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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 김종남 Oct 20. 2022

서두르지 않고 걷고 있나요?

 삶의 의미는 생노병사를 겪으면서 변한다

 “행복은 여기에, 그리고 지금 있습니다 /

걱정거리를 떨쳐버렸습니다 /

서두르지 않고 가야 할 곳이 있으며 /

해야 할일이 있습니다 ”

 명상걷기의 성자. 틱낫한 스님이 명상 걷기를 하며 부른 노래 말이다.

나는 지금, 서두르지 않고 가야 할 곳이 있나?

나는 여기에, 서두르지 않고 해야 할 일이 있는가?


                                      내소사 템플스테이 걷기 명상 (이미지출처: youtube.com)




"요즘 삶의 의미를 모르겠어요.” 오랜만에 만난 후배가 술 한잔하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무슨 답을 바라고 한 말 같지는 않다. 대꾸가 떠오르지 않았다. ‘삶의 의미!’, 정말 오랜만에 들어본 말이다. 대학생 때 하숙방에서 소주잔 돌리며 멋모르고 떠들던 주제였었다. 군 제대 후 취업을 못 하고 방황할 때 가슴앓이를 하던 주제였다.


 후배는 장년도 아닌 노년이다. 노년에 ‘삶의 의미’로 가슴앓이를 하다니! 후배는 정년 후 친구 회사 일을 도와오다 최근 그만두었다. 갑자기 출근할 일이 없어지니 허전함이 밀려왔을까. 우스갯말로 그는 ‘예일대학생(예순 넘도록 일자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50대 후반부터 ‘건국대학생(건강하게 국민연금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처지에서 보자면, ‘65세 정년이 너무 빠르다’고 말하는 대학교수처럼 보인다.


 그런데, 듣고 보니 ‘삶의 의미’가 정작 필요한 사람은 일자리 없는 노년일 것 같다. 청년 장년들은 직장에서 매일 일에 몰두하여 생계 해결해야지, 또 가족 돌보아야지, 삶의 의미 찾느라 고민할 겨를이나 있을까, 일하는 자체가 사는 의미일 것이다. 날마다 몸을 묶어놓는 일자리가 없어지고 가족부양의 굴레마저 헐거워진 노년에는 사실 몸과 마음을 바로 세우고 이끌어줄 ‘사는 이유, 동기, 보람’이 더 필요하다.


 일자리를 오래전 떠난 난 그동안 어찌 지내왔나. 고민하며 삶의 의미를 찾았던가? 한문 배우기, 인문학 강좌 듣기, 연재칼럼 쓰기, 올레길 둘레길 걷기, 남도 한바퀴, 멘토링 봉사, 아무렇게나 살아오진 않은 느낌이다. 작은 꿈도 있다. 한문 배우기는 ‘손주에게 천자문을 가르쳐 주고 싶다’, 글쓰기는 ‘열심히 계속해 책 하나 내고 싶다’는 꿈이다. 이런 꿈을 ‘삶의 의미’라고 내세울 수 있을까.


 ‘의미 찾느라 고민하지 않고도, 재미있게 잘 지내고 있지 않나.’ 자위해본다. 그래도 가끔 발걸음에 힘이 빠지는 날이 있다. 어떤 날은 등대 없는 밤바다를 헤매듯 막막함이 느껴지는 때도 있다. 백만장자가 되고 싶어 복권 사는 꿈처럼 작은 꿈들은 검불같이 가볍게 날아간다. 그런 날은 당장 날아가지 않고 오래 깨지 않는 큰 꿈을 고민한다. 가슴앓이하는 ‘삶의 의미’란 바로 그런 오래가는 큰 꿈 아닐까.


 “죽는 날까지, 되도록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언론인 홍사중씨가 ‘죽어도 별로 이상하지 않은 나이’라면서 78세 때 쓴 꿈이다. 그에게 삶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늙는다는 것 죽는다는 것>에서 그는 “매일매일 늙음을 배워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 후회 없이 늙고 후회 없이 죽음을 맞기 위해---”라고 말한다. ‘죽음의 고별사를 미리 써놓은 여류시인’등 그는 후회 없이 죽음을 맞았던 많은 예를 들었다.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다. 또 생로병사를 겪으면서 그 의미도 변한다. ‘인생은 매일 하루씩 죽어가는 것’이라는 노년땐 ‘죽음의 의미’일 수 있다. ‘어떻게 잘 사느냐’는 의미를 찾는 고민이 아니라 ‘어떻게 잘 죽느냐’는 의미를 찾는 고민이다. 시인 이성복은 “인생이 뭔지 고민하지만, 고민하는 것 말고 달리 인생은 없어요.”라고 말한다.


 재일 한국인으로 정체성 혼란을 극복하느라 젊은 시절 오래 방황했던 강상중 동경대교수는 <고민하는 힘>에서 한국독자들에게 “‘고민하는’ 것이 ‘사는’ 것이며 ‘고민하는 힘’은 ‘살아가는 힘’”이다, 고민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라”고 말한다.


 지금, 나는 서두르지 않고 걸으며, 늙음과 죽음을 고민하고 있는가?      2017.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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