이다. 알 수 없는 육체적 고통은 피할 수 없을지라도 정신적 짐만큼은 덜어두겠다는 미리 준비다.
2천5백 년 전, 공자님은 제자 계로(季路)가 죽음에 대해 묻자 “삶도 잘 알지 못하는 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未知生 焉知死)”라고 답하셨다. 현대는 어떨까. 김영민 서울대 교수는 “아침에 일어나 죽음을 생각하면, 삶을 병들게 하는 뻔뻔한 언어들과 번쩍이는 가짜 욕망들을 잠시 몰아낼 수 있다”라며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역설(逆說)을 펼친다.
느티나무 아래서 시 <수목장>을 암송하며 맨발로 걷는다. ‘해에게도 달에게도 가지 않고, 나무에게로 가겠다’고 따라 읊어본다. 혼(魂)은 하늘로 백(魄)은 땅으로 흩어진다 했으니, 만약 혼백(魂魄)이 나무에게로 함께 간다면 그건 소멸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일지 모른다. “ (---) / 이 세상 천지간 무소유로 선 / 나무에게로 가리 // 사람에게도 가지 않고 / 저 세월 속으로도 흐르지 않고 /한 잎 피고 지는 것도 화엄(華嚴)인 나무에게로 가리 < 수목장 / 권대웅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