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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든 햇살 Jul 18. 2023

봄이 장하다

낯선 땅에서 시작하기

  몇 주 전이었다. “시애틀엔 봄이 언제 오나요?” 시애틀로 이사 오신 분의 질문이었다. “지금 오고 있는데요.” 나의 대답에 그분은 고개를 갸우뚱하셨다. 삼월에 들어섰는데도 따스한 봄볕도 아지랑이도 보이질 않고 비는 겨울과 다름없이 꾸준히 내리니 그럴 만도 하다. 삼월 중순. 시애틀은 아직도 푹 젖어있다. 

  그와 대화를 나눈 지 두 주가 지난 지금, 비는 여전히 내리는데 꽃들이 하나둘, 피어난다. 그러니까 봄은 낮은 포복으로, 눈치 채지 못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벚나무 아래 헤더가 피었다. 작은 꽃들이 다투어 얼굴을 열었다. 기특하다. 알고 보면 봄은 외유내강이다. 새순처럼, 진달래 꽃잎처럼 여리지만 이렇듯 기필코 전진한다. 

  올봄엔 유난히 비가 많았다. 꽃망울이 터질 때가 다가오니 시샘으로 마음이 들끓는 날씨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비에다 우박, 바람, 햇살 그들 모두가 하루 안에 들어앉았다.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는 날씨로 꽃들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그러나 봄은 어느 틈새로인지 오고야 말았다. 

  그에 비해 한국의 봄은 바람을 뚫고 온다. 봄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말은 꽃샘바람이다. 꽃망울이 터져 올라 사람들의 시선을 모두 차지하는 것을 시샘하는 건 매콤한 바람이다. 봄꽃 닮은 원피스를 입고 꽃구경을 나서면 늘 바람이 치맛자락을 잡아당기곤 했다.  

  앞마당 벚나무가 며칠 새 궁궐처럼 꽃을 피우더니 소복이 올라온 참나물 위로 꽃그늘을 드리웠다. 돌봐주지 않아도 해마다 잘도 올라오는 부추도 제법 키가 자랐다. 참나물 두 주먹, 부추 한주먹, 양파를 조금 썰어 넣고 부침개를 만들었다. 달래 한 줌을 다져 넣고 양념간장을 곁들였다. 봄 향기가 푸성귀에 가득 담겨있다. 

  오늘 야키마 마트에 들렀다. 크기도 모양도 각양각색인 파프리카 한 봉지와 호박, 상추, 갓, 쪽파 씨앗을 샀다. 계산대 앞에 서니 프리지어 향기가 코끝에 스친다.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 “이 가게는 해마다 언제 문을 여나요?” 아가씨는 삼월 첫째 주 수요일이라고 했다. 내년부턴 첫날의 손님이 되리라. 계산이 끝나고 고맙다는 말 대신 “저는 이 가게가 참 좋아요.”라고 고백했다. 부끄럽지 않게 아가씨가 생긋 웃어주었다. 

  겨우내 잡초가 무성해진 밭으로 나갔다. 씨앗을 심기 전 잡초를 뽑고 흙을 뒤집어 주어야 한다. 삼월에 비가 많이 온 이유인지 올해는 유난히 이끼 꽃이 많이 번져있었다. 장갑을 사용해도 될 텐데, 그냥 흙과 풀들이 맨손에 닿는 것이 좋았다. 가끔 지렁이가 나타나도 반가웠다. 잡초를 뽑아내고 호미로 굳어진 땅을 긁어주었다. 햇볕과 바람과 비가 솔솔 흙 속으로 스미어들기를. 지난가을 받아두었던 들깨와 케일, 갓 씨앗을 심었다. 이렇게 작은 씨앗들이 풍성한 먹거리로 자라날 미래를 그려보았다.

  시애틀에서의 첫봄, 우리 가족은 삼월 초에 시애틀에 도착했다. 보잉이 호경기라 아파트를 찾기 어려워 구석진 곳을 얻었다. 대낮에도 전등을 켜놓아야 했다.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큰 아이가 축 처진 어깨로 학교에서 돌아올 때도 비가 내렸다. 사월까지도 비는 그칠 줄 몰랐다. 낯선 땅, 시애틀이 웃어주어도 서먹한 마당에, 하늘은 줄곧 울먹거리기만 했다. 첫 인상이 이리도 험악했으니 비와 친해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은 당연했다. 

  미루어진 봄이 결국 다가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고 비가 잦아들자, 가게마다 화분들을 내놓았다. 그리고 고대하던 봄을 열렬히 환영했다. “결국, 마침내, 드디어, 봄이 왔습니다.” 어느 가게에 써 붙인 글귀를 보고 이곳 사람들 모두 나와 같은 마음이었음을 알았다. 시애틀 사람들처럼 봄을 반기는 이들이 있을까? 긴 우기를 견뎌 햇살을 맞는 마음은 나비의 날갯짓처럼 나풀거렸다. 그때부터였다. 해마다 이맘때면 봄의 햇살로 녹아버린 마음은 축축했던 긴 겨울을 다 용서해주는 것이다. 

  오래전 시애틀에서의 첫봄은 어쩌면 내 삶의 봄이었다. 나는 가난했고 어리둥절했다. 새로운 땅에 뿌려진 씨앗처럼 뿌리를 어디에 내려야 할지, 또 그 결과로 나는 무엇을 얻고 잃게 될지 궁금했다. 발아래 현실은 복잡했지만, 소명 앞에서는 용감했다.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당황과 설렘이 공존하는 매일이었다. 

  농부가 가장 행복한 때는 봄이 아닐까? 가을처럼 풍성한 수확을 누릴 수는 없지만 못자리의 소명에 충직한 봄은 가장 용감한 계절이 아닐까? 창밖의 풍경은 매일 부지런히 변해간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느라 분주하다. 해마다 반드시 돌아오는 봄이 있어 좋다. 봄이 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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