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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쁨 Oct 20. 2022

우리는 전생에 형제였나 봐

시고쿠 -01

불교에서는 겁(劫)이라는 개념이 있다. 억겁의 시간이라고 흔히들 칭하는 ‘겁’ 이란 온 세계가 한 번 생성하고 소멸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나타내는 단위다. 어느 비유에 따르면 1 겁은 1,000년에 한 번씩 떨어지는 낙숫물이 거대한 바위를 완전히 풍화시키는 데 걸리는 시간이라고 한다. 인간의 머리론 상상조차 힘든 기나긴 시간이 ‘겁’인데, 그 겁이 다시 수백 번 겹쳐야 비로소 닿는 게 인연이다. 


범망경에 따르면 두 사람이 옷깃 한번을 스치기 위해서만 해도 500 겁이라는 세월이 걸린다고 한다.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는 데에는 1,000 겁이, 한나절 길을 동행하는 일은 2,000 겁의 시간이 흘러야만 가능하다. 그러니까 오늘 요스케 형님과 만난 인연은 2,000 겁의 인연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렇게만 생각해도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고 신기한 만남일진대, 이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이후 벌어지게 된다. 




일본 4도(島) 혼슈, 규슈, 홋카이도, 시고쿠 중에서 관광객의 발길이 가장 뜸한 곳은 아마 시고쿠일 것이다. 경상북도보다 작은 크기의 이 섬은 인구도 적고, 신칸센도 지나다니지 않는다. 사실 오사카를 향하는 길로는 지금껏 걸어왔던 2번 국도를 타고 직진하는 편이 훨씬 빨랐다. 그러나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시고쿠를 걸어 보겠는가. 난 망설임 끝에 시고쿠로의 갈림길인 오노미치에서 다도해를 건너기로 마음먹었다. 

▲ 오노미치로 향하는 길.

해안 도로를 걷는 일은 언제나 내 맘을 설레게 했다. 저 멀리 섬들은 하늘의 별들처럼 총총히 박힌 채 대양이 반사하는 햇살을 함뿍 담고 있었다. 비릿한 바다 내음이 동쪽에서 풍겨오고 이따금 보이는 낚시꾼들은 물고기가 아닌 삶의 여유를 어망에 가두었다. 


중간중간 들른 고즈넉한 어촌 마을은 마치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조각배에 걸린 눅눅한 깃발은 해풍에 나부꼈고, 일본 특유의 목조 주택들은 저마다 세월의 흔적을 품고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아 보였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도로는 인도조차 없었기에, 방파제 위로 올라서서 걸었다. 밑에서 물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발걸음을 옮길 적마다 울려 퍼졌다. 


한 아이가 부두 위에서  조잡하기 짝이 없는 낚싯대를 들고 강태공을 흉내 내었고, 아이의 어머니가 옆에서 그윽한 눈빛으로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습한 바닷바람에 쉬이 땀이 차 고됐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한적한 산골짜기에 있는 온천에서 기분 좋은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금 길을 나섰고 드디어 혼슈와 시고쿠를 잇는 관문인 오노미치에 당도했다.



육지에서 섬으로 향하는 자동차 도로는 걸어서 넘을 수 없었다, 섬을 넘기 위해서는 100엔짜리 객선을 타는 수밖에 없었다. 많은 이가 탈 수는 없지만,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오르기 충분한 크기의 객선에 몸을 싣고 건너편으로 도착했다. 아직 아침 9시도 안 된 시간. 종일 걷기 위해선 뭐라도 먹어 둬야만 했다. 


마침 섬 안에 유명한 라멘 집이 있어서 그곳으로 발길을 향했다. 라멘집 오픈 시간이 9시였기에, 나는 가방을 땅에 내려놓고 그늘에 서서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구레나룻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숨을 돌리고 있던 와중, 저편에서 내가 짊어진 것과 비슷한 크기의 가방을 멘 남자가 걸어오는 게 눈에 띄었다. 여행자 중에서도 저렇게 큰 가방을 멘 경우는 드물기에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 요스케 형님과의 첫만남.
▲ 요스케 형님과 라멘집에서.

