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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쁨 Oct 20. 2022

고엔

규슈 -05

도보 여행에서 숙소를 정할 땐 아이러니한 사실이 하나 있다. 시골일수록 가격이 비싸고, 도시일수록 싸다는 점이다. 물론 숙박비를 최소한으로 절약하려 할 때의 얘기다. 도시엔 게스트하우스와 24시간 카페 등 비교적 싼 값에 몸을 뉠 수 있는 곳이 여러 군데 상존한다. 식당이나 세탁소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도시에 머물 때 오히려 하루 예산이 덜 드는 때가 많았다. 

▲ 후쿠오카에서의 관광.


규슈에서 가장 큰 도시, 후쿠오카에 도착해 간만에 여독을 풀 수 있었다. 24시간 카페에서 무료로 주는 아이스크림을 원 없이 먹다가 배탈이 났다. 하루는 한적한 공원에 텐트를 치고 자려고 했더니 운 나쁘게도 그곳이 문화재로 지정된 성곽이 있는 자리라 텐트를 치면 안 된다는 말을 새벽 2시에 경비원 아저씨에게 듣고 쫓겨났다. 그렇게 비몽사몽인 상태로 짐을 챙겨 아파트들이 모여있는 주택가 근처의 다른 공원으로 갔다. 수십 마리의 모기들에게 내 피를 내주며 겨우 잠을 청했는데, 아침 해가 밝기도 전에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깨야만 했다. 


"경찰입니다. 안에 있는 분 혹시 밖으로 나와 주시겠습니까." 


나는 화들짝 놀라 눈곱을 떼며 텐트 입구를 열었다. 나중에는 경찰에게 붙잡히는 게 일상이 되어 아무렇지도 않아졌지만, 당시엔 여행 중에 처음으로 경찰에게 문초를 당했던 터라 입이 쩍 마르고 괜스레 긴장됐다. 


공원에서 텐트를 치고 자는 건 불법은 아니었지만, 주택가에서 안에 누가 들어가 있는지 모를 텐트가 우두커니 서 있으면 주민들이 겁을 먹고 신고를 한다고 했다. 경찰은 내 여권을 면밀히 살펴보며 이름과 주소지 등을 물어봤다. 난 지을 수 있는 표정 중에서 가장 순수하고 결백한 표정을 지으려고 애쓰면서 도보로 일본을 일주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내 경계하던 눈치의 경찰 아저씨들도 내 일주 간판과 큰 가방을 보더니 한층 눈매를 누그러뜨리셨고 한 분은 여행 이야기에 감탄했다. 의심은 응원으로 바뀌었다. 난 경찰분들에게도 명함을 드려야 하나 고민했지만 역시 얼른 자리를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얼른 텐트를 거두고 감사 인사를 드리며 다시 길가로 나섰다. 

▲ 기타큐슈로 향하는 길. 더위와 피로에 다시금 녹초가 됐다.


규슈에서 혼슈로 가기 위한 관문과도 같은 곳, 기타큐슈와 시모노세키를 향해 다시금 여정을 재촉했다. 후쿠오카시를 벗어나 국도를 타고 걷기 시작하자 고즈넉한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높다란 빌딩과 북적이는 거리가 눈앞에 있었는데 지금은 시냇물에서 팔자 좋게 일광욕을 하는 자라가 보인다. 태풍이 지난 뒤 내리꽂히는 늦여름의 햇빛이 피부를 태우는 게 느껴졌다.


시골길을 어느 정도 걷자 커다란 대교와 족히 8차선은 되어 보이는 도로가 이어졌다. 북쪽을 향하는 차들은 모두 이곳을 지날 터였다. 혹시라도 운 좋게 같은 방향으로 가는 차가 있을까 싶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걸었다. 그러자 쌩쌩 내달리던 한 파란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췄다. 차 안에는 한 눈으로 봐도 터프해 보이는 형님들이 타고 있었다. 큰 키와 굵직한 목소리, 구수한 규슈 사투리를 구사하는 노란 머리의 형님이 날 불렀다. 


"어이 형씨! 어디까지 가?"


어렸을 적 소년 만화에서 한번은 봤을 법한 건달 이미지를 떠올리면 카즈마 씨의 인상과 꼭 맞다. 차 안에는 카즈마 씨를 포함해 3명의 남자가 타고 있었는데, 후쿠오카에서 용역 비슷한 일을 끝마치고 기타큐슈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다들 투박한 손과 구릿빛 피부가 남자다웠다. 


