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우울증을 앓아도 살아 있을 수 있는 이유
12살 때부터 학교가 싫었던 나는 학교를 간 날부터 가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학교가 너의 놀이터냐'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였다. 차라리 학교가 놀이터였으면 놀기라도 했지, 철창에 갇힌 기분이었다. 갇힌 새를 풀어주려 학교를 뛰쳐 나갔다. 그런 나를 품어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둔 방에서 홀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울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미워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상처냈고,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버림받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던 나는 내가 버려지기 전에 스스로 세상을 버렸다.
일기장에 '죽고싶다'는 문장을 써서 선생님께 불려갔던 적도 있다. 12살 어린 나이 때부터 살아 있는 것은 고통이었다. 살아야 할 이유조차 느끼지 못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던 그 시절 나를 유일하게 이해해준 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 '자우림'이었다. '낙화'를 통해 자우림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아무도 내 곁에 있어주지 않았"던 나의 마음을 노래가 대신 아프게 토로해줬다. 나는 살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 난 더 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엄마, 미안해요
아무도 내 곁에 있어주지 않았어요
아무런 잘못도 나는 하지 않았어요
왜 나를 미워하나요? 난 매일밤 무서운 꿈에 울어요
왜나를 미워했나요? 꿈에서도 난 달아날 수 없어요
사실은 난 더 살고 싶었어요
이제는 날 좀 내버려 두세요
- 자우림 '낙화'中
중학교 시절에는 방송반 작가를 했었다. 작가는 (점심시간) 라디오 방송의 대본을 쓰고 곡선정을 하였다. 그때마다 나는 '자우림'의 노래를 질리도록 틀었다. 자우림의 노래는 학교에서의 유일한 해방이었으니까. 내가 숨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린나이부터 앓아온 우울증과 식이장애로 인해 긴 어둠을 홀로 지날 때에도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나를 받아줄 그곳이 있을까"라는 자우림의 샤이닝을 들으며 나를 받아줄 곳은 없어도, 나를 받아줄 노래가 있다는 것에 위로를 받았다. 식이장애 탓에 매일같이 혹독하게 몇시간을 걸을 때도 자우림 전곡을 들으며 악물고 버텼다. 아프고 절망하고 무너지던 순간 순간마다 자우림의 노래가 함께 있었다. 비명밖에 없던 아픔 속에도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모든 것이 숨죽이던 때에 유일하게 숨쉬는 것만 같던.
가장 힘든 때에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매일 매순간 자우림의 '위로'를 들었다. 가장 약해져 있던 여린 시간을 '위로'를 통해 견뎠다. 가장 확실힌 처방이었다. 자우림의 노래는 내 눈물을 닦으며 아픈 삶에 위로를 건넸다. 어른이 되고 자우림 콘서트를 4번이나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울고 웃으며 방방 뛸 때 나는 살아 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홀로 아픔 속에 외롭지 않도록 깊은 나락까지 함께 거닐어주던 벗. 유일하게 나를 품어준 노래가 있다.
세상의 끝에서 들려오는
당신의 노래는
따스하게 내 영혼을 감싸 안고
어둠의 골짜기 속에서
헤매는 나를 위해
영원한 사랑의 빛을 발하겠죠
- 자우림 'Oh, Mama!' 中
오랜시간 방황하며 아파하던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이들이 있다. 바로 나의 가족들이다.
내가 무너져 삶의 모든 끈을 놓는 순간에 이를 때까지. 그들도 같이 버텨야 했다는 것을 크고 나니 알았다. 삶을 포기하려 실행에 옮기던 밤, 그 밤은 우리 모두에게 상처가 되었다. 나는 내가 먹은 약을 다 토해내고도 일어나지 못한채로 잠들어 있다가 이틀 뒤에 깨어났다고 한다. 그때 엄마 아빠가 엄청 많이 우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엄마 아빠에게 내가 소중한 존재였다는 걸 나는 왜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을까. 깨어났을 때 내 책상에 놓여져 있던 엄마의 메모지가 떠오른다. '도로시야, 이제 우리 아프지말고 행복하자'라고 쓰여있던 엄마의 메모는 엄마의 울음이었을 것이다. 울음으로 꾹꾹 눌러 서로에게 다짐하던. 나로 인해 우리가족이 버텨야만 했던 시간이 아프고도 선명하게 존재한다. 그들은 묵묵하게 나를 버텨주었다. 내가 다시 돌아올 품이 되어준 가족들이 있기에 세상으로, 다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엄마가 "그동안 잘 살아왔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잘 살아온 건 나뿐이 아니라고 가족들이 있었다고 답해본다.
네가 있어 줬기에
나는 내가 된 거야
조바심 내지 않아도
곁에 있어 줘서
자우림 - '디어마이올드프렌드' 中
여전히 우울증을 앓고 있는 나는 집에 오면 버릇처럼 모든 불을 다 끄고 멍하니 있는다.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어느 것도 하지 않은채로 공허가 된다. 어둠에 익숙해져버려서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그런데 그 어둠 속에서도 유일하게 빛나는 존재가 있다. 나만을 향해 빛나는 애정의 눈망울. 나를 온전히 바라보는 뭄이가 있다. 그럼 어떻게든 어둠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 뭄이와 신나게 놀곤 한다. 뭄이와 노는 것은 평범해보이지만, 소소하지만 내가 누릴 수 있는 행복 중 가장 큰 행복이다. 함께 웃을 수 있는 행복을 뭄이가 알려주었다. 무기력한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것은 뭄이와 노는 것, 뭄이와 산책하는 것이다. 내가 이런 상황, 상태에서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 발휘할 수 있는 의지는 뭄이로부터 온다고 생각한다. 매일같이 산책을 나가는 것, 사실 우울증을 앓는 사람에겐 너무 힘든 일이다. 만약 뭄이가 없었다면 멈춘채로 누워만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뭄이를 위해 몸을 일으키고 움직인다.
누군가 무엇을 하는 것을 좋아하냐고 물어서 "강아지와 산책을 하고, 강아지와 놀아주는 것만이 가장 좋아요."라고 했다. 그때 그분은 '돌보는 것'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나의 행위에 의미를 붙여주셨다. 나는 그전까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를 탓했다. 그런데 내가 무언가 꾸준하게 하고 있음에 가치를 부여해준 뭄이 덕분에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나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내게 가치를 부여해주는 뭄이에게 고마웠다. 뭄이를 돌봄으로써 나의 '쓸모'를 유지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돌봐야 할 뭄이를 위해 자연스럽게 나를 돌보게 된다. 나의 공허에 찾아온 존재로 채워져 나는 더는 외롭지 않다. 무한한 애정을 주고 쏟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 힘들때면 뭄이에게 기대어 털뭉치에 얼굴을 부벼댄다. 털뭉치 뭄이에게 파묻혀 내 슬픔과 우울을 달랜다. 털뭉치 속 고요는 나에겐 유일한 안식이다.
주말내내 잠을 잤다. 깨어 있는 것이 때론 불안의 영속이다. 그럴 때는 뭄이를 끌어 안으면 뭄이의 평화로운 숨소리만 존재하고 따뜻한 온기만 맞닿는 "결계"가 쳐진다. 소진된 내가 비로소 온전하게 채워짐을 느낀다. 네가 있어 나를 잃을 순 없어. 맞닿은 우리의 숨소리는 연약하지만 꿋꿋하게 삶을 이어간다. 우린 이렇게 매일 살아남는다.
내보일 것 하나 없는 나의 인생에도 용기는 필요해
지지않고 매일 살아남아 내일도, 내일도
- 자우림 '팬이야'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