호리호리한 체격에 야무져 보이는 눈빛. 나보다 열 살 많은 요스케 형님은 히치하이킹으로 일본 전국을 일주 중인 여행자였다. 


형님도 가고시마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내가 여기까지 한 달 가까이 걸린 데 비해, 형님은 3일 만에 이곳까지 도착했다고 말했다. 


뭔가 형용할 수 없는 허탈함이 밀려왔지만 아무렴 어떤가. 토끼와 거북이는 보고 겪는 게 다를 뿐, 속도는 중요치 않다. 



난 함께 라멘을 먹고 같이 가자고 제의했고 형님은 흔쾌히 승낙했다. 형님과는 방금 처음 만났는데도 십년지기 친구처럼 경개여구했다. 특별할 것 없는 간판에 수수한 실내장식의 라멘 집에선 인심 좋은 주인아주머니가 길 가며 마실 차까지 챙겨주셨다. 


시월의 땡볕을 뚫고 한 걸음씩 걸어 나가는데, 문제가 생겼다. 아무리 봐도 조그만 섬 길엔 히치하이킹을 할 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어 보였던 까닭이다. 국도는 너무 좁고, 해안 도로는 너무 커서 진입조차 불가능했다. 나도 형님도 웃음기가 슬슬 사라지기 시작했다. 우린 머리를 맞대고 어디서 차를 세우면 좋을지 논의했다. 


국도에서 해안 도로로 합쳐지는 커브 길은 애당초 차량 통행이 없었다. 마을 주민들이 시고쿠를 향하는 고속도로를 향할 리도 만무했고, 마을을 들르는 관광객들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린 서로 거리를 두고 차들을 향해 구애(?)했다. 히치하이킹 프로 요스케 씨도 스케치북을 흔들다가 손을 흔들다가 방법을 바꾸어 가며 고전했지만, 양쪽 다 수확은 없었다. 살이 타다 못해 익어가는 기분이었다. 라멘 집에서 보급받은 차도 이미 다 마신 지 오래였다. 




어언 한 시간 반쯤 지났을까. 인근 도로에서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곳들은 다 돌았고, 마지막으로 가망도 없어 보이는 직선 도로에서 기대도 별로 하지 않은 채 힘없이 손을 흔들던 와중…. 거짓말같이 한 차가 서기도 벅찬 갓길에 멈췄다. 창문이 내려가자 차 안에서 멋들어진 선글라스를 낀 두 여자가 보였다. 미즈호, 아유미 씨는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그만두고 퇴사 여행을 함께 온 절친이었다. 두 분은 꾀죄죄한 남자 둘을 구하러 온 선녀들 같았다. 우린 아기자기한 섬들이 청록색 바다와 어우러진 절경을 옆에 두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니시세토 자동차 도로를 건넜다. 각자의 여행기와 인생사를 읊자니 눈 깜짝할 새에 시코쿠의 초입, 이마바리에 도착했다. 

▲ 미즈호, 아유미 씨가 꾀죄죄한 남자 둘을 구해주셨다.


평소 내 페이스대로라면 이마바리까지 이동한 거리만으로도 충분히 많이 온 편이었으나, 요스케 형님은 날이 저물기 전에 값이 싼 숙소가 있는 도시까지 도착하고 싶어 하셨다. 언제 또 히치하이커와 동행을 해보겠는가. 난 요스케 형님과 함께 가기로 했다. 1km 밖에서 봐도 땀 냄새나게 생긴 남자 둘한테 운전자들이 눈길을 줄까 하는 의심도 잠시. 아직 엄지손가락을 들지도 않았는데 봉고차 한 대가 멈췄다. 역시 프로 히치하이커는 뭔가 다르다.


시코쿠에서 만난 마을들은 왠지 호젓했다. 역에도 사람이 별로 없었고, 마땅히 식사할 곳조차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정말 시골 그 자체였다. 에히메와 카가와현을 제외하곤 상당히 낙후된 지역이 시코쿠라는 설명을 현지인들한테서 들을 수 있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한적함, 고요함이 존재했다.     

