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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 김종남 Feb 07. 2023

'자발적 빈곤'이 행복의 지름길 ?

행복의 크기는 자유의 크기에 비례한다

“어떻게 하루를 보내십니까?” 1년 전 퇴직한 후배가 커피 마시는 자리에서 물었다. 

인사치레가 아니다. 수척해진 얼굴이다.

 ‘새벽 5시께 눈이 떠지면, 엎드려뻗쳐 20개, 맨손체조 20분,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읽기 1시간, 또 TV 보면서 신문 2개 훑어보고---.’ 

내 말을 새겨듣는 눈치는 아니다. 



그는 최근 막내딸을 출가시켰다. 그동안 월급쟁이로 세 자녀를 모두 훌륭히 자립시킨 모범 봉급생활자였다. 6년 전 암에 걸려 죽을 고생을 겪기도 했다. 노후 자금은 꿈도 꾸지 못한 데다 병고 뒷바라지에 하루 24시간 몰두하던 일마저 없어지니 스트레스가 쌓일만하다. 술도 못하고 모임도 자주 빠지면서 말도 줄었다. ‘퇴직 증후군 아니 은퇴 증후군이 아닐까!’ 지레짐작해본다. 


쓰는 돈이 버는 돈보다 많아지는 인생 후반기가 길어지면서 은퇴 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도 늘어난다. 은퇴 증후군에 제일 좋은 처방, 돈 안 쓰면서 시간 보내는 법은 무얼까? 스님처럼 독방에서 ‘10년 면벽’할 수 있다면 최상일 텐데! ‘1주일에 이틀은 한문 교실, 또 하루는 인문 강좌 듣기, 두어 번 모임 참석’ 이런 평범한 일상에도 돈이 든다. 친지들과 어울리고 모임에 나가고 취미활동 하다 보면 돈이 나가는 건 당연한 이치다. 


다른 사람은 어찌 지내나? 시간은 많고 돈벌이가 없는 친구 얘기를 유심히 들었다. 그는 하루 8시간씩 소설을 읽는다. ‘무얼 읽느냐?’ 물었더니 조정래 대하소설 <한강>이다. 겪어온 시대가 비슷해 공감이 많이 간단다. <태백산맥>은 진즉 읽었다. 다음엔 12권짜리 일본소설 <대망>을 다시 읽을 참이다. 다른 친구는 신문 4개를 꼼꼼히 읽는다. TV 드라마를 몇 개씩 본다. 누군가는 영어 성경을 만년필로 베껴 쓴다. 


소설과 신문 읽기,, 책 베껴 쓰기, 드라마 보기---, 한나절이 순식간에 흐른다. 종일 칩거도 가능하다. 그런 칩거를 계속할 수 있다면 돈 안 쓰는 10년도 가능하다. 아재 개그로 ‘건국대생(건강하게 국민연금으로 생활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건국대생’ 되기는 ‘하바드생(하는 일 없이 바삐 드나드는 사람)’되기보다 훨씬 힘들다. 


독신으로, TV도 없고, 냉장고도 없고, 세탁기도 없는 생활을 견딜 수 있는가? <퇴사하겠습니다> 저자, 이나가키 에미코는 50세 때, 세상 사람들이 다 부러워하는 높은 수입을 보장하는 아사히신문사를 자진 퇴사했다. ‘10년 준비’를 거친 결단이었다. ‘돈(물질) 대신 시간(자유)’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돈과 욕망에 매달려 사는 현대인을 ‘튜브를 주렁주렁 달고 사는 중환자 같다’라고 묘사했다. 에미코는 독신으로, 냉장고 세탁기 TV도 안 쓰고, 하루 서너 시간씩 산길을 걸으며, 사누키 우동 값을 ‘기축통화’로 여기는 시골에서 자칭 ‘자유인’으로, 자유롭게 산다. 


행복의 크기는 자유의 크기에 비례한다. 에미코는 극빈생활 속에서 자유를 만끽했다. <월든> 저자 데이비드 소로(1817~1862)도 ‘자발적 빈곤’을 선택한 사람이다. 시골 콩코드에서 막노동으로 자유와 행복을 찾았다. 물론 200년 전 이야기다. 톨스토이(1828~1910)는 ‘육체노동이 자유와 행복을 가져온다.’고 말한다. 인생의 마지막 몇 년 동안 그는 명상집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를 가족과 친구들에게 권독 했다.. “두 손으로 노동할 때 / 우리는 세상을 공부하게 된다. / 채소밭을 가꾸면서 나는 생각한다. / 왜 진작 이렇게 하지 않아 / 지금 같은 행복을 누리지 못했을까? ” 


‘이뭣고’ 화두 하나 들고 면벽 10년을 하든, 전기 없는 생활을 하든, 막노동을 하든, 채소밭을 가꾸든, 자유와 행복은 ‘돈과 욕망의 튜브를 떼는’ 결단 후에 찾아온다. 난 지금 어느 길을 걷고 있는가?         2018.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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