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안부를 물어오는 사람이 있다는건 또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것은 꽁꽁 얼어 붙은 한겨울에도 가슴 한켠에 핑크빛 봄바람이 일어나게 하는 설레는 일이다.
나이가 드니 머리카락도 힘이 빠지는지 자꾸 쳐지는 것 같아 펌을 하느라 미용실에 앉아 니체의 책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조용하던 공간에 깡깡거리는 강아지처럼 휴대폰이 소리를 질러댔다. 사업하는 남편을 돕는 부산 사는 고등학교 후배가 전화를 걸어 왔다. 언니 어떻게 지내, 손은 괜찮아, 단풍은 구경했어.
응 아픈거 무시하고 사는 중이야. 늦은 가을 안부를 시시콜콜 주고 받으며, 서로의 건강을 빌며 다음을 기약한다.
집으로 돌어 와 묵은지와 뽀얗게 잘 생긴 가을 무를 넣고 시원 칼칼하게 동태탕을 끓였다. 한껏 부풀려진 식욕으로 점심밥을 한 술 뜨려는데 의정부에 계신 글 동무 오라버니의 번호가 좁은 집에 가득 퍼진다. 장녀인 나는 오빠가 없다. 경찰공무원으로 퇴임 후 농사로 소일하시며 글도 쓰시고, 봉사도 하시는 따뜻하고 훌륭하신 분이신데 내게 오라버니를 자처하셨다. 누이 잘 지내, 손은 어때, 제발 놀러 좀 와. 여기오면 글도 술술 써 질 걸.
네, 쌤도 잘 계시죠. 그저께 내린 빨강 농막을 덮은 눈 이야기를 전해 주셨다.
손이 고장나서 쉬게 된 게 1년이 다 되어 간다. 쉴 성격이 아닌 내가 쉬고 있으니 걱정들이 되는지 잊지 않고 근황을 물어 봐 준다. 고마움 그 이상의 마음에 코끝이 시큰하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궁금함으로 나의 자리가 있다는 건 참으로 찡한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