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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 김종남 Feb 10. 2023

한 달 벌어 일 년 살 수 있습니까?

소로가 말하는 '신의 직장'은 일용직이었다

              올해 한국대학생들이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대출해 읽은 책은

                <1Q84>, <신>, <해리포터 시리즈> 순이란다. 

              소로의 <월든>은 언제쯤 대출 인기순위에 오를 수 있을까?




“이 직업은 한 사람 먹고사는데 1년에 30일에서 40일만 일하면 된다.” 천국 얘기일까, 아니 ‘신의 직장’ 얘기일까? ‘19세기 자유주의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가 말하는 신의 직장은 ‘일용직(날품팔이)’이었다. 소로는 <월든>(강승영 옮김, 이레) 84쪽에 “날품팔이(日傭職)는 가장 자유스러운 직업이며 일과가 끝나면 자기 노동과 관계없는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반면 고용주는 항상 이 궁리 저 궁리하며 일 년 내내 숨 돌릴 틈이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200년 전 이야기이지만 일용직으로 한 달 일하고 그 돈으로 일 년 먹고살 수 있을까? 실제로 소로는 하버드대를 20세에 졸업한 후 측량기사, 목수, 정원사, 농부 등 오직 육체노동으로 5년 이상 생계를 해결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28세(1845년) 때는 가장 가까운 민가가 1마일이나 떨어진 월든 호숫가에 3개월에 걸쳐 5평 통나무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2일 머물면서 새벽에 호수에서 멱 감고, 호미로 콩밭 일구고, 낚시질 사냥하고, 산책하고 일기 쓰며 지냈다. 자급자족 생활을 실천했다. 


소로는 20세부터 하루도 빼지 않고 날마다 일기를 썼다. 그 일기를 바탕으로 37세 때(1854년) 쓴 ‘자급자족 체험담’ <월든>은 당시 인기가 없었다. 45세(1862년) 폐결핵으로 죽을 때까지 초판 2천 부가 다 팔리지 않았다. 그러던 <월든>은 21세기 들어 날개 돋듯 잘 팔린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108쪽)”라는 외침이 ‘나중에 아홉 바늘 수고를 막는다고 오늘 천 바늘을 꿰매고 있는’ 현대인 가슴에 와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피로사회’에 지쳤다면서도 ‘빨리! 빨리!’에 물들어버린 한국에서 ‘월든’ 이야기는 어떻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정작 <월든>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양극화 철벽, 취업절벽에 도전하고 있는 ‘취준생’아닐까. 소로도 <월든> 시작 부분에 이렇게 밝힌다. “이 책은 가난한 학생들을 위하여 특별히 쓰였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밖의 독자들은 자신에게 해당되는 대목만 받아들이면 되리라.(12쪽)” 


저명한 미국의 동화 작가 E.B.화이트(1899~1985)도 “만약 우리 대학들이 현명하다면 졸업하는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졸업장과 더불어, 아니 졸업장 대신 <월든>을 한 권씩 주어 내보낼 것이다.”라고 추천했다. 올해는 소로가 태어난 지 2백 년이 되는 해, <월든>을 20여 년 만에 다시 읽었다. ‘19세기 가난한 학생’도 아니고 ‘20세기 대졸 생’도 아닌 ‘21세기 기타독자’인데도 ‘해당되는 대목’이 훨씬 많아졌다. 


21세기인 지금 <월든>은 대졸 생보다 오히려 기타독자에게 더욱 필요한 고전이 되었다. 소로는 “고전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유일한 신탁이다. 가장 현대적인 질문에 대하여 델포이 신탁도 밝히지 못한 해답을 준다.”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현대적인 질문’은 무언가? ‘1달 벌어 1년 식량을 마련하는 신의 직장 구하기'일까? 


‘신의 직장이 있는 천국’은 없었다. 소로는 음료수 대신 월든 호숫물을 마시고 백 가지 일을 두세 가지로 줄이는 ‘자발적인 천국’을 만들었을 뿐이다. 소로의 자유는 금욕나무에서 자라난 열매였다. 호기심에서 통나무집을 찾은 방문객이 찾아온 구실로 물 한잔을 청했을 때, 소로는 호수 쪽을 가리키며 바가지를 빌려주겠노라고 말한다. 


감명만 받고 몸으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참된 읽음’이랄 수 없다. 하루 읽고 버리는 신문읽기나 마찬가지다. <월든>을 머리맡에 두고 항시 애독했다는 법정스님(1932~2010)은 <무소유> 삶을 실천했다. 자연식 요리연구가 문성희씨(67)는 ‘나의 운명을 바꾼 책’으로 <월든>을 꼽는다. “내가 변하면 세계가 변할 수 있다는 확신을 품고, 자연식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고 말한다. 월든을 읽은 나의 실천은 무엇인가? 날마다 일기를 쓴다.   201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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