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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Jun 14. 2021

긴 슬럼프가 지나간다

의식의 흐름으로 쓰는 일상 기록

  몇 주 내내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약을 타러 갈 때, 지방에 일이 있어 내려갔을 때를 제외하고 근 한 달가량 외출이 없었다.


 고요한 방 안에서 아이가 돌아오기 전까지 문을 닫고 무겁게 공기에 침잠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글을 써야 하는데 쓰기 싫었다. 아마 여러 곳에 응모한 글들이 별 소득 없이 떨어졌던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쓸 때는 소중했던 글이 누군가의 평가를 받고 난 뒤에는 처리장에 모여있는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처럼 느껴진다. 그런 일을 열 번쯤 겪고 나면 이렇게 무기력이 찾아온다. 슬럼프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상반기가 이렇게 지나간다고 생각하니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모르겠고, 그냥 뭘 해야 하지 생각하다가 하루가 지나가 버린다.


 그럴 때 나는 그냥 그렇게 지낸다. 이 마음이 시간이 지나 가라앉기를 바라며 계절을 창 밖으로만 지켜본다. 힘이 나지 않으면 힘을 내지 않는다. 나와 다투고 싶지 않다.


 어제 아침부터 생리통이 너무 심해 약을 사러 나갔다. 운전을 오랜만에 하니 속도를 내기가 힘들었고 주말 아침이라 문을 연 약국이 없었다. 덕분에 약국을 찾아서 동네를 돌며 천천히 드라이브를 했다.


 아직 물기가 별로 없는 화창한 날씨, 힘껏 걸으면 땀이 흐를 것 같은 아침 공기 속에서 계절을 마주했다.


 여름이 오고 있구나.


 올해 나를 힘들게 했던 계절이 여름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떠난다. 한 점의 추위도 남지 않고 물러가겠구나. 길던 내 우울도 떠나는 계절이 안고 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저 햇볕이 몸속에서 비타민 D를 합성하고 외출이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런 거겠지.

 

 외출을 하고 난 뒤에 진통제를 먹고 잠시 누워있었다.

 다시 글을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젯밤에는 꿈을 꿨다. 배우들이 등장하는 아주 선명하고 슬픈 꿈이었다. 고아원에 버려졌던 두 아이의 이야기였다. 눈매가 길고 쓸쓸한 남동생이 어린 시절 입양을 가며 헤어진 누나를 찾아가다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가격 당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아이가 보채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제로 본 것처럼 생생해 배우의 이름까지 검색해 그런 드라마가 있었는지 찾아보았다. 결국 내 꿈과 무의식이 만들어낸 이야기였지만, 슬픈 눈으로 누나를 찾아가던 그 동생이 무사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누나는 잘 살고 있다고 전해주고 싶었다.


 아마도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슬픈 글일지도 모르겠다.

 범죄와 죽음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다.

 살인사건의 범인이 청소년인 경우 선입견과는 달리 모범생으로 평가받던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글을 읽었다.

 범행의 내용은 존속살인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들은 아프다. 겉으로 봐선 모른다.

 나는 왜 아이들에게서 아픔을 볼까.

 비틀리고 뒤틀려 제대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

 결국 브레이크 없이 끝까지 가버리는 아이들.


 나이와 무늬만 어른이 되고 나니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더 힘겨운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어서.


 그렇게 반성하는 마음과 계절과 슬픔이 함께 손을 잡고

 나를 슬럼프에서 끌어올린다.


 또 일어난다. 무언가를 애도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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