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끄내기] 3화 식이장애에 얽매인 삶과 거창하지 않은 치유
여자들에게는 지금까지 '날씬한 몸매, 마른 체형, 아름다움'이 미의 기준이 된다. 보여지는 것, 응시의 대상으로서의 육체는 '말라야만 한다'는 사회적 압박과 강요속에서 무리한 다이어트는 당연한 것이고. 심지어 어린아이들마저 '뼈말라족'이 되기 위해 마약성 '나비 약'을 먹어가면서까지 빼야 하는 압박 속에 시달리고 있다.
어렸을 때 나도 통통한 체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뚱뚱하다'는 놀림을 많이 받아야만 했다. 당시에도 통통하다는 것은 놀림거리가 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 뚱뚱하지도, 비만도 아니었음에도) 나에겐 '돼지'라는 별명이 붙었다. 차에 타면 "너 때문에 차가 무거워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둥 같이 음식을 먹으면 "너는 그만 좀 먹어라."라는 둥 존재하는 것, 먹는 것 자체가 수치가 되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말은 (여전히 잊히지 않는) 한 오빠의 이야기였다. "도로시야, 너는 하늘을 보지 못하겠네?"라고 오빠가 물었다. 그때 나는 순진하게 "왜?"라고 답했다. 내가 왜 하늘을 보지 못하는 건지 정말 몰랐으니까. 오빠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돼지는 하늘을 보지 못한대, 그러니까 너도 하늘을 보지 못하지." 그때의 충격은 이런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내가 뚱뚱해서, 내가 돼지라서 하늘도 보지 못하고 사랑을 받지 못하는구나.' 하늘을 보고 싶었던 돼지는, 무리해서라도 자신을 꺾어가면서라도 몸을 학대했다. 그로 인해 돼지는 하늘을 볼 수 있었을까?
12살 때부터 나는 극단적 다이어트에 전부를 걸게 된다. 사실 그 나이는 잘 먹고, 건강하게 자라고, 키가 커야 하는 나이였음에도 돼지라고 놀림받던 나는 가혹하게 "나는 먹으면 안 돼"라는 말로 채찍질을 하며 '먹는 것'을 거부하게 되었다. 먹지 않음으로써 돼지가 아님을 증명해야 했고, 굶어서 날씬해져야만 사랑받는다고 굳게 믿었다. 사랑받고 싶은 만큼 굶어야 하는 욕망이 커져갔고, 굶으면 굶을수록 거식증과 폭식증의 굴레에 빠졌다. 끝나지 않는 재앙이었다. 사랑받고 싶었던 나약한 꿈과 바꾼 저주는 '굶고-폭식하고-구토하는' 처절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굶어야 하는 때는 가혹하고 처절하게 굶었고, 폭식을 하던 때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심한 폭식을 했다. 그리고 혹독하게도 뭐든 먹으면 곧바로 구토를 해야 했다.
어떤 음식도 내 안에 남아 있어서는 안 됐다. '먹으면 살이 찐다'는 왜곡되고 뒤틀린 신념은 음식이 내 안에 들어온 '이물질'로 반응하게 되어 '구토'로 내보냄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었다.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살이 빠지는 것, 마르는 것'이라고 믿었던 내게 먹는 것은 죄였으니까. 먹으면 죄에 대한 처벌과 응징으로 화장실에 갇혀 구토를 했다. 나는 하늘보다 화장실 변기를 더 많이 쳐다봐야 했고, 스스로 부르던 '화장실 감옥'에 갇혀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 나중엔 내 존재가 '변기'인 것만 같다는 혼동까지 이를 정도였다. 나는 무엇이었을까.
변기통을 부여잡고 울었다.
변기통에 토한 음식들도 울었다.
음식들을 토하기 위해 헤집은 아이의 위도 울었다.
아무도 울어주지 않는 그곳에서 아이는 울었다.
화장실
지하철 화장실 마트 화장실 기차 화장실 집 화장실 교회 화장실 기숙사 화장실 고시텔 화장실
식당 화장실 화장실이면 어디 화장실이든 상관없이
그 아이는 그곳에서 토해진 음식과 함께 울었다.
화장실 감옥에 갇혀있는 죄수였다 그 아이는 먹었다는 죄를 지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형벌을 받아야만 했다.
