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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로시 Aug 13. 2022

망가지는 것은 아픈 소리를 낸다

[상처끄내기] 2화 공황장애라는 보호색을 입다

공황의 보호

2019년 직장생활을 5년 정도 했을 때였다. 잘 버티고 있는 줄 알았던 내게 찾아온 또 다른 병벗

살아남기 위한 전쟁터가 된 직장에서 쓰러지지 않기 위해 버텼다. 동료들을 잃어갈 때도 살아내야만 했기 때문에 슬픔을 애도할 시간조차 갖지 못했다. 나에게 힘이 되어주던 한 언니는 "마음이 돌덩이가 짓눌러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만큼이나 아프다"라고 고통을 토로했다. 언니는 끝내 퇴사를 했다. 어째서 우릴 그렇게 아프게 했을까.

회사의 권력이 비이상적으로 한 사람에게 쏠리고, 선봉장이던 그는 쥔 권력을 휘두르기만 하면 됐다. 괴롭힘의 수단이 되어 눈 밖에 난사람을 향해 공격이 들어갔다. 이유가 없다면 이유를 만들어가며 혼이 나야 했고, 소리를 질러대면서 존엄을 말살했고, 아파도 쉬는 꼴조차 보지 못했다. 우린 개인의 휴가에 이유를 대야만 했다. 끊임없는 복종의 강요와 본인의 감정을 무기로 휘둘러도 괜찮았다. "너 내가 누군 줄 아냐며" 자신의 위엄을 과시할 수 있는 힘이 있었으니까. 그 힘 앞에 우린 절멸할 존재일 뿐이었다.

절멸하지 않으려 폭언마저도 감수해야 했던 우린 모두 저마다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렇게 한 명씩 잘려 나갔다. 보기와 다르게 강하다 듣던 나에겐 다른 변화가 있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사무실 한편에서 숨을 쉴 수 없게 된 것이다. 숨이 막힐듯한 공포가 나를 꽁꽁 휘감았고, 나를 둘러싼 세상이 통째로 흔들렸다. 심장이 벌렁대며 죽을 것만 같았다. 마음이 마구 비명을 질러댔다. 바로 옆에 앉아있던 상사의 존재는 나를 잡아먹을 것만 같은 괴물로 변모했고, 잡아먹힐 것만 같은 때에 차라리 공황에 삼켜지는 것이 최선이었는지도 모른다. 공황의 보호 아래 나를 숨겨야만 했던 것이다. 공황장애는 공격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나를 보호하기 위한 '보호색'이었다.



망가지는 것은 아픈 소리를 낸다

버틴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 시간은 버틴 것이 아니라 망가져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망가지는 것은 아픈 소리를 낸다. 살려달란 소리다. 지하철을 타는 것이 고통이 되고, 사람이 많은 곳, 출근길, 퇴근길 평범했던 모든 일상이 호흡곤란에 휩싸였다. 편집일을 할 때였는데 수시로 찾아오는 공황은 글자 내용이 움직이는 현상도 겪었다.(글자들이 움직이면 그게 또 무섭고 그렇다) 벌렁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심장병은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하기까지 했다. 숨을 쉬려면 어디든 안전한 곳으로 도망쳐야 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고 주문을 건다. 주변의 모든 것은 그대로지만 어긋난 마음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약도 한몫을 했다. 약을 먹지 않으면 잠도 자지 못했다. 불면은 또 다른 두려움이 되고 늘 불안에 놓여 있었다. 한 시도 불안하지 않을 때가 없었다. 불안만 느낄 수 있는 존재였던 것마냥.

그럼에도 나는 회사를 그만두지 못했다.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이었을까. 후에 나를 포함한 8명의 직원이 그분으로 인해 그만두게 되는데, 잘려 나가던 동료들의 잔해 위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 버텼던 걸까. 끝끝내 인정을 받게 되었다. 미움을 덜 받게 되었고 화를 내는 것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에 반해 아픔도 성장을 해서 온갖 병이 소리를 냈다. 전정신경염으로 일주일을 앓아누웠는데 일어서는 것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다. 일어나면 흔들리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 악착같이 하던 출근도 그렇게 되니 할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도 회사를 그만둘 것을 권고하는데도 무슨 악다구니로 버텼던 걸까. 병도 그 꼴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나 보다.


폭력이 무너뜨리지 못하게

병도 참다못해 결국 나를 놓았다. 결국 나는 두 번이나 기절을 하고 경련을 해서 응급실에 실려가고, 병원에 입원을 했다. 검사를 해도 이유모를 원인에 신경과까지 들락거리며 약을 처방받았다. 병에 짓눌려 나의 존재는 작아져만 가는데 먹어야만 하는 약은 늘어만 갔다. 오히려 나보다도, 병이 더 절실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을 하는데 '이러다 내가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비로소 그만둬야 할 명분을 깨달았다. 이렇게 죽을 순 없다고. 모두가 아파하며 끝내 떠났다. 나도 스스로 그 아픔을 끊어야 했다. 내가 그만둔다고 할 때 얼마나 아팠냐며 울던 언니도 내가 그만둔 이후에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모두가 그만둬야만 끝나는 일이었던 걸까. 기절해야만 용기를 낼 수 있었나 보다. 선량한 사람들이 그만둬야만 끊을 수 있는 폭력이 있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과 곳으로부터 나를 끊어내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단단한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괴물이 불이라도 뿜어낼까 봐 두려워 퇴사를 하지 못했던 것도 있었는데 온갖 병을 장착하고 나니 나를 잡아먹을 것만 같은 그가 더는 무섭지 않게 되었다. 일단 나를 아프게 하는 곳/사람으로부터 나를 구출해내야 한다는 결심이 앞서면 두려울 게 없어진다. 폭력이 나를 무너뜨리게 놔둘 순 없으니까.


아플수록 분명 해지는 것

강아지들은 자신들의 나약함이나 아픔을 드러내면 적에게 공격을 받기 때문에 습성상 아픈 것을 티 내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뭄이도 장염으로 엄청 아플 때, 몸을 벌벌 떨면서도 아프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누가 봐도 아픈 모습이었는데) 그러다가 나중엔 혈변을 보고 구토를 해서 억장이 무너졌다. 아픔이 분명해야만 치료할 수 있다. 숨기면 증상이 악화되어 손쓸 수 없게 되고 만다.

나약함이나 아픔을 드러내는 것이 자신의 약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러한 약점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나는 약할수록 강해질 힘을 낼 수 있다고 믿는다. 아플수록 나를 지킬 용기가 발휘하기도 하고, 괴롭히던 곳으로부터 씩씩하게 벗어났으니까. 나를 아프게 하는 것으로부터의 해방이 중요한 것 같다. 이현승 시인은  '생활이라는 착각'이라는 시에서 "우리는 아플 때 더 분명하게 존재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아플수록 더욱 분명하게 존재했다. 아픔에 에워싸였던 시간도 나의 존재를 더욱 분명하게 살아내게 했으니까. 그리고 끝끝내 내가 진정 원하는 나의 삶을 위해 '퇴사'라는 결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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