바쁜 일상과 효율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여느 도시와는 자못 다른 분위기였다. 시간이 멈춰 있는듯한 동네에서 애를 쓰며 움직이는 사람은 우리뿐인 것처럼 보였다. 차분하지만 배려심 가득한 시코쿠 사람들의 도움 덕택에 우린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카가와현의 중심부, 타카마츠 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언제나처럼 흘러간 하루지만 이동한 거리도, 일어난 일들도 평범한 날의 그것보다 훨씬 압축되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한 요스케 형님과 난 진득한 동료애와 유대감을 느꼈다. 


형님은 한평생 가고시마 근처의 섬에서 살다가, 이사할 곳을 찾기 위해 이번 여행을 계획했다고 했다. 기왕 아무것도 모르는 새로운 곳으로 이사할 참이라면, 일본 전역을 돌아보고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에 정착하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발상은 심플하면서도 끝내주게 멋졌다. 난 형님이 그를 부르는 도시를 꼭 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헤어짐의 시간이 다가왔다. 우린 마치 슬램덩크에서 주인공 두 명이 하이파이브하는 장면처럼 서로의 손뼉을 강렬히 부딪치며 서로의 앞길에 행운을 기원했다. 나는 이렇게 요스케 형님과 헤어진 줄 알았다. 최소한 이번 여행에선 말이다. 



     

사누끼 우동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타카마츠 시와 사누끼 시가 속한 카가와 현은 우동이 대단히 유명한데, 에도 시대 이전부터 사누끼국에선 사람들이 우동을 만들어 먹었다고 전해진다. 원조이기도 원조고, 그 맛이 월등히 우수해 사누끼 하면 우동이 연상되는 건 당연지사가 되었다. 


통계에 의하면, 카가와현에 사는 시민들의 1년간 우동 소비량이 무려 230그릇(...) 이라는 조사도 있을 정도니…. 사누끼 시 일대는 거의 우동 천국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지경에 이른다. 사누끼 우동이 유명하다는 정보만 알고 있던 나는 이게 얼마나 무지막지한 것인지 알지 못한 채로 도시에 입성하게 된다. 

▲ 우동 명소, 사누끼.

우선 과장을 하지 않은 채로 얘기해도, 시내에 나가 보이는 음식점 중 9할은 우동집이다. 세련된 간판의 프렌차이즈 우동집을 시작으로, 노련한 실력으로 우동면 반죽을 치대고 있는 주방장이 눈에 띄는 노포들이 시장과 거리를 한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무 가게나 들어가도 좋다. 탱탱한 면발과 감칠맛 나는 육수는 먹는 이로 하여금 찬사를 내뱉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든다. 종류는 또 얼마나 많은지. 우동면에 걸쭉한 카레를 부어 내는 카레 우동, 고소한 버터에 볶아 맛을 낸 가마바타 우동, 카가와현에 맞닿아 있는 세토 내해(內海)에서 잡아 올린 통통한 붕장어를 살짝 데쳐 우동과 곁들인 아나고 우동까지. 이곳 사람들의 창의력은 모조리 우동 레시피에 쏟아부은 건가 싶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우동이 메뉴판에 올라가 있었다. 물론 모두 일품이라 말할 수 있을 만큼 맛있었다. 우동을 원체 싫어하는 나마저도 정신없이 후루룩거리게 만드는 카가와 우동은 살면서 한 번쯤은 꼭 직접 가서 먹어 볼 만하다고 추천한다. 


그러나 이것도 삼시 세끼를 우동만 먹으니까 완전히 질려버렸다. 밥을 먹고 싶어도 찾기가 어렵다. 그리고 같은 가격이라면 우동이 현저히 싸서 우동을 선택할 요량밖에 없었다. 카가와현에 머문 나흘간 식사메뉴는 안주로 먹었던 꼬치구이를 제외하곤 모조리 우동이었다.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르자는 내 신조에도 한계가 보이는 지점이었다. 사누끼 시를 지날 때 우동이 질리지 않냐고 현지인들에게 물어보자, 사람들은 매일 먹어도 맛있다고 했다. 이렇게 진력이 나버린 나는 시코쿠를 벗어나는 날을 기점으로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우동을 돈 주고 사 먹지 않는다. (정말이다.) 


