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는 아이

단편동화

by 오늘

엄마는 오늘도 나를 못 찾았습니다.

“누굴 닮아서 바퀴벌레처럼 쏙쏙 잘 숨는담.”

엄마가 내가 숨어있는 문을 지나치며 중얼거립니다. 나는 몸을 잔뜩 웅크립니다. 엄마는 이불을 둘둘 말아 세탁기로 가지고 갔습니다. 덜컹덜컹 세탁기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돌아갑니다. 세탁기 소리가 바깥까지 다 들릴 것 같아요. 나는 그만 부끄러워집니다. 엄마는 페트병에 한꺼번에 타놓은 믹스커피를 잔에 따라 마시다 소파에서 잠이 들었어요. 나는 문 뒤에서 살금살금 나옵니다. 고양이 치치가 내게 다가와 몸을 비빕니다. 치치의 털은 아주 부드럽고 따뜻했어요.

야아옹, 치치가 울자 엄마가 뒤척입니다. 나는 깜짝 놀라 수도꼭지 속에 숨습니다. 미끈거리는 물이끼가 볼에 닿습니다. 엄마가 잠꼬대를 하는지 뭐라고 중얼거립니다. 수도꼭지 속에서 바퀴벌레가 나를 툭툭 건드렸어요. 나는 얼른 수도꼭지 밖으로 나와 내 방으로 갔어요. 치치가 나를 따라오려다 방문이 닫히자 문 앞에서 야옹야옹 울었습니다.

나는 숨바꼭질 대장입니다. 내가 숨으면 엄마도 아빠도 치치도 나를 찾지 못해요. 처음에는 옷장 속에, 그다음에는 침대 밑에 숨었고 어떤 날은 싱크대 안에 숨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엄마가 나를 제일 잘 찾는 편이었지만, 이제는 내가 얼마나 귀신같이 숨는지 엄마도 나를 찾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집에 와서 나를 부르면 엄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애가 수줍음이 많아서요. 또 어디 숨어있을 거예요.”

어떤 날은 엄마의 화장품 병 안에, 어떤 날은 동화책 속에, 어떤 날은 필통 속에 숨기도 했습니다. 케첩병을 열던 엄마가 뚜껑에 숨어있는 나를 발견한 적도 있었습니다. 엄마는 나를 손톱으로 끄집어낸 뒤 케첩을 닦아내고 탈탈 털었습니다. 나는 조금 납작해져 있었지만 곧 원래대로 펼쳐졌습니다. 엄마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습니다.

“사내아이가 이렇게 내성적이라서야......”

엄마의 말에 부끄러워진 나는 손으로 얼굴을 다 가렸습니다. 하지만 빨개진 볼은 다 감춰지지 않았을 거예요.



엄마를 따라 목욕탕에 갔습니다. 엄마는 내게 하수구 냄새가 난다고 했어요. 아마 수도꼭지 속에 숨은 탓이겠죠. 엄마는 지저분한 걸 아주 싫어해요. 목욕탕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몸이 딱 굳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저쪽에서 수진이가 걸어오고 있었어요. 나는 심장이 바닥에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수진이는 우리 반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고 인기도 가장 많습니다. 키도 아주 크지요.

학교에서 키 순서대로 짝꿍을 정했을 때 수진이가 내 짝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수진이가 내 짝이 되어서 기뻤는데 수진이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어요. 입꼬리가 살짝 일그러져 있었거든요. 선생님이 나가자 수진이는 뒷자리에 있던 은진이와 자리를 바꿨습니다. 자리를 바꾸자 수진이의 얼굴은 해처럼 환해졌어요. 그때도 나는 어딘가에 숨고 싶었는데 그땐 아직 숨는 법을 잘 몰랐어요. 하지만 이제 난 누구보다 잘 숨을 수 있습니다.

수진이가 나를 보기 전에 얼른 목욕 바구니 속에 들어갔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숨는 건 수진이보다 내가 훨씬 더 잘할 겁니다.

“얘가 또 어딜 갔지?”

