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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쁨 Oct 20. 2022

보디가드

주고쿠 -03

우리네 삶이 그렇듯, 여정의 모든 부분이 즐거운 기억들로만 가득 차 있지만은 않다. 그러나 흠결 있던 순간 뒤에 배울 점이 있고, 때에 따라서는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기도 한다. 그런 맥락에서 히가시 히로시마에서 있었던 일은 웃으며 말하기에는 조금 아련하면서도, 의미 깊게 다가오곤 한다.


히가시(東)는 동쪽이라는 의미로, 히가시 히로시마는 히로시마에서 동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하는 마을이다. 길을 걷는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차량 통행이 많았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알아보니 우연하게도 사케 마쓰리(酒祭り,술 축제)가 열리는 날이란다. 마침 그쪽으로 향하는 관광객 켄 씨가 마을까지 태워다주신 데다가, 축제에서 향긋한 술도 즐겨보라며 노잣돈 3000엔까지 주신 참이었다. 개인적으로 술을 굉장히 좋아하는 내게 사케 마쓰리는 더할 나위 없는 축제의 장이었다. 거리는 사람들로 붐비고 형형색색의 포장마차에서는 다양한 술과 더불어 구운 굴, 치즈 핫도그 따위의 안줏거리를 팔고 있었다. 

▲ 얼마만에 보는 한국어인지 몰라, 반가웠다.

큰 가방을 메고 사람들 사이를 누비다 보니 적잖은 관심이 꽂히는 게 느껴졌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사케와 방금 구워 감치는 굴구이를 두 손에 들고 축제를 즐기고 있는 와중에 나와 같은 나이대로 보이는 학생 네 명과 친해지게 되었다. 그녀들은 괜찮으면 자기들이 마을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기에 난 그녀들과 함께 거리를 누볐다. 축제에서 젊은 사람들은 편의점 앞에 삼삼오오 모여 만남의 장을 여는 듯 보였다. 한 잔 두 잔 싱그러운 술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그러다가 검게 탄 피부에 노란 머리. 겉보기에도 상당히 껄렁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들과 합석하게 됐다. 

▲ 맞기 전 사진. 이때 까지만 해도 분위기 좋았는데….

그들은 동행하던 마코짱의 초등학교 동창이라고 했다. 그들과도 친구가 돼서 사진도 찍고 여행 이야기도 나누던 와중에, 갑자기 무리 중 한 명이 다가와서 내 바지를 잡아 내렸다.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고 하지 말라고 몇 번 말했는데, 정도가 심해지기 시작했다. 듣자 하니 그는 평소에도 혐한을 하는 극우성향의 친구란다. 그는 나보고 한국으로 꺼지라고 막말을 하며 계속해서 다가와 바지를 벗기려고 시도했다. 난 양팔을 벌리고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서로 증오를 퍼트려봐야 무슨 소용이겠냐고. 왜 인간은 서로를 해치고 미워해야만 하는 거냐고. 나는 일본이란 나라가 좋고, 일본인이 좋다. 일본의 문화가 좋고 여행하는 내내 즐거웠다. 화해하고 친구가 되자. 


그러나 술이 잔뜩 올랐는지 그는 내 말을 비웃었고 다가온 나를 향해 발길질했다. 넘어진 손에 피가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그는 날 계속해서 폭행하려고 했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말리는 사이 가방을 들고 도망쳐 나왔다. 




정신없이 뛰다 보니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폭력 앞에 한없이 무기력해지는 외국인의 신분이란 걸 뼈저리게 실감함과 동시에, 그 누구도 날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이 두렵게 다가왔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그저 그들과 친구가 되어 즐거운 기억을 남기고 싶었을 뿐인데. 손바닥에서 강렬한 고통이 밀려왔다. 무릎도 찢어졌다. 차라리 이유라도 있어서 맞았으면 덜 슬플 것 같았다. 참 억울했다. 살다 보면 좋은 의도를 가지고 사람들을 대해도 막을 수 없는 악의가 비수처럼 찌르는 순간이 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숨이 가빠 더는 뛸 수가 없었다. 그렇게 터덜터덜 가로등이 비추는 시골길을 걸어 나가는데, 갑자기 자전거를 탄 사람이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다.


“괜찮으세요? 안색이 심하게 안 좋아 보이는데 무슨 일이 있었어요?”

 

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주변에 텐트를 칠 수 있는 공원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가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더니, 몇 분 뒤, 같이 자전거를 탄 여러 명의 학생이 나타났다. 내게 말을 걸었던 코시로 군을 포함한 그들은 히로시마 대학교의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혹시라도 해코지하러 쫓아올 불량배들을 대비해, 내 주위를 원형으로 둘러싸 호위해 주었다.

▲ 히로시마 대학교 학생들이 내 주위를 빙 둘러 지켜주었다!


코시로 군과 동거하는 타쿠미 군은 자기들 집에서 자고 가도 된다며 흔쾌히 허락했고 난 자전거들의 보호를 받으며 둘의 집으로 향했다. 생애 처음으로 보디가드의 경호를 받은 셈이다. 학생들은 세계 어느 곳이나 이상한 사람 하나쯤은 있는 법이라고,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고 연신 위로해 주었다. 


집에 도착해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오자 지옥에서 천국으로 세상이 바뀐 기분이었다. 코시로 군이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고 반창고를 붙여주었다. 코시로 군과 타쿠미 군은 마침 한국을 좋아했다. 집에 있던 불닭볶음면을 정석으로 끓여달라고 부탁했으므로, 소스 한 방울 안 남기고 야무지게 비벼서 내줬다. 둘은 한 입 먹더니 금방이라도 졸도할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 물을 찾았다. 생명의 은인들한테 사정없는 매운맛을 보여준 것 같아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날 구해준 코시로, 타쿠미 군. 은혜를 불닭으로 갚아 미안한 마음이다.


우리는 자기 전까지 양국의 대학문화에 대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타쿠미 군은 한글을 나보다 잘 썼다. 우리는 일본 일주 중에 해야 하는 일 리스트도 작성했다. 그들은 곧 들르게 될 오사카의 사투리까지 알려주었다.

▲ 코시로, 타쿠마 군이 써준 계획표(?).

 하루 저녁 사이에 눈물이 나올 만큼 슬픈 일과 이렇게도 즐거운 일이 공존할 수 있다니.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꼭 맞았다. 


이튿날 날이 밝자 그들은 회전 초밥집으로 날 안내했다. 배불리 먹고 나오니 계산은 이미 끝난 후였다. 타쿠미 군이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형님이 사는 거란다. 


겨우 한 살 차이 밖에 안 나면서 같은 대학생 처지에 무슨 돈이 있다고 초밥에 아이스크림까지 사주는지. 이번에는 고마움 때문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들은 어제저녁 일 때문에 일본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진 않았을지 걱정했다. 형들처럼 좋은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겠어요. 


곧 석별을 고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다른 어느 때보다 아쉬웠다. 우린 서울에서 만날 날을 기원하며 웃음이 담뿍 담긴 사진을 남겼다. 어제 다쳤던 상처가 하루 만에 아물어 있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우리들의 만남과 이별을 축복해주는 것만 같았다.


삶이란 뾰족한 가시넝쿨에 찔려가며 험준한 산을 등반해내는 것과 같다. 아무리 자신의 몸과 마음을 견고히 한다 한들, 여기저기서 휘감아 오는 가시들을 완벽히 막아 낼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의 보디가드가 되어줄 수 있다. 다친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주고, 다가오는 가시덩굴을 막아내 주면서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그렇게 한발 한발 함께 걸어 나가면, 언젠가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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