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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든 햇살 Aug 15. 2023

둘째가 수술 받던 날

   둘째 아이가 수술 받던 날, 아침부터 줄곧 비가 내렸다. 시애틀의 비와 잘 사귀어 보려 했건만 병원에 가는 날, 비가 더욱 스산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병원 문을 들어서며 “엄마, 왜 나만 자꾸 아픈 거야? 수술하면 많이 아파?”하면서 녀석 답지 않게 잔뜩 겁먹은 눈으로 올려다보며 물었다. 몇 해 전엔 피가 나는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응급실 대기실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놀더니만 이번엔 제법 현실감이 있는 모습이다. 매사에 주장이 강한 딸이 모처럼 약한 모습을 보이니 나도 모르게 위로하고 싶어졌다. “우리 집 용감한 딸 맞아? 너 서두르는 버릇 있잖아. 그래서 이 세상에도 한 달 먼저 나왔잖아.” 부슬부슬 떨어지는 빗물을 닦으며 녀석이 씨익 웃는다. 

  학교에서 줄넘기 시합을 한다고 열심히 뛰더니 얼마 전부터 아랫배가 아프다고 했다. 의사가 탈장이라고 했을 때 조산으로 태어난 것이 생각났다. 마지막 달에 막혀야 했던 작은 복막의 구멍이 다 다물어 지지 못한 채 세상에 나온 것이다. 무엇이 그리 급했을까. 응급실 신세를 지는 일로 몇 번 나를 놀라게 했던 딸이라 더 이상의 사건은 사양한다고 그렇게 주의를 주었건만 또 병원 갈 일이 생긴 것이다.

   남편은 아침에 출근하면서 수술시간에 맞추어 병원으로 오겠다고 말했지만 나는 엊그제 서운했던 일이 생각나서 아무말 하지 않았다. 그는 목표 지향적이고 논리적이다. 가장으로서 장점이기도 하지만 그 점이 가끔 내 맘을 상하게 한다. 위로받고 싶을 때 투정을 하면 논리적으로 따져서 격려는커녕 나를 더 비참한 꼴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감성의 차이 라고나 할까. 그래도 내가 무시하는 그의 감성이 불쑥 고개를 들 때가 있기는 하다. 몇 해 전 눈 내리는 산길을 운전하고 있을 때였다. 흥이 난 남편이 갑자기 “자, 지금 우리는 천국의 계단을 올라가고 있어요.”라며 흩날리는 함박눈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놀라며 “당신답지 않아요.”라고 하자 남편은 고개를 저으며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아직도 나를 잘 몰라.”     

   대기실에서 몸이 자꾸만 소파 속으로 끝없이 떨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며칠째 물만 마셔도 목이 아팠다. 

온몸에 열이 오르고 입을 벌려 말하기도 힘이 들었다. 불안한 표정으로 옆에 앉은 딸에게 의지할 만한 대상, ‘엄마’라는 그 이름에 합당하게 아프지 않은 척하느라 안간힘을 썼다. 녀석은 알까. 그 순간 나도 자꾸만 엄마를 소리쳐 부르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을.

   수술시간이 다 되어 남편이 도착했다. 흐린 날씨 때문일까, 염려되어서일까, 들어오는 얼굴이 까칠하다. 셋이서 고개를 숙여 조용히 기도를 드리고 나니 간호사가 딸아이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긴장한 아이를 돕느라 내가 늘 감탄하는 그 미국식 유머 몇 마디로 금방 아이를 무장해제 시켜버린다. 수술실에 들어갔다. 선한 얼굴을 한 두 명의 젊은 마취의사들이 손을 내밀어 인사를 하고는 전신마취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의사가 막 마스크를 딸의 얼굴에 덮으려 하는데 남편이 갑자기 “잠깐만요.” 하더니,  “기도해도 될까요?”하고 묻는다. 나는 남편의 옆구리를 찌르며 “조금 전에 기도했잖아요.”하고 속삭이는데, 의사들이 당황스런 마음을 가리려는 듯 어색한 웃음으로 “물론이지요.”한다. 남편은 바로 고개를 숙이더니 자랑스러운 우리말로, 떨리는 목소리로 열심히 기도를 했다. 남편이 “아멘”하고 기도를 마치자 미국인 의사들 둘이서 얼떨결에 “Amen"하고 뒤따른다. 알아듣지 못한 기도에 박자 맞추어 응답한 자신들이 우스운지 잔뜩 미소를 띠었다. 고마운 얼굴들이었다.  

   바쁜 남편은 떠나고 오래지 않아 아이의 침대가 회복실로 밀려들어 왔다. 마취가 깨고 간호사는 아이에게 아이스바를 주었다. 창백한 얼굴의 딸이 받아들더니 내 귀에 대고 속삭거린다. “내가 포도 맛 달랬는데 오렌지 맛 줬어.”라고 속삭거린다. 병원에서 귀빈 대접을 받으며 호강하더니 감사를 아주 잊은 걸까? 마침내 두 번째 포도 맛까지 받아들고 생글거리며 말했다. “근데, 나 아빠가 기도할 때 우는 것 봤어.” 딸은 드디어 엄격한 아빠의 큰 비밀이라도 알아냈다는 듯 묘한 미소를 지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아이의 만족감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 눈 내리던 날, 내가 자기를 잘 모른다고 하던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안다는 것, 이해한다는 것, 공감한다는 것. 이런 단어들로 시작된 생각의 조각들이 금방 ‘피곤하다’라는 단어로 부서져 버린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엔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 있었다. “오늘은 그냥 그가 딸아이의 간단한 30분짜리 수술에도 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 한 가지만 그의 강한 얼굴 단면에 더하기로 하자.”

    집에 들어서니 자주 티격태격하던 두 딸이 갑자기 친한 척 소곤소곤 거렸다. 아빠 풀빵, 큰딸이 가뜩이나 큰 눈을 토끼처럼 뜨고 부지런히 방에서 나오더니 물었다 “엄마, 아빠가 울었다는 거, 진짜야?”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하는 말. “Weeping daddy? It's so scary!" 우리는 둘이서 낄낄대며 웃었다. 저녁에 남편이 돌아왔다. 나는 “저녁 다 됐어요.”라는 말로 우리 사이의 긴 침묵을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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