- 2014. 03. 21 '우는 아이'
일어나면 폭식이 시작되고, 먹는 것밖엔 할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되었기에 나는 밤에 잘 때마다 내일이 오지 않기를 기도하였다. 내일이 오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나의 식사는 끝나지 않고 계속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폭식증일 때는 먹는 것을 절대 제어하지 못했다. 엄마가 계속 먹는 나를 보고 지겹다고 할 정도로 나는 먹었다. 미친 듯이 뛰쳐나가서 마구 음식을 샀다.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음식을 사 가지고 와선 그때부터는 처절하고 슬픈 폭식의 시간이 시작되었다.(먹는 것도 폭력이 되기도 한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나면 자신이 먹은 것에 대한 뼈저린 아픔을 직면하며 구토라는 대가를 치렀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끔찍했다. 굶기 위해 많은 시도들을 하였고, 약도 먹었고, 구토하는 것만으로도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변비약도 먹었다. 흔히들 식이장애 환자들은 변비약을 먹는다. 나는 변비약을 100개까지 먹었다. 처음에는 10알씩 먹었는데, 점점 효과가 없어지게 되자 나중에는 100알을 넣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 그때 나는 이렇게까지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식의 노예로, 약의 노예로, 벗어날 수 없는 저주를 헤매며 삶을 잃었으니까. 당시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은 터라 3년간 모든 외부로부터의 소통을 차단하고 저주에 빠져있었다. 그래서 매일 밤 기도했다. 낮과 밤이 바뀌어 밤에도 폭식하던 때에는 '내일이 제발 오지 않게 해 달라고' 눈을 뜨는 게 또다시 먹어야 할 아침이라 괴롭다며 울었다. 그렇지만 잔인하게도 내일은 왔고, 또다시 모든 것이 반복되어 눈물 젖은 팔을 움직이며 고통에 삐그덕 대는 쇼를 펼쳤다. 피에로처럼 비극을 펼쳐갔다. 너무나도 위태로운 삶이었다.
난간을 붙잡았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여기서 만약 떨어진다면 그런다면... 떨어져 버린다면
나는 죽을 수 있을까. 아니 나는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저주에서.. 나라는 저주에서..
닿을 수 없는 내 꿈이 저 멀리, 내게 손짓했다.. 뛰어내려..... 그런 너의 모습은 저주일 뿐이야.
이런 나의 모습은 저주일 뿐이야...
삐져나오는 살들을 숨기지 못해서 매번 숨을 참았다.
울 수는 없었다. 울면 인정해버리는 것이었으니까. 내가 살이 쪘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다시 굶어야 하는 걸까 또다시 나는 그 저주의 패턴 속에서 굶음을 택해야 하는 것일까
굶음도 먹음도 아닌... 먹는 것으로 사는 세상이 아닌.... 내가 살 순 없는 걸까.
먹는 나는 있는데... 나는 없다...
나를 잃어버렸다.
- 2013. 06. 06 '다리 밑으로 떨어질 순 없었다'
당시에 살이 많이 빠지던 때는 47kg까지 빠졌고, 살이 가장 많이 쪘을 때는 65kg까지 쪘었다. 안 해본 다이어트가 없었고, 안 해본 짓 없이 할 만큼 다했다. 그래서 꿈의 숫자를 이루기도 했고, 절망의 숫자에 좌절해서 모든 것을 내버리려 했던 때도 있다. 그리고 작년 겨울엔 37kg까지 빠졌었다. 여전히 나에겐 숫자가 나의 존재를 증명하곤 한다. 먹지 않음으로써 나의 존재가 살아 있음을 각인시키고, 끝없이 내려가는 숫자에 열광한다. 대학 때까지만 해도 식이장애를 계속 앓고 있었지만 취업을 하면서 식이장애로부터 벗어났다고 착각했다.(그렇지만 그때도 나는 엄청난 식이제한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50kg 초반이 되었고, 밥을 사람들이 먹는 것에 반의 반을 먹어서 48kg까지 만들어냈다.
나에겐 모든 것을 잃고 얻은 눈물의 숫자이다. 그래서 그 숫자를 계속 유지해왔다. 나는 더 이상 뚱뚱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다. "너무 말랐다.", "바람이 불면 날아가겠다." "말라서 뼈밖에 없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나에게 과분하다고만 느껴졌던 이야기를 듣다니. 예전에는 "그만 좀 먹어라"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면 살이 빠지고서는 "많이 좀 먹으라"라고 다들 나의 먹는 것을 독려했다. 나는 이제 먹어도 되는 사람이 된 걸까. 그렇지만 나는 그때도 먹지 않음으로써 끝없이 내가 이루어낸 숫자를 유지해야 했다. 그게 나의 존재가치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37kg가 됐을 때 어떤 것도 이루어낸 성과 없는 나의 삶에 내가 이루어낸 유일한 성과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끝없이 다른 것으로부터 증명해내려고 한다. 내가 숫자에 집착하며 내가 마름이 곧 나의 존재의 완성이라고 여기듯이 말이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체중계에 올라섭니다.
