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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점집 행차가 이렇게 이루어지고 난 후 우리의 김씨녀도 작심을 하게 된 지라 구봉사에게 통지를 넣는다, 날을 잡는다, 며칠 북새통을 떨어대더니만 드디어 칠성기도 올리는 날이 되었겄다. 그날 새벽 일찍 기침한 김씨녀는 몸을 정히 씻고 곱게 단장하는 정성까지 들이면서 속으로 곱씹기를, ‘그놈의 칠성기도에 결말이 좋지 않을 시엔 봉사 영감쟁이 그 못 쓰는 눈구녕을 곰방대 불로 지져버리리라!’ 이렇게 다짐도 하였겄다. 아침진지 잘 차려 먹고 시간 되어 고사 음식 잘 쟁여지고 집을 나서니 단걸음에 주만동이네 집에 당도하였뎌라. 그날은 마침 주만동이도 가회동 김진사 나리 댁 식구를 모시고 세검정 천렵 놀이에 따라붙었던 고로 구봉사는 두둑한 복채 받고 하우스 머니 뜯길 염려 없이 마음 편히 좌판을 벌일 수 있었으니 오죽이나 신났겠느냐? 어쨌거나 김씨녀를 맞이한 구봉사가 대청마루 안에다 주역 팔괘도 모셔 놓고 고삿상 번듯이 차려 제법 그럴듯한 분위기로 칠성기도를 올리는데 앞씻개로 경을 잘 치고 나서 축언 읊기로 들어가는 즉.
“천하언재아! 지하언재아! 고지직응 감이순통 하옵소서. 부대인자는 건곤도합 초합만상, 여천지로 합기덕 여귀신으로 합기길흉, 천지 불위어든 항어인호아 신호아, 곽박선생 이순풍 원천강 진희이 정명도 정이천 소강절 주회암, 제위선생이 축전축지 하옵소서. 금유 해동 유명 조선국 팔도 삼백육십육 주내에 한양성내 북부북방 화개동에 김곤명, 기묘 계유 임자 병오생 신수길흉을 점복이오되, 외무주장하야 기사가 착란키로 새 가장을 얻고자 하온데, 길흉선악을 물비소시!······ 물비소시!······”
어쩌고 하면서 듣기 좋게 축언을 풀어놓은 뒤 직업정신에 입각하여 잊지 않고 한 말씀 붙이기를.
“이때쯤에 정성이 붙어야 하거늘······.”
그러자 김씨녀가 고샅 쪽 뒤져 복주머니에서 돈 꺼내 유월에게 건네주니 구봉사가 들으라고 개다리소반 고삿상에 소리가 나도록 돈을 탕 내려놓는 유월의 눈길이 곱지만은 않았뎌라.
“어흠······. 물비소시, 물비소시!······ 옳지, 숨김없이 알려주시는고나!”
하여튼 옛적부터 점쟁이들 복채 밝히는 데는 귀신들도 혀를 댓발로 내두를 지경인즉, 이윽고 구봉사가 일어나 대청마루 끝을 밟고 서서 유월에게 엄숙하게 하명을 하는고녀.
“천수를 이리 내게.”
유월이 준비해 둔 물 사발을 건네자 구봉사가 그 물을 손으로 찍어 마당에 흩뿌리며 이제는 객귀를 쫓아낼 차례것다.
“객귀출송이요, 객귀출송! 휘이······. 휘이······. 객귀들은 다 물러가거라, 다 물러가아! 동방청제장군, 남방적제장군, 서방백제장군, 북방흑제장군, 중앙황제장군, 육갑장군 육을장군 천동장군 지동장군, 황건역사 좌부마원수 우부마원수 백마대장군, 둔갑장군 뢰동장군 팔만 사천 제위신장이 래도아!······”
목소리 장히 뽑아 격식을 새롭게 하고는 이제 마지막 순서를 위해 고섯상을 향해 돌아선 구봉사, 마지막 일갈을 날리는데.
