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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 김종남 Feb 27. 2023

'빈둥거리며' 삶의 의미 찾았나요?

평균수명이 길어질수록 빈둥거릴 시간도 점점 늘어난다

“우연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의미 있는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우연이 만든 세계(A Series of Fortunate Events)> 책 뒤표지에 쓰여있는 질문이다. 

이 책에 그 답이 있을까? 

저자 션B.캐럴은 6천6백만 년 전 소행성 충돌사건, 

4번이나 벼락을 맞고도 살아난 산림 경비원 설리반 이야기, 

유전자 돌연변이설 등등 통계와 학술적인 얘기를 죽 늘어놓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생각했는지 ‘후기(後記)’로 가상좌담을 실었다.

 

2022년 4월10일 발간된 <우연이 만든 세계> 표지.



캐럴은 이 상상속 좌담회 자리에 모두 구사일생의 경험을 가진 9명의 저명한 코미디언, 배우, 작가를 등장시킨다. 이 좌담에서 <제5도살장>을 쓴 풍자소설가 커트 보니것은 “우리가 여기 지구에 있는 이유는 빈둥거리기 위함이에요. 다른 사람이 뭐라 해도 신경 쓸 것 없어요.”라고 말한다. <오피스>를 쓴 코미디언 리키 저베이스도 “삶은 휴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지난 145억 년 동안 존재하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운이 좋아서 80년, 90년을 살면 다시는 존재할 일이 없어요. 그러니 삶을 최대한 즐기세요.”라고 한다. 


‘삶은 휴일이다. 빈둥거려라!’ 풍자소설가나 코미디언이 말하는 풍자인 줄 알지만, 이미 대단한 부와 명예를 이뤄놓은 저명인이 대중에게는 ‘빈둥거리며 삶을 최대한 즐기라’고 무책임(?)하게 말하는 게 아닐까. 가상 좌담회에 인류학자나 종교인을 초청하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 학자나 종교인은 우리가 지구에 존재하는 이유를 보나 마나 ‘생존’ ‘번식’ ‘신의 의지’ 등 너무 뻔한 답으로 일관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도 명예도 못 이룬 은퇴한 소시민의 빈둥거림은 어떤 식일까?’ ‘빈둥거리면서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은?’ ‘부와 명예욕을 빼버린 상황에서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등등 더 많은 질문이 생겨난다. 사실 나이 들면 돈 문제에서 좀 자유스러워지니 ‘돈 없는 빈둥거림’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백만기 아름다운 인생학교 교장(72)은 <늙으니까 참 좋다>라는 칼럼에서 "창밖의 나무만 봐도 행복하다. 아침에 새소리만 들어도 행복하다. 사실 나이 들어 무슨 돈이 그렇게 필요한가 "라고 말한다. 


고령화 선도국인 일본에는 훨씬 더 배울만한 모범사례가 많다. 노년에 대한 글을 많이 써온 소노 아야코(1931년생)는 73세 때(2004년) 쓴 <나이듦의 미학을 위하여>에서 ‘돈에 얽매이지 않는 정신을 가질 것’이란 소제목 아래 “돈이 없으면 여행 연극관람도 과감히 포기하라, 돈 없이 할 수 있는 문화생활을 하라”고 말한다. 가오노 츠에이는 <노인이 되지 않는 법>에서 “돈은 많아도 적어도 사람을 괴롭힌다. 오늘은 장어가 먹고 싶다, 어디 온천이라고 다녀오고 싶다 같은 소망을 이루어줄 정도가 가장 적당하다.”라고 한다. 


평균수명이 높아지면서 빈둥거려야 할 세월도 점점 길어진다. '온천 여행, 연극관람, 장어 먹기'도 포기한 채 빈둥거려야 할 세월이다. 이제 우리는 정작 빈둥거리면서 삶을 얼마나 즐기고 있나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새벽잠 깨어 잠자리에서 이삼십 분 빈둥거릴 수 있다. 차 마시며 한 시간이나 아침 신문을 뒤적거린다. 일주일 전부터 쓰기 시작한 원고는 마감이 없다.’ 얼마나 즐겁고 감사한 일인가! 


빈둥거림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인생은 된장이 빠진 된장국처럼 싱겁다. 창밖에 나무만 봐도, 아침에 새소리만 들어도 행복한가?     2023.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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