존재의 무게를 달아봅니다.
얼마나 가벼워졌는지 달다 보면, 닳아가지요.
겨우 무게를 덜어내고 있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무게를 닳아야,
버텨내지 않아도 되는 무게에 다다를까요.
위태롭지만, 아슬아슬하게 살아지고 있습니다.
사라지고 있는 것이겠지요.
자,
우리는 함께 뒤엉켜 고꾸라지고, 나동그라져도,
줄어드는 무게와 함께 소멸하고 있어.
끌어안은 숨은 외롭지 않아
줄어드는 삶은 비극적이지 않아.
없어져가는 존재는 초라하지도 않지
환희와 환멸,
닳아가는 무게는, 환멸을 품고 몸을 던집니다.
우리의 곱고 처연한 소멸의 결말입니다.
- 내가 쓴 자작詩 '무게를 닳아, 소멸해가는 중입니다'
그런 삶이 있을까. 마르지 않아도 되는 삶. 요즘 뉴스를 보면 10대들이 '뼈말라족'을 동경하며 (나 때는 '프로아나'라고 했고, 나도 프로아나 카페를 가입해서 거기에서 본 말도 안 되는 방법들로 식이를 제한하고 별짓을 다했다.) 식욕억제제이지만 마약류로 분류된 '나비 약'을 구해서 먹어가며 굶고, 자신의 마름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삶을 살고 있는 소식을 많이 듣는다.
우리는 왜 말라야 하는 걸까. 우리는 왜 말라야 하는지도 모르고, 말아야 예쁘다는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그렇게 우리의 '食'을 잃었다. 식을 잃으면 결국 건강도 잃고, 모든 것을 잃는데도 모른 채로 '뼈말라'가 된 나에게 가치를 부여한다. 뼈말라가 되면 모든 것이 행복해질까? 사실 나는 37kg까지 되어봤지만(현재는 40kg대 초반에 있다.) 그때도 행복하진 않았다. '더 말라야 하는 삶'이었으니까. 37kg였지만 더 빠져야 한다고 집착했다. 35가 되어야 하고, 30이 되어야 하고, 사실 말도 안 되는 숫자이지만 그것이 내게 절실했다.
우리는 어떤 숫자에 이르러야 만족할까. 어쩌면 우리가 이르러야 하는 숫자에 이르기도 전에 죽음이나, 병원에 입원하는 게 더 빠를 수도 있다. 내가 37kg일 때 병원에 입원해서 강제로라도 먹어야 한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으니까 말이다. 나도 여전히 40kg 초반임에도 '마르지 않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더 말라야 한다'며 나를 채찍질한다. 이전의 아픈 학대가 아직까지도 이어져 온다. 우린 우리 몸에 조금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세상이 우리 몸에 관대하지 않아도, 우리 스스로 우리 몸에 관대해진다면, 숫자가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 자체로 내가 살아 있는 것 자체로 나답게 먹고,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세상이 '날씬한 여성을' 요구하지만, 세상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 것, 저항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나는 '내가 말라서 이 세상에 더는 내 존재가 남아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라서 소멸되었으면 좋겠다'라고 할 때 37kg를 찍었다. 그런데 살려고 마음을 먹으니까 40kg 대가 되었다. 우리는 소멸되지 않아야 한다. 존재 자체로 아름다운 존재들이 더 이상 소멸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와 뭄이는 아침 밤으로 산책을 하면서 하늘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생각이 났다. 하늘을 보지 못했던 건 내가 아니라, 나를 품고 있던 하늘을 보지 못했던 그 오빠였는지도 모른다고.
이제 내 곁에 있는 뭄이와 나는 하늘 아래를 매일같이 걸으며 서로의 건강을 기원한다. 우리가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 뭄이가 밥을 먹지 않으면 내가 먹지 않는 것보다 더 걱정되고, 뭄이가 마른 것이 내 탓인 것만 같을 때가 있다. 실제로 뭄이가 아플 때 뭄이는 먹지를 않고 계속 토를 했다. 그때 나는 비로소 '먹는 것'이 건강의 척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멈뭄이가 잘 먹는 건 건강한 것이다. 건강해야 지킬 수 있다는 것도 절로 느꼈다. 그리고 뭄이는 내가 줘야만 밥을 먹는다. 내가 없으면 밥을 먹지 않고 기다릴 때가 많다. 그렇기에 '내가 밥을 주는 것'은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뭄이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행위이다. 먹지 않음으로써 증명해야 했던 삶에 찾아온 존재는 건강하게 잘 먹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서로를 잃지 말자고.
이제 억지로 굶지 않아도, 서로에 기대어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다. 치유는 거창하지 않다. 같이 하늘을 볼 수 있으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