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떠나지 않는 한 그 어느 곳도 지구의 중심이다
“삶의 궤적이 (---) 원(圓)일지도 모르겠다. 지구가 공전하면서 자전하듯이, 시간도 되풀이하며 어디론가 우리를 데려가고 있다. (---) 지구도 신이 찬 공이 아닐까. (---) 구형(球形)의 표면에선 아무 데나 자기가 선 자리가 중심이 된다.”
소설가 박완서(1931~2011)는 팔순 때 발간한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180쪽에서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지구의 중심’이라고 말한다,
젊은 시절, 고교 교과서에 실렸던 ‘기차는 원의 중심을 달린다’라는 글을 읽고 언젠가 꼭 ‘원의 중심을 한번 달려보고’ 싶었다. 실제로 1979년 영국의 두 지방신문사에서 3개월 현장실무체험을 한 후 귀국하는 길에 미국을 거쳐 돌아오면서 워싱턴에서 LA까지 대륙을 버스로 달려보았다. 밤낮 쉬지 않고 버스는 며칠간 지평선이 원으로 이어진 ‘원의 중심’을 달렸다.
큰 원(지구)을 한 바퀴 돌아 집에 왔다. 그렇다. 지구를 떠나지 않는 한 내가 걷고 있거나 서 있거나 그 어느 곳도 지구의 중심이었다. 버나드 쇼가 세계여행 중 홍콩의 한 여인숙에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세계여행을 다니는 데 나는 여인숙 마당이나 쓸고 있다’며 자기를 부러워하는 청소부에게 해주었다는 말이 생각났다. “지금 당신이 쓸고 있는 건 여인숙 마당이 아니라 지구의 한 귀퉁이다“.
‘길가든, 공원길이든, 시장길이든 모든 길은 지구의 맨살을 밟는, 감격스럽고 거룩한 일,’이라며 지구의 맨살을 밟는 두 다리에게 칭찬을 보내는 나태주의 시 <다리에게 칭찬>을 외우며 아름다운 지구의 중심을 걷는다."사람이 두 다리로 걷는다는 건 / 축복이고 감사다 / 어디를 걷든지 그것은 / 지구를 걷는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