엄마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어요. 수진이 엄마는 혼잣말을 하는 우리 엄마를 희한하다는 듯 쳐다보았어요. 수진이는 마알간 얼굴로 아이스크림을 핥아먹고 있었어요. 나는 예쁜 수진이 얼굴을 보며 역시 숨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너 이번에 찾으면 엄마한테 혼날 줄 알아.”

엄마가 이를 꽉 깨물고 중얼거렸어요. 엄마가 화가 난 건 슬픈 일이지만 어쨌거나 나는 숨어 있기로 했습니다.

“대체 뭐가 문제야? 다른 애들은 멀쩡하게 지내는데 너만 왜 이렇게 유난이야?”

집에 돌아온 엄마는 목욕 바구니에 대고 소리를 질렀어요. 주말이라 일찍 마친 아빠는 소파에서 TV를 보고 있었어요. 엄마는 아빠를 노려보며 말했습니다.

“애고 어른이고 똑같아, 사람 속 뒤집는 데는 아주 다들 도가 텄어.”
“당신 말 다 했어?”

아빠가 발끈했습니다. 나는 얼른 목욕바구니에서 나와 어항 속으로 숨었어요. 화가 난 엄마가 목욕바구니를 던지면 큰일입니다. 나는 헤엄치고 있는 거북이의 등껍질 속으로 숨어버렸습니다. 나 때문에 등껍질에서 쫓겨난 거북이가 바깥에서 등껍질을 계속 두드렸어요. 등껍질 속은 어둡고 컴컴했지만 숨기에는 아주 아늑했어요. 엄마 아빠가 다투는 소리도 아주 멀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잠깐 껍질 속에서 잠이 들었어요. 아주 오랜만의 단잠이었죠.



“야아-옹”

눈을 뜨니 치치가 어항 밖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어요. 둥근 어항 안에서 보니 치치의 얼굴이 원래보다 열 배는 크고 넓적해 보였습니다. 벌써 캄캄한 걸 보니 내가 잠든 사이에 시간이 많이 흘렀나 봐요. 엄마 아빠는 어디로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어요. 내가 숨으면 엄마와 아빠가 싸울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엄마와 아빠는 여전히 매일매일 다퉈요. 엄마 아빠가 싸우는 이유는 나 때문입니다.





어느 날 아빠는 술을 아주 많이 마시고 왔었어요. 꼭 태엽이 빠진 인형처럼 비틀비틀 걸었죠. 엄마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있었어요.

“쓸모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집은 내팽개치고 매일 술만 마시러 다닐 거면 결혼은 왜 했어?”
“뭐라고? 뼈 빠지게 일하고 온 사람한테 수고했다는 말은 못 할 망정! 남편 등쳐먹을 생각만 하는 이 고약한 여편네!”

엄마와 아빠는 무섭게 다투었어요. 나는 내 방에서 치치를 끌어안고 있었어요. 엄마와 아빠는 아주 오랫동안 싸웠어요. 그리고 똑같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어디에든지 숨을 수 있게 된 건 그때부터예요. 그날 엄마와 아빠는 진탕 싸운 뒤에 녹초가 되어 잠들었어요. 아빠는 맥주를 마시고 소파에서 널브러졌고 엄마는 소주를 들이켜고 침대에서 코를 골며 잠들었죠. 둘 다 악몽을 꾸는지 인상을 심하게 찌푸리고 있었어요.

내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엄마와 아빠가 싸울 일이 없었을까요? 나는 갑자기 어디론가 숨고 싶었어요. 그래서 치치의 털 속에 숨어보았죠. 치치의 털은 아주 부드럽고 따뜻해서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았어요. 나는 다음 날까지 치치의 털 속에 숨어 있었어요. 엄마와 아빠는 없어진 나를 찾는다고 온 집을 다 뒤졌죠. 그 날 뿐이었지만요.





“미로가 요즘 자꾸 출석부에 숨거나 학급문고 속에 숨어서 아이들을 곤란하게 하고 있어요. 원래 내성적인 아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학급 분위기라는 것도 있고……. 학교는 단체생활이거든요.”

