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의 문(연재)

외전 2: 문을 보지 못한 사람

by Leo Song

9개의 문



외전 2: 문을 보지 못한 사람



인트로


모든 사람에게 문이 보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에게 세계는
끝까지 세계로만 남는다.


그들은 선택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간다.



이전 이야기


문은 하늘에서 사라졌다.
빛과 언어, 이름의 서는 닫혔고
기록은 인간의 삶 속으로 내려왔다.


외전 1에서,
도윤은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
조용한 선택을 했다.


그러나 이 세계에는
그 선택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1

민수는 늘 같은 시간에 출근했다.
같은 정류장에서 내렸고,
같은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는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문제없이 살고 있고,
특별히 나쁠 것도 없었다.


민수에게 세계는
예측 가능했고,
그래서 안전했다.



2

그날 아침도 다르지 않았다.
횡단보도 앞,
빨간불이 켜져 있었다.


민수는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뉴스를 스크롤했다.

누군가의 사고,

누군가의 분노,

누군가의 실패.

그는 무심히 생각했다.


세상은 원래 이런 거지.



3

그때,
옆에 서 있던 노인이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손을 뻗을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민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나쁘지 않았다.
도망치지도 않았고,
의도적으로 외면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생각했다.
누군가가 하겠지.



4

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움직였고,
노인은 사람들 사이에서
겨우 중심을 잡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누구도 넘어지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민수는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하루는
아무 흠집도 없이 이어졌다.



5

그러나 그 순간,
아무도 보지 못한 곳에서
기록이 하나 비어 있었다.


선택하지 않음.


개입하지 않음.

알았으나 움직이지 않음.

그것은 죄도, 악도 아니었다.

다만 방향을 잃은 흔적이었다.



6

그날 밤,
민수는 이유 없이 피곤했다.


몸이 아픈 것도 아니었고,
큰 스트레스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는 소파에 앉아
멍하니 TV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오늘 내가 한 게 뭐였지?


그러나 떠오르는 것은
회의, 식사, 이동 같은
기록되지 않는 시간들뿐이었다.



7

민수는 알지 못했다.


그날 아침,
자신 앞에 문이 있었다는 것을.


그 문은 빛나지 않았고,
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그저
한 발짝의 방향으로만
존재했을 뿐이다.



마지막 문단

문을 보지 못한 사람은
문을 거부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그저
문이 있는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끝내 알지 못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무지 속에서
하루는 아무 문제없이 흘러가지만,
삶은 조금씩
자신을 잃어간다.



다음 화 예고


외전 3 - 선택을 미루는 사람


저작권


ⓒ 2026 레오 송 All Rights Reserved.
무단 복제·배포·변형을 금합니다.
인용 시 반드시 출처를 명시해 주십시오.


#9개의문 #브런치연재 #외전 #문을보지못한사람 #선택의부재 #쉐미니 #전쟁 #존재 #윤리 #현대판타지 #판타지 #문제 #무지 #방향 #존재 #거부 #이동 #회의 #식사



매거진의 이전글9개의 문(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