아직 우동이 질리기 전인 타카마츠에서의 저녁. 매우 배가 고팠기 때문에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주문을 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아나고 우동을 흡입하던 도중, 어디선가 “파쿠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본을 일주하면서 별명을 쓰지 않고 박기쁨 그대로 이름을 소개했기에, 사람들은 날 파쿠상(パクさん,박 씨) 라고 부르곤 했다. 그러나 초행길에 지인 한 명도 없는 내가 어디서 날 부르는 소리를 듣겠는가? 그저 잘못 들었겠거니 하고 식사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정겨운 손길이 어깨에 얹히는 게 느껴졌다. 요스케 형님이었다. 난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많은 우동집 중 정확히 이 가게에서 이 시간대에 만나게 됐다니. 산술적으로만 계산해 봐도 말도 안 되는 확률이었다. 

“우린 전생에 형제였나 봐요”


형님은 내일 북쪽으로 떠난다고 하셨다. 나는 타카마츠를 조금 더 보고 가고 싶었다. 형님은 히치하이킹을 하시고, 나는 걸어서 가므로 속도도 다른 데다, 향하는 도로도 반대였으므로 정말로 작별의 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서로 꼬옥 포옹을 하고 음식점 앞에서 헤어졌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상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일주일 정도 지나 나루토 대교를 건너 혼슈로 돌아온 나는 고베에 도착했다. 고베에선 하룻밤을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기로 했다. 그것도 오자마자 바로 머문 것도 아니고, 수많은 게스트하우스 중에서 무작위로 하나를 고른 것이었다. 그날도 지친 하루를 보내고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마음먹은 날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왠지 잠자리가 불편해 새벽 1시에 눈이 떠지고 말았다. 난 자다가 깨도 침대에서 시간을 보내는 편인데, 갑자기 맑은 공기가 쐬고 싶어졌다. 나는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옥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옥상에는 한 사람이 몸을 뉠 수 있는 해먹이 걸려있었다. 해먹에는 누군가 이미 누워있었다. 


‘에이 아쉽네’


생각하고 돌아서서 다시 방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쿠상?”    


소름이 돋았다. 뒤를 돌아보기가 무서울 지경이었다. 해먹에 누워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요스케 형님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형님은 카가와현에서 오카야마를 거쳐 북쪽으로 오셨고, 오늘이 고베에서의 마지막 날이라고 했다. 나는 동쪽으로 뻗은 나루토 대교를 건너 고베에 도착했고, 오늘이 두 번째 날이었다. 머무는 방의 층수도 달랐기에, 새벽에 공기를 쐬러 나오지 않았다면 분명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마법이나 초자연적인 무언가의 개입이 아니고서는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나 의심이 들었다. 

▲ 요스케 형님과의 세 번째 만남. 이런 우연이 다 있을까.

난 오컬트적인 이야기나 비과학적인 개념은 거의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이날을 계기로 나는 인연이 지닌 신비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제삼자로서는 뭐 이런 걸 가지고 호들갑을 떠나 싶을 수 있겠지만, 확률상 나올 수 없는 눈금이 눈 앞에 펼쳐지는 걸 직접 경험한다면 내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르신들이 종종 ‘사람은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모르니 옷깃만 스치는 인연이라도 늘 조심해서 행동해라.’ 라곤 하셨는데, 이제야 그 의미를 알 것만 같았다.


그 이후부터 여행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더는 한번 보고 말 사람들이 아니게 되었다. 몇몇 사람들은 여행지에서의 인연이 그 자리에서 끝난다고 생각해, 다소 경망하게 행동하곤 한다. 여행을 온 사람도, 여행지의 상인 중에서도 말이다. 그러나 끝없이 드넓은 하늘 아래 당신과 누군가가 마주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신의 뜻이든, 자연의 섭리든, 혹은 정말 우연이든. 우리는 어떠한 이끌림에 의해, 수천 겁의 인연으로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글로 맺어진 나와 당신의 관계도 각별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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