“옴급급 여률령 사바하! 악귀를 영영 소멸 진멸진언, 천천명명화 지지평평화 인인생생화, 귀귀멸멸 귀귀찰찰 사사백사 대길장 여률령 사바하!······ 이제 절하시오.”
김씨녀와 유월이 손바닥을 잘잘 비벼대며 절을 부지런히 하는 중에 어느 틈에 좌정을 한 구봉사가 목소리 깔고 본격적으로 점괘를 뽑을 차례라.
“게 앉으시오. 아씨 춘추 서른 나이에 비소비로(非少非老) 화원조춘(花園早春)이니, 이 아니 좋은 때인가. 이때를 허송하면 종래 유한이오, 나아가 조상에 죄인이라! 내 지금부터 하는 말, 하나라도 빼먹으면 나중에 큰일 날것이니, 새겨듣도록 하시오.“
“알았으니 사설 줄이고 본론만 얘기하오. 내가 좀 급하오.”
안달이 난 김씨녀가 콩닥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보채자 구봉사, 가래를 가악 끓여 삼키고 나서 폼나게 점괘를 풀어놓는 것이렸다.
“자알 들으시요! 제위선생 제위신장께서 일러주시길!······”
구봉사가 최후의 뜸을 들이느라고 한순간 말을 끊자 김씨녀와 유월이 귀를 바르르 떨며 구봉사의 주둥이를 힘껏 노려보는데.
“닷새 후 되는 날에 첫닭이 울거든 일어나서 목욕재계한 후에, 하늘에 암축하고 사방에 저쑵고 소찬으로 조반을 때우고, 그런 직후 숭례문으로 가 있으시오. 날이 밝으면서 숭례문이 열릴 것이고, 사람들이 들어올 것이라. 명심할 것은, 그중 첫 번째로 들어오는 사내를 놓치지 말고 붙잡아야 하느니, 바로 그자가 아씨의 천생배필이외다!”
으잉? 뭔 놈의 점괘가 이리 고약하단 말가? 유월과 뜨악한 눈길을 나누고는 김씨녀가 퉁한 목소리로 되받거늘.
“첫 번째 남정네를 잡아요?”
“그렇소이다. 그자를 잡아 작부(作夫)하면 부귀공명이 줄을 설 것이요, 자손이 또한 만당이라. 가마를 대령했다가 붙잡는 즉시로 태우고 집으로 가서, 덮어놓고 혼례를 올리도록 하시오. 그러면 다 끝나는 겝죠.”
하늘이 천생배필을 내린다는 말 앞에 어찌 따따부따 거릴 김씨녀리오만 그래도 걱정이야 안 될 리 있겠느냐?
“만약에 그이가 싫다고 내치기라도 한다면, 아녀자 몸으로 낭패 볼 게 아니오?”
“정 불안하거든 까짓거 든든한 장정 몇 달고나가 오라를 지어 가마에 짓쳐 넣으시구랴. 그럼 되지 않겠소?”
그러자 유월이 팔을 걷어붙이고 콧구멍 벌렁대며 일갈하기를.
“아씨, 이 내가 있소. 말 안 들으면 단짝 집어 들어 허리춤에 매달고 가리다.”
김씨가 유월의 듬직한 덩치를 새삼 훑어보고는 그건 그러면 되겠구나 싶어 다시 한 말씀 건네는데.
“그건 그렇다 치고, 염려스러운 게 또 있소이다.”
“뭡니까?”
“만약에 그이께 알토란같은 자식새끼며, 마누라가 시퍼렇게 살아있다면 그를 어찌할 것이며, 다리 한쪽이 짧거나 등 꼬부라진 곱사거나 코가 빠진 문둥이거나 혀가 빠진 벙어리라도 걸려들면 그를 또한 어찌하오?”
“병신 중엔 눈 빠진 봉사 병신도 있죠, 아마?”
