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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월 Aug 29. 2023

1일차

2부

1일차 (2부)


마닐라 국제공항에서 보니파시오까지는 25분 정도 걸린다.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오전 8시 정도에 숙소 로비에 도착했다. 체크인이 오후 1시부터여서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대니는 12시간 동안 밖에 있어서 그런지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는 호스트에게 계속 문자를 보내 숙소에 일찍 들어갈 수 있는지 물었고 호스트는 이미 게스트가 있어서 기다려야 한다는 답신을 받았다. 가이드랑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 기다림에 지친 우리는 우선 학원을 알아보기로 했다. 구글 지도에서 무작정 academy, institute라는 단어를 입력하고 검색되는 곳 중 가장 가까운 장소를 찍고 무작정 나섰다. 지도에는 30분 정도 걸으면 된다고 해서 택시비도 아낄겸 걸었는데 그 덕분에 걷다 죽는 줄 알았다. (너무 너무 더웠다. 우리는 그때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용감했다.) 결국 나의 몸에 밴 절약정신으로 돈 조금 아끼려다 개고생을 했다.


엄청 더운 날씨에 어렵게 찾아간 학원은 오프라인 수업 학원이 아닌 온라인 수업만 하는 곳이여서 학원 구경도 못하고 발을 돌려야 했다. 너무 더워서 스타벅스에 가서 음료수를 주문했는데 두 잔 음료수 값이 택시비보다 더 비쌌다. 나의 어리석음에 속상하려던 찰나, 대신 보니파시오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기회라며 혼자 퉁쳤다. 걷는 것만큼 확실히 그 도시를 아는 방법도 없으니 말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 같다.)


어쨌든 다시 걸어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 그랩 택시를 불렀는데 내 휴대폰에 배터리가 없어 계속 켜지다 꺼지다를 반복하다 결국 2번에 걸쳐 부른 그랩을 타지 못해 100페소의 페널티만 지불했다. (그랩 택시를 부르고 탑승하지 않으면 페널티를 내야 한다. 1건당 페널티 50페소) 보통 그랩 택시를 부르면 운전자로 부터 승낙했다는 문자를 받고 운전자는 중간중간에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는 notice를 보낸다. 그리고 택시가 pick up 장소에 도착하면 운전자가 마지막으로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그럼 나는 택시 번호를 확인하고 탑승 하는 방식이다. 배터리가 간당 간당한 휴대폰으로 겨우 그랩을 불렀는데 택시 번호를 확인하려는 순간 내 휴대폰이 꺼졌다. 그렇게 첫 번째 호출한 그랩을 놓치고, 대니 휴대폰으로 가까스로 내 휴대폰을 충천하고 또 다시 그랩 택시를 불렀는데 참 아이러니 하게도 택시 번호를 확인하려는 찰나에 또 휴대폰이 꺼졌다. 그렇게 그랩을 두 번 불렀지만 타지 않아서 페널티를 내게 되었다. 그 덕에 우리 둘 다 휴대폰이 방전되는 사태가 발생했고 휴대폰을 다른 휴대폰으로 충전 하면 둘 다 빨리 방전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길찾기를 구글 지도에 의존했던 우리는 휴대폰 두 대가 모두 방전되면서 오도 가도 못 하는 상황이 되었다. 도착 하루만에 필리핀 미아가 될 판국이었다. 나는 순간 당황했는데 그나마 대니가 왔던 길을 기억해 내면서 어렵게 길을 찾아 30분 거리를 장렬한 태양 아래 1시간 동안 헤매 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걸으면서 내 몸이 피곤한 것은 둘째치고 대니가 짜증을 내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덥고 피곤한데 옆에서 누군가 짜증을 낸다면 그 놈은 버려도 된다고 내 머릿속 회로가 막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다행히 한국에서 대니가 나름 짧은 선수 활동을 하며 쌓아온 체력 덕분인지 묵묵히 걷고 있었다. 돌아가는 내내 내심 짐을 로비에 그냥 두고 온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는데 도착해서 확인하니 그대로 있었다. 사실 가져가 봤자 뭐 없다. 한국 음식, 옷 몇 개라.. 그래도 어쩌면 필리핀 사람들은 좋아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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