키가 크고 깃 올린 청재킷을 걸친 토모야는 누가 봐도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그래서 당연히 어른일 것으로 생각해 존댓말을 했는데, 그가 씩 웃으며 자기가 몇 살일 것 같은지 맞춰보라고 했다. 넉넉히 잡아 스무 살 중반대를 불렀으나 보기 좋게 틀렸다. 18살, 우리나라 나이로 고등학생이었다. 운전대를 잡고 여유롭게 차를 모는 모습은 도저히 18살에서 나올만한 노련함이 아니었는데….


그들은 나에게 한국인의 연애 스타일이나 고백하는 법 따위를 물어봤다. 대충 생각나는 대로 말하긴 했지만 나도 못 해봤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를 줄 수가 없었다. ^^; 


창밖으로 커다란 철제 구조물과 컨테이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카즈마 씨가 제철, 화학 등의 중화학공업이 발달했었던 기타큐슈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들은 퇴근 시간이라 번잡한데도 일부러 도시의 중심에 있는 고쿠라 역까지 데려다주었다. 작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카즈마 씨가 호탕하게 웃으며 다음번에 서울에 가면 예쁜 친구들을 소개해달라고 했다. 토모야 군이 행운을 빌어주며 주먹 인사를 건넸다. 터프함 뒤에 숨은 순박함과 정(情)이 가슴 깊이 전해졌다. 파란 차가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멀어져 갔다. 노을이 고쿠라 역을 샛노랗게 물들이며 차가 떠난 방향으로 저물었다.     

▲ 카즈마 씨 일행. 덕분에 무사히 기타큐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잘만한 곳을 찾아 시내 외곽을 향하다가 신호등 앞에 섰다. 신호등 아래에 일본어로 뭐라 뭐라 쓰여 있었다. 난 초록 불로 바뀔 때까지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5분, 10분…. 아무리 기다려도 신호가 바뀌지 않는 것이었다! 무시하고 넘어간 다음 건널목에서도 신호등은 그대로 빨간불이었다. 고장이 났나 싶어 친구에게 연락해 물어봤더니 친구가 폭소를 터뜨리며 '버튼을 누르세요.'라고 쓰여 있지 않냐고 날 놀려댔다. 그걸 지금 알았냐고 깔깔대는 그녀의 목소리도 약올랐지만, 이거 한자를 얼른 익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자로 누를 압(押)이라 쓰여 있는 걸 못 읽어서 이 사달이 난 거다. (이후 호주와 유럽 몇 개 도시에서도 신호등 앞에서 멍청하게 서 있는 경험을 되풀이하곤 했다.) 


호젓한 분위기의 놀이터가 보였다. 사람들의 눈에 안 띄게끔 텐트를 치고 새벽이슬을 맞이했다. 저녁 공기가 한층 쌀쌀해져 가고 있었다. 날이 밝자 역 안 로커에 가방을 두고 기타큐슈를 걸어 다녔다. 바다로 이어지는 청록색 강줄기가 도시 곳곳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고 반짝이는 햇살은 물결에 부서져 내렸다. 자그마한 배들이 바닷가에 알록달록한 부표를 단 채 떠 있었다. 막 지은 밥에서 나는 김처럼 제철소 굴뚝 위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인조미와 자연미가 공존하는 도시 기타큐슈는 내게 또 다른 인연을 맺어주려 하는 중이었다. 

▲ 공업도시이자 항만도시인 기타큐슈.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시내 전경을 한눈에 구경할 수 있는 사라쿠라 산에 들러보려 했는데, 시간 계산을 잘못하고 말았다. 버스를 안 타고 걸어가면 상당히 오래 걸려서, 점심 전에 출발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미 정오는 지난 지 오래였고 도착해봤자 전망대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잠깐밖에 되지 않았다. 


부랴부랴 산기슭을 올랐고 마침내 다섯 시가 넘어서 매표소에 도착했다. 평일엔 야경을 구경하지 못하고, 6시면 케이블카 운행이 종료된다. 푯값도 1,200엔인데, 정상만 딱 찍고 내려오기가 아쉬웠다. 그래도 지금이 아니면 영영 가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표를 끊었다. 


정상에 도착해 내려다보는 기타큐슈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산, 강, 바다, 섬이 한데 어우러져 각자의 매력을 은은히 뽐내고 있었다. 새털구름이 하늘을 채우자 노을이 구름 사이로 광채를 내뿜으며 저 산 너머 어딘가를 비추고 있었다. 고생해서 올라온 보람이 있었다. 아직 누구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기엔 배짱이 부족했던 만 19세. 이런 절경을 눈앞에 두고 황혼의 시간을 놓쳐버리긴 너무 아까워 용기를 내서 한 부부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인간이 어떻게 꾸며 입어도 환상적인 자연이 뽐내는 배경엔 견주지 못할 것이 분명했기에 '좀 더 괜찮게 입고 올걸' 하는 생각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 사라쿠라산에서 바라본 전경.

