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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쁨 Oct 20. 2022

야쿠자를 만나다

주고쿠 -01

태풍이 기세를 다하자 작열하는 태양이 다시금 대지를 달궜다. 시모노세키에서 야마구치를 향해 가던 길, 나와 같은 '일본 일주'가 새겨진 팻말을 단 자전거가 보였다. 딱 봐도 제법 무거워 보이는 짐을 양쪽에 인 채로 달리는 걸 쫓아가 말을 걸었다. 


쿠도 씨는 아키타에서 출발해 남쪽으로 향하는 여행자였다. 6월부터 지금까지 일주를 계속하는 중이란다. 다리가 남아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내 처지도 피차일반인지라 서로 무사 귀환을 빌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처음 만난 장기 여행자였다. 그의 빛나는 눈과 열정으로 가득 찬 미소를 보자 나에게도 용기가 솟아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래. 나만 미친놈이 아니구나. 한껏 자극을 받고 열심히 걸음을 지속했지만…. 

▲ 자전거로 일본 일주 중이었던 쿠도 씨. 서로에게 무운을 빌었다.


국도에서 고속도로, 다시 국도. 땡볕에서 익은 야키니쿠가 되어가는 듯했다. 탈수증세까지 겹쳐 반죽음 상태가 된 걸 구해준 건 류지 씨. 내가 손을 흔들며 힘겹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핸들을 꺾어 일부러 한 바퀴 돌아서 와 준 분이다. 마치 부처님(?)을 연상시키는 인자하면서 차분한 분위기의 류지 씨는 아동보호소에서 아이들을 돌봐주는 보호사였다.


그는 가출 청소년이나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을 가르치고 탈선을 방지하는 일을 한다고 했다. 그런 일을 하시는 분이라 그랬을까. 길 위에서 불쌍하게 손을 흔들며 걷고 있는 나를 보고 지나치질 못하겠어서 운전대를 돌렸단다. 그는 지금도 집을 나온 한 아이가 보호소엘 안 오고 연락도 안 되자, 온 동네를 수소문하며 아이를 찾아다니는 도중이라고 말했다. 


아동보호소는 인력도 부족하고 때때로 아이들이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잦아서 일하기 상당히 힘든 편이라고 하셨다. 타인의 결핍과 그것에서 나오는 날 선 행동들을 보듬어주는 건 정말 어렵다. 하물며 매일같이 그런 아이들을 보살펴주는 일은 얼마나 지칠까. 난 류지 씨에게 존경을 표했다. 그리고 어떻게 포기하지 않고 일을 계속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이게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서 하는 거예요. 그 친구들은 그들만의 아픔과 고민이 있고,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있는 경우도 많죠. 거창한 인류애나 사명감 같은 건 없어요. 단지 삶이란 모두가 함께,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것이라 믿기에, 아이들과 함께 나아가고 싶은 거죠. 아이들도 저에게 많은 배움과 도움을 주곤 해요."


덤덤히 말을 이어나가는 그의 모습 속에서 마치 선대의 위인들이 보이는 듯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이란 어쩌면 대단한 꿈이나 도전에 달려있기보다는, 나와 같은 공간 속에서 숨 쉬는 사람들과 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류지 씨. 나도 누군가를 보호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는 그가 사는 우베시가 야마구치를 향하는 도로와는 멀리 떨어져 있다면서, 집에 도착하자 일부러 그의 어머님께 나를 고속도로 휴게소까지 태워다 달라고까지 했다. 나는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연신 괜찮다고 했지만, 그의 어머님도 그처럼 곤고한 행인을 무정히 보내는 분은 아니셨다. 벌써 노을이 모습을 비추고 밥을 짓는 구수한 냄새가 마을에 퍼지는 시간인데, 어머님은 저녁은 좀 늦게 먹어도 괜찮다며 죄송해 어쩔 줄 모르는 나를 달랬다. 그녀는 SA(서비스 에어리어)라는, 우리나라의 휴게소와 같은 곳까지 날 데려다주셨다. 

▲ SA(Service Area, 고속도로 휴게소.)


날이 저물었고 고속도로 한가운데라 더 걸을 수도 없었다. 휴게소는 생각보다 커서, 작은 온천과 식당, 여관도 있었다. 물론 여관에서 잘만한 예산은 안 되기에 텐트를 치고 자야만 했다. 온천 안으로 들어가 주인장에게 사정을 설명하며 하룻밤만 주차장에서 자고 갈 수 있는지 여쭤보았다. 주인장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안전상의 문제도 있고,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이미 해는 완전히 져버렸고 어찌할 방도가 없어 안절부절못하던 도중. 후줄근한 회색 옷에 금으로 된 팔찌며 목걸이를 치렁치렁 매고 있는 아저씨? 할아버지? 가 말을 걸어왔다. 


"어이 꼬마. 어디까지 가는데?"