선생님이 엄마 아빠를 보며 말했어요. 선생님의 입은 웃는 듯했지만 눈은 아주 차가웠어요. 엄마는 화를 참고 있는 것 같았어요. 아빠는 선생님의 말이 지겨운지 자꾸 하품을 했어요.

“아버님, 많이 피곤하신가 봐요.”

선생님이 아빠를 쳐다보며 말했어요. 아빠는 허허하고 너털웃음을 웃었어요. 나는 참지 못하고 선생님의 와이셔츠 주머니 속에 숨고 말았어요. 선생님은 짜증스럽게 나를 주머니에서 끄집어내서 탁탁 털었어요. 엄마의 얼굴은 곧 터질 것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어요.

“아무튼 신경을 좀 써주세요.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아야 하니까요.”

“네, 물론이죠. 저희도 여러모로 신경을 쓰려고 한답니다.”

엄마가 대답했어요. 선생님은 입꼬리를 살짝 당겨 미소를 지었어요. 억지로 미소를 짓느라 엄마의 얼굴이 일그러졌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가 쏟아졌어요. 천둥 번개가 치고 꼭 먹물을 뿌린 것처럼 하늘이 시커맸죠. 엄마의 구두는 흙탕물에 엉망이 되었어요. 자동차 와이퍼가 고장 나서 아빠는 계속 짜증을 냈어요. 나는 습기가 축축하게 달라붙은 차창에 딱 붙어있었습니다.

“미로가 날 닮았으면 사교성이 아주 좋았을 거야.”

이번엔 아빠가 먼저였어요.

“그걸 말이라고 해?”

엄마가 뒤이어 쏘아붙였어요. 이제 시작된 거예요. 나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엄마 아빠 싸우지 마세요, 라고 말했지만 이미 두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어요. 엄마랑 아빠는 서로 내가 자기들을 닮지 않았다고 주장했어요. 엄마도 아빠도 닮지 않았다면 대체 난 누굴 닮은 걸까요? 나는 창문에 매달린 빗방울을 새기 시작했어요. 빗방울을 천이백삼십 개쯤 세었을 때 엄마와 아빠의 싸움은 끝이 났어요. 오늘도 두 사람은 같은 말을 하며 싸움을 끝냈죠.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결정한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몰라요. 엄마와 아빠는 내가 없었으면 정말 행복했을지도 모르잖아요? 아니, 정말 행복했을 거예요. 그러니까 매일매일 싸울 때마다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나는 왜 태어나서 엄마 아빠를 이렇게 힘들게 한 걸까요? 내가 태어나려고 한 건 아니지만, 그런 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내가 태어난 건 실수였는지도 몰라요. 늘 부끄러운 것도 아마 그래서일 거예요.

이제 엄마와 아빠에게 선물을 줄 거예요. 나는 정말 엄마 아빠가 그만 싸웠으면 좋겠거든요. 내가 다른 애들보다 잘하는 건 딱 하나뿐이에요. 그건 바로 숨는 일이죠. 나보다 잘 숨는 아이를 나는 본 적이 없어요.

나는 살금살금 엄마 아빠의 방으로 들어갔어요. 침대 옆 작은 테이블에 엄마의 물 잔이 놓여 있었어요. 매일 저녁 8시마다 엄마는 빠짐없이 두통약을 먹어요. 나는 투명한 물 잔 속으로 퐁당 뛰어들었어요. 그리고는 물이 된 것처럼 둥둥 떠다녔죠.

치치가 어디에선가 야아-옹 하고 울었어요. 엄마는 안방 문을 탁 닫았어요. 치치가 문 밖에서 문을 앞발로 긁어대는 소리가 들렸어요. 엄마가 물 잔을 들었어요. 역시 나를 발견하진 못했어요. 침대에 누워있던 아빠가 한숨을 쉬었어요. 나는 눈을 꼭 감았어요. 엄마는 두통약을 입에 털어 넣고 물을 들이켰어요. 이제 모든 건 처음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나는 엄마의 뱃속으로 돌아가고 엄마와 아빠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게 되겠죠. 차가운 물과 함께 엄마의 뱃속으로 삼켜지며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바로 이런 거였어요.


“그땐 참 행복했었는데 말이야, 미로가 태어났을 때, 그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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