"어서들 케이블카에 도로 타세요!" 


안내원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고 사람들이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림보다 더 그림 같고 꿈보다 더 꿈속 같은 이 순간을 두고 떠나야 하는 게 가슴 아렸다. 여행은 늘 그런 순간들의 연속인 것이다. 잡아두고 싶고, 간직하고 싶은 시공간의 일편을 놓아줄 수밖에 없는 게 우리들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매표소로 돌아오자 금방 캄캄해졌다. 시내까지 홀로 걷고 있자니 앞에 아까 내 사진을 찍어줬던 부부가 보였다. 아는 척을 했더니 반갑게 맞아주며 길벗이 되었다. 사치코 씨와 사토루 씨는 알고 보니 결혼 예정인 친구 사이라고 했다. '너 결혼할 사람 없으면 나중에 나랑 하자!' 20년이 넘는 세월을 친구로 지내며 우스갯소리로 하던 말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서로를 너무도 잘 알기에 함께 있으면 늘 편안하고 즐겁다. 때로 고단한 삶의 파도가 덮쳐 올 때면 서로 등을 맞대고 또 한 번 시련을 넘는다. 오랜 친구에서 동반자가 된 그들은 어느 난관도 함께 극복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마음씨 후하고 인정 많은 그들은 기타큐슈의 명물 백짬뽕도 사주고 여정을 위한 상비약까지 챙겨주었다. 

▲ 사치코 씨와 사토루 씨. 두분 덕에 기타큐슈의 명물들을 즐길 수 있었다.


역 앞에서 헤어질 때만 해도 꼭 다시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 염원이 통한 것일까. 다음날 시내에서 우연히 둘을 다시 만났다. 그 넓은 도시에서 다시 마주칠 확률이 얼마나 될지. 우리 셋 다 놀랐고 사치코 씨는 어제 날이 저물어 미처 다 못 보여준 기타큐슈의 명물을 소개해주겠다고 말했다. 둘은 탄가 시장 안으로 나를 안내했다. 


연안에서 잡아 올린 싱싱한 생선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된장, 쌀겨 등을 넣고 발효시킨 '누카미소다키'. 우리나라의 밴댕이젓이나 황석어젓과 맛이 비슷했지만 좀 더 고소하고 순한 향이 특징이다. 짭짤한 고등어에 시원한 맥주를 곁들이니 피로가 사르르 녹는 듯싶었다. 탱글탱글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의 '가마보코 어묵'도 술안주로 제격이었다.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음식은 바로 닭 사시미였다. 일본 몇몇 지역에서는 생닭을 회처럼 저며서 갖은양념을 해 먹는다고 한다. 그날 도축한 신선한 닭만 취급하는 데다, 기타큐슈 특산 유자 된장을 곁들이니 비린내도 별로 나지 않았다. 쫄깃한 식감과 향긋한 유자 향이 가히 별미였다. 


내친김에 그들은 백화점에 있는 몬자야키 전문점에까지 날 데려갔다. 몬자야키는 오코노미야키와 비슷하지만, 훨씬 물기가 많아 촉촉한 부침개다. 조그마한 뒤집개로 자리마다 있는 철판에 직접 부쳐 먹는 게 특징인데, 사토루 씨의 솜씨가 빛을 발했다. 


▲ 기타큐슈에서 받은 후한 대접.


안 그래도 물가 비싼 일본에서 이렇게 후한 대접을 받다니. 몸 둘 바를 몰랐다. 둘은 일본에서 좋은 기억을 안고 가길 바란다며, 일본도 한국도 숨겨진 경치와 명물들이 이렇게나 많으니 최대한 많은 이들이 양국을 오가며 아름다운 추억들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네 책에서 기타큐슈의 명물들을 소개해줘라. 라는 말을 남겼다. 우린 시장 입구 포장마차에서 따듯한 오뎅을 나누고 헤어졌다. 


일본에는 많은 이들이 고엔(ご縁、ごえん)을 믿는다. 우리나라 말로 인연.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붉은 끈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소중한 인연을 맺어준다는 뜻이다. 인연의 실은 질기고 강해서, 언제 어디서 상대를 다시 마주칠지 모른다. 그렇기에 늘 만나는 이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예의를 갖추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사치코, 사토루 커플은 오늘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필시 어디선가 다시 만날 거라고 말했다.      


즐거웠던 순간은 결국 지나가지만, 인연이 있기에 끝나지 않는다. 산 정상의 노을도, 그들과의 추억도 붉은 실에 이끌려 다시금 만날 일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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