 

순간 조그마한 머리 안에 들어찬 뇌가 바쁘게 돌아갔고, 잘하면 이곳을 들린 여행객의 차를 얻어 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좀 더 멀리 불러서 히로시마까지 가는 길이라고 대답했다. 거진 대머리에 커다란 몸집, 험상궂은 표정을 한 그가 뒤에 있는 두 명의 남자들과 뭐라 뭐라 얘기하더니, 나를 다시 불러 세웠다. 


"히로시마까지 태워다 줄라니까. 우선 온천에서 몸부터 담가 꼬마." 


강렬한 사투리와 억양에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래도 이게 웬 떡이냐. 히로시마까지 며칠은 걸릴 텐데 태워다 준다니. 잘 곳도 마땅찮은 형편에 마다할 여지가 없었다. 수건까지 사주겠다는 걸 사양하며 좁다란 온천에 세 명의 남자들과 같이 입성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온천 안에 들어서자 알몸의 건장한 아저씨들 등짝에는 대문만 한 문신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정말 목에서부터 발목까지, 말하기 민망한 곳까지 가득 새겨진 문신은 보는 이를 압도하기에 부족함이 일절 없었다. 


서로 알몸인 채로 뜨끈한 탕 안에서 노곤해진 몸을 담그고 있자면 남녀노소 격이 없어지기 마련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나는 그들이 그저 개성 있는 아저씨들이라고만 여기고 있었다. 밖으로 나와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다가, 내가 혹시 어떤 일을 하시는 분들인지 여쭈어봐도 되냐고 물었다. 그들 중에서 제일 포스 있는(?) 아까 날 불렀던 할아버지가 호탕하게 웃으며 혹시 일본의 야쿠자를 아느냐고 했다. 




야쿠자. 창작물에서나 보던 일본의 조직폭력배. 우락부락한 행색에 선량한 점포들로부터 보호비를 명목으로 금전을 갈취하는…. 야쿠자가 내 눈앞에 있다고?? 


그들이 봉고차로 나를 안내하며 타라고 손짓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거 정말 큰일 나는 거 아닌가? 확률상 여행을 이쯤 했으면 안 좋은 일이 한 번 정도 일어날 법하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인 건 아닌지. 친구한테 메신저로 상황설명을 하자 야마구치는 '진짜' 야쿠자들이 많은 곳이라며, 당장 도망쳐 나오라는 급박한 메시지를 받았다. 실제로 기타큐슈에서도 야마구치를 지날 땐 조심하라는 조언을 여러 번 들은 터였다. 철제 연장들이 봉고차 짐칸에 가득 실려 있는 것이 언뜻 보였다. 


목숨이 걸린 선택의 시간. 내가 나쁜 짓을 하지 않으면 그들도 일부러 해코지하진 않겠지. 어딜 가든 어쨌든 사람 사는 동네다. 나를 해하려고 마음먹었었다면 온천까지 데리고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강자라면 약자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따위의 생각을 되뇌며 안심해보려 애써도, 마음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야쿠자가 내 어깨를 턱 잡으며 얼른 타라고 말했다. 그래 죽기 아니면 살기다! 나는 그들을 믿기로 결심했다. 


누가 그랬던가. 인간은 궁지에 몰렸을 때 가장 높은 집중력과 사고력이 발휘된다고. 일본 일주를 하는 동안 일본어 실력이 단기간 제일 빨리 향상됐던 순간이 바로 지금, 야쿠자와 대화할 때였다. 한 마디라도 놓치면 목숨이 왔다 갔다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그들의 말을 알아들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아직 일본어 실력도 비루한 데다 굉장한 사투리와 옛날 단어에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어이 꼬마. 한국에도 라면이 있지? 한국 라면이 맛있나 일본 라면이 맛있나?"


"일본 라면이 훨씬 맛있습니다!! 국물도 진국이고 면발이 그렇게 쫄깃쫄깃할 수가 없어요^^;"


나는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 애썼다. 다소 비굴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장담하건대 누구라고 해도 그 봉고차에 타면 일본 라면이 맛있다는 소리가 나올 것이다. 


그들은 내가 고속도로에서 걷고 있는 걸 봤다고 했다. 웬 꼬마가 일본 일주라는 팻말을 등에 이고 낑낑거리길래 신통하게 봤는데, 마침 온천에 들른 걸 보고서 태워줘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들 중 가장 카리스마가 있는 분이 두목. 한때 야OOO 구미의 구미쵸(두목)를 지내셨던 분이라고 했다. 지금은 80세가 넘어 은퇴한 지 오래란다. 일본의 유명한 엔카 가수 키타지마 사부로를 닮아서 사부짱 이라는 별명으로 부른다고 했다. 산조쿠 씨는 운전수, 히로 씨는 문신을 새기는 타투이스트였다. 


