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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명작가 Jan 19. 2024

다시 만년필과 공책으로

아침 글쓰기 


공중에서 길을 잃은 느낌이다.  새해라고 새로운 결심을 하거나 안 하던걸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지금까지 하던 루틴이라도 잘 지키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브레이커가 제대로 걸렸다. 벌써 2주째 새벽 기상도 못하고 스스로 갇히던 글 감옥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겨우 새벽 6시 의무감으로 새벽 기도에 겨우 참여하고 있다.



그러다 문득 그동안 #번호 500일 넘게 쓰던 공책에 길을 잃은 듯한 내 마음을 적었다.  #400일까지는 하루도 쉬지 않고 아침에 눈을 뜨면 글을 썼다. 젤펜이 일주일에 하나씩 닳아 펜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만년필을 샀다. 마음에 드는 송로라는 이름을 가진 Pilot 잉크도 샀다. 



처음엔 공책도 Staple에서 자체 제작한 비싼 노트를 샀다. 두께가 두껍고 가격이 만만치 않아 아마존에서 몇 시간 고심 끝에 지금의 노트를 샀다.  벌써 2권째다. 만년필의 사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내 속에 올라온 온갖 소리를 새벽 기상을 하자마자 최소 3장을 적었다.



400일이 지나자 내 속의 소리가 잦아들면서 #512일까지 오는 데는 8개월이 소요되었다. 나는 매일 3장을 쓰던 루틴을 바꾸어  5년 일기 몇 줄에 내 기록을 남겼다. 벌써 2달 반 5년 일기 6-7줄만 썼다. 간간이 속이 시끄러우면 몇 장을 썼다. 하지만 내게서 자꾸만 이 공책은 멀어져 갔다. 사람이 완성되어 가는 중이라 스스로 위안의 말을 건넸다. 



그런데 길을 잃었다. 열흘이 넘어가지 자면서도 왜 그런지 생각하게 되었다. 밤늦게까지 너무 많은 일을 하는 탓도 했다. 하지만 뭔가 풀리지 않는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 아침 노트를 펼쳤다. 5년 노트 책갈피에 넣어둔 만년필을 꺼냈다.  예전에 스티커 묶음에서 아침마다 가장 마음이 가는 꽃을 찾아 날짜 아래 붙이던 루틴을 오늘 아침에 했다. 마음이 벌써 편안해진다. 


짙은 청록색 잉크가 사각 거라는 소리와 함께 왼쪽에서 오른쪽 글씨로 나타난다.  제각각의 자음 모음이 공책에 조화를 이루어 자리를 잡는다. 이 느낌 기억이 난다.  나를 위로하던 이 소리와 색깔 그리고 적으면 사라지던 복잡하던 감정들. 이 공책 이 소리 이 느낌은 길을 잃고 때로는 슬프고 화난 내가 길을 찾던 좌표였던 것이다. 이제 알았다. 


 오늘 다시 펜과 공책으로 돌아왔다. 


이 공책과 만년필을 멀리하면서 나는 편리함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인터넷이 주는 혜택 속으로 날마다 깊이 들어갔다.날마다 나에게 더 맞는 App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에버노트를 우연히 알게 되면서 내 모든 자료를 올렸다. 용량이 모자라 유료회원이 되었다. 매일매일 그 어떤 자료도 찾으면 올렸다. 이듬해 유료회원 결제가 자동으로 이루어지고 난 다음에서야 알았다. 내가 더 이상 에버노트가 아니 Notion에 정착하기 시작했다는 걸 알았다.  다행히 환불이 가능한 기간이라 이미 자동 결제가 끝난 1년 회원권을 환불받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가입은 용이했는데 환불은 절차가 까다로웠다.


원하는 절차를 밟고 메일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몇 번을 시도하고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환불이 가능한 시한이 끝나가고 있었다. 며칠 남지 않았을 때는 초조함이 커졌다. 첫 가입 때는 할인 혜택을 받아 저렴하다는 생각에 유료회원이라는 것도 잊고 있었다.


자동 연장은 아무런 혜택이 없었다. $80이 넘는 돈이 결제된 터라 꼭 돌려 받겠다는 결심은 환불 가능한 가능한 날짜가 3일이 되자 다급한 마음이 되었다. 여러 경로를 시도해 보다가 에버노트 직원과 1:1로 문자로 글을 주고받을 수 있는 데를 찾았다. 


그는 외국인이었다. 나는 실시간 한글 타이핑으로  그는 영어로 타이핑을 했지만 자동 번역이 되는지 그는 내 한글을 다 알아보고 문자를 주었다. 그가 내 상황을 알고 환불 조치를 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다시 물렀다. 환불이 안되면 어떻게 하냐고 했다. 그는 의아해했다. 이미 환불을 했는데 안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며칠 뒤 환불 금액이 통장에 찍혀있었다.


그 일 후 에버노트와 작별하고 노션에 완전히 정착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비로고 안착한 느낌이 든다. 에버노트와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험하고 있다. 


그토록 정리하고 싶었던 독서노트도 평생 쓰다만 가계부도 노션에서 어느 정도는 열심히 하고 있다. 매일 기록만 해 두면 월과 년에 자동 기입 되는 방식도 즐기고 있다.


세상은 디지털 논쟁으로 다시 뜨겁다. Chat gpt는 이제 앱이 되어 핸드폰에 아이패드에 깔리기 시작했다. 영어 회화 연습하는 상대로 적절하다고 너도 나도 그와 대화한다. 모든 게 수월해지고 검색도 신속해지기 시작했다.


2024년은 그 어느 해보다 큰 변혁의 해가 될 듯하다. 모든 사람들이  빛의 속도보다 빠른 속도로 AI도 속으로 들어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세상은 그렇게 빛의 속도로 변하는 오늘 아침 나는 다시 조금은 오래된 시대 사람으로 돌아왔다. 


다시 오래된 시대 사람으로 돌아와 만년필을 잡고 종이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연약한 인간일 뿐임을 깨닫는다. 기계가 짧은 문구 몇 자에 화려한 문서를 쏟아내는 이때 나는  초라하고 둔탁하고 다소 시시해 보이는 글쓰기  작업을 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안도감이 든다. 그 멋지고 화려해 보이는 문서나 그림들이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연약하고 부족한 피조물일 뿐인 것이다. 


그런데 미련해 보이지 않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왤까?








아침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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