“아이코, 영감님 전에 내 무안이 망극이오.”
“에헴······. 아씨께 왜 그런 걱정이 안 들겠소이까? 내 잘 압죠. 세상살이라는 것이 내 뜻대로 된다면야 그 얼마나 좋으리요만, 유부남을 만나야 한다면 그를 따라야 할 것이고 병신을 데리고 살아야 한다면 그 또한 따라야 하리다. 허나,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닌즉, 첩으로 살아도 부귀할 수도 있는 것이요, 병신 몸에 인정이 많을 수도 있는 게라오. 너무 걱정 마시오, 행복하게 살라고 천생배필인 게지 하늘이 점지하는 일에 어찌 불상사가 따르리까?”
김씨녀, 가만 듣고 보니 말인즉 맞는 말이라.
“휴우······. 잘 알아듣겠소.”
“헤헤헤, 점괘에는 혼자 사는 신체 건장한 사내로 나오더이다. 됐소이까?”
이 말 한마디에 김씨녀, 안도의 한숨이 장히 나오는고녀.
“그렇다면야 오죽 다행이겠소?”
“그리고, 좋게만 생각하면 만사가 좋게 되는 법이오. 암만.”
“영감님 말씀 죄다 지당한 말씀이오. 허나, 이렇게 요상한 방도로 내 천생배필을 찾아야 하는지, 그게 기구하오그려.”
“점괘가 그렇게 나오는 걸 어떡하겠소? 나야 나오는 대로 말씀드리는 것이고, 천생배필을 만들고 안 만들고는 아씨께 달렸소이다.”
“그런데 봉사 영감, 걱정되는 게 마지막으로 또 있소.”
“무슨 걱정이 그리 많으신가?”
“봉사 영감 말씀대로 그자를 집에 데려가 혼례를 치른다 칩시다. 허나, 옛말에 이르길 가사엔 규모라 했소. 아무렴 집례가 있어야 혼례를 치르고 격식도 살 텐데, 팔자 고치는 마당에 어디 가서 어느 분을 드러내놓고 모실 수 있겠소? 내 종내 그게 걱정이오.”
“아따, 서방 보쌈하는 판에 뭔 격식을 그리······.”
주책없는 이 말에 김씨녀 분기탱천하거늘.
“뭬요?!”
늙어 경오가 약해빠진 구봉사가 속으로 아차 하면서 얼른 김씨녀를 달랜다고 기껏 한다는 말인 즉.
“아이고, 내가 실언하였소. 분기 참으시요, 복채에 지장 있겠소.”
끝까지 복채 걱정을 하다니, 과연 구봉사의 투철한 직업정신이야말로 진면목일레라. 유월이가 분이 터져 씨근거리는 김씨녀를 겨우 달래고 나서 다그치는데.
“아, 어짤랍니까?”
“뭘?”
“집례 볼 양반 말이오!”
“으응, 그렇지. 그게 문제일세?”
구봉사라고 집례 부분에 대해서 딱히 이거다, 하고 생각나는 게 있을손가? 그런데, 유월이가 다시 나서서 명쾌하게 결론 내리기를.
“아씨, 따로 할 것 없이 봉사 영감께 부탁허십시다.”
“엥? 나를?”
“뭐 어떻다고 그러오?”
그러자 김씨도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싶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맺는말로 다지는데.
“격식도 격식이지만, 남의 이목 때문에 그러하니, 유월이 말대로 봉사께서 거들어 주소. 내 사례는 후히 하리다.”
돈 얘기가 시원하게 나오는데 까짓거 과부 팔자 고치는 혼례에 집례 한번 못 해줄까?
“아, 뭐 좋수다. 결자해지인즉, 내가 벌린 거 내가 마무릴 지으리다. 그럼, 내 그때 맞추어 댁으로 찾아갑죠.”
“그럼 부탁 좀 합시다. 유월아, 이제 됐으니 그만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