사부짱은 젊은 날 경찰서는 물론이고, 교도소를 본인 집 드나들 듯이 했다고 한다. 당시 커다란 죄목 때문에 체포된 적이 있는데, 야OOO구미의 한국인 두목이 와서 그를 구해줬고, 자기 밑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사부짱은 그의 밑에서 십수 년간 일하다가 부두목의 자리까지 올랐고, 한국인 두목이 은퇴한 뒤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한다. 그가 젊은 날 한국인 두목님으로부터 큰 신세를 졌기에, 지금 나한테 갚는 거란다. 

▲ 야쿠자에게 얻어먹는 야키니쿠라니?!


사부짱은 나보고 배고프지 않냐고 물어보더니 히로시마를 향하는 도중에 있는 호후라는 도시로 방향을 꺾었다. 그는 이곳이 호후에서 *호르몬을 제일 잘하는 곳이라며 야키니쿠 3인분, 호르몬 3인분을 주문했다. 얼떨결에 야쿠자로부터 만찬을 얻어먹게 생긴 나는 그래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이라도 곱다고 이왕 먹게 된 거 열심히 먹자고 결심했다. 그러나 야쿠자 앞에서 음식이 제대로 들어갈 리는 없고…. 잔뜩 긴장한 탓에 고기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감사함을 한껏 담아 맛있게 먹었다. 사부짱이 흡족해하며 계산을 하려고 지갑을 꺼냈다. 그런데…….


*호르몬 : 소나 돼지의 내장을 구운 것. 우리나라의 곱창, 막창과 유사하다. 기름기가 많고 고소한 맛이 특징이다.

▲두목님의 모습. 맙소사, 저게 다 얼마야!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했다. 셀 엄두도 나지 않을 만큼 많은 지폐가 빽빽이 꽂혀있었다. 전부 샛노란 1만 엔짜리였다. 난 기절초풍하며 그에게 이게 전부 얼마쯤 되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대략 잡아 900만 엔쯤 된다며, (한화로 약 9,000만 원) 남자가 지갑에 이 정도는 있어야지! 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진짜 야쿠자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황급히 붙잡았다. 다시는 안 올 이 순간을 꼭 찍어 두고 싶어 용기를 내 사진을 요청했다. (그리고 이 사진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일본 일주 베스트 샷 중 하나가 되었다.)     


건하게 배를 채우고 나오자 두목님이 나에게 호후에 온 김에 호후 텐만구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텐만구란, 일본에서 학문의 신으로 추앙받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天滿川神)를 기리는 수백 개의 신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호후 텐만구는 그중에서 일본 3대 텐만구에 속할 정도로 규모도 크고, 아름답기로 소문 난 신사라고 한다. 웅장한 신사 양쪽엔 벚나무와 버드나무가 흐드러져 있고, 안쪽 계단에는 샐비어와 국화가 행복을 의미하는 글자 幸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둥근 보름달이 신사 뒤편에서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이런 신성해 보이는 곳을 야쿠자와 함께 걷다니. 기분이 묘했다. 


늦은 시간이라 다시 봉고차에 탔고 다시금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사부짱은 나에게 번호를 주며 일본을 돌아다니다가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바로 전화하라고 했다. 그의 번호는 마치 액운을 막아주는 부적처럼 느껴졌다. 히로시마에 도착하자 새벽 한 시가 훌쩍 넘었다. 사부짱이 창밖을 가리키며 저기가 내가 고등학교 때 수감됐던 히로시마 형무소라며 젊은 날의 무용담을 또 한껏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가 잠은 어디서 자냐고 물어봤다. 근처의 공원에서 내려주시면 텐트를 치고 자겠다고 말하자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냐며 히로시마 한가운데의 으리으리한 호텔로 차를 돌리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일본에서 처음으로, 아니 인생 처음으로 그랜드 호텔에서 잠을 자보게 되었다! 그것도 야쿠자 돈으로! 

▲ 그랜드 호텔이라니!


두목님은 현금을 툭 던지며 꼬마한테 좋은 방을 달라고 호텔 직원한테 말했다. 그러고는 남은 잔돈은 나보고 가지라고까지 했다. 이쯤 되니 처음 의심했던 것마저 너무나 죄송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렇게 사부짱과 산조쿠, 히로 씨와 사진을 남기고 작별인사를 나눴다. 그들의 봉고차는 두목님 말투처럼 시원시원하게 쌩하고 사라졌다. 으리으리한 호텔 방 안에 들어와 깃털처럼 푹신한 침대에 눕자 오늘 있었던 모든 일이 꿈처럼 느껴졌다. 긴장이 풀리자 피곤이 몰려왔다. 눈꺼풀이 감겼다. '아직 세상 살 만 하구나.'      

두목님이 번호를 건네며 했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일본은 어딜 가나 야쿠자가 있어! 그걸 잊지 말라고 꼬마. 하하하!


▲ 산조쿠 씨, 히로 씨, 두목님. 야쿠자와 친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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