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똥배를 어루만지는 외할머니의 주름진 손
식탁 위에 놓인 복숭아 통조림을 본 아내가 한마디 했다.
“또 병났는가 보네. 배탈이에요?”
삼복의 강아지처럼 거실 소파에 맥없이 늘어진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아내가 복숭아 캔을 따며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이게 그냥 설탕물이지 영양가나 있나... 통조림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을꼬...”
값비싼 통조림 영수증을 확인한 아내가 환자 앞에서 차마 대놓고 바가지는 긁을 수 없기에 핀잔과 위안을 섞어 중화시킨 표현이었다.
배앓이는 나의 연례행사다. 내 배는 냉한 체질이라 툭하면 장염에 걸려서, 삼복더위에도 배만은 꼭 이불을 덮고 자야 하는 똥배다. 여름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계절에 목젖을 톡 쏘는 청량감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찬 것을 벌컥 들이키면 꼭 화장실에서 뒤늦은 후회를 하곤 했다. 그때마다 내가 장염 약봉지와 함께 사들고 들어오는 게 복숭아 통조림이었다.
보통은 배탈이 나면 병원에서 처방한 양약을 먹고 절식하며 장기를 쉬게 하지만, 내 처방은 복숭아 추가다. 양약만 먹으면 속이 쓰리고 힘이 빠져서 소금에 절인 오이처럼 찌글한 몰골로 변하는데, 신기하게 복숭아가 들어가면 통증이 줄고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러니 끼니는 건너뛸망정 복숭아는 반드시 섭취했다. 다만 봄에는 복숭아가 제철이 아니라 부득이 통조림으로 대신한다는 게 흠이다. 배탈뿐 아니다. 감기몸살이나 자질구레한 병치레 중간에도 미음보다 봉숭아를 먼저 찾는다. 복숭아는 내게 입가심 후식 과일이 아니라 기운을 북돋우는 섭생 식이 었다.
나의 진정한 첫 복숭아는 5살 때였다. 충청도에 큰 과수원 농장을 하시는 외가 친척 집에 머물고 있었다. 외할머니께서는 어린 손자인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셨다. 지루한 황토 언덕을 넘자 나무들이 바둑판처럼 죽 정렬된 과수원이 나왔다. 뻗으면 손이 닿을 법한 작달막한 나무엔 누런 종이 봉지가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손자가 물었다.
“할머니, 과자 나무예요?”
도시의 꼬맹이가 보기엔 과자 상자였나 보다. 외할머니는 쭈글쭈글하고 갈라진 손으로 하나를 뚝 따더니 봉지를 벗겨 바지에 쓱쓱 문질러 손자에게 내밀었다.
“다 묵어야 된다.”
머리통만 한 발그레한 백도였다. 물에 닦지 않아서 그런지 솜털이 남아있어서 아삭 한입 베어 물때마다 입 주변이 따끔거렸다. 하지만 입속에서 터지는 그 향긋 달콤함이란! 노란 호박꽃에 빠져 정신없이 꿀을 빠는 호박벌처럼 손자는 머리를 처박고 한 개를 뚝딱 다 파먹었다.
“이놈이 복숭아벌레일세!”
할머니는 휑한 앞니를 드러내며 흐뭇해하셨다. 그날 저녁밥은 반도 먹지 못했고, 무섭고 냄새나는 외양간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거려야 했다. 손자에게 복숭아는 할머니의 사랑이었다.
폭염이 시작되면 오히려 배탈이 없다. 제철 복숭아 때문일 게다. 6월 말부터 장을 보는 내 손에는 어김없이 제철 복숭아 봉지가 들려있다. 천도, 백도, 황도... 냉장고에 봉숭아가 떨어질 새라 아내도 연신 사 날랐다. 내외가 장을 따로 보는 날엔 각자 사들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 한 소쿠리가 넘어도 봉숭아를 썩혀 버린 적이 없었다. 남들은 여름철 보양식으로 장어, 삼계탕, 쏘가리탕을 찾지만 나는 복숭아로 거뜬히 더위를 났다. 할머니가 배탈 난 손자의 똥배를 손으로 살살 문지르는 약손처럼, 복숭아는 할머니의 약손이었다.
복숭아는 신체뿐 아니라 마음까지 치유했다. 20여 년 전이다. 그 망할 놈의 IMF 때문에 재테크가 나락으로 떨어져 아파트 중도금이 공중분해되고, 때마침 회사에선 지방으로 발령을 냈다. 근무지가 경기도 외곽이었다. 돌이 지난 첫째를 데리고 난생처음으로 서울을 떠날 때, 한양에서 좌천되어 귀양살이 가는 선비의 심정이 그랬으리라. 살림집을 얻으려 했지만, 연고가 없어 막막했다.
다행히 먼저 터를 잡고 있던 학교 후배의 도움을 받아, 함께 집을 보러 가기로 했다. 후배의 승용차는 너른 논밭을 지나 자꾸 어디론가 들어갔다. 나는 이국적인 광경에 화들짝 놀랐다. 낮은 산등성이에 진분홍 꽃심이 사태가 난 화원이 죽 펼쳐져 있는 게 아닌가! 복숭아꽃이었다. 내 눈앞에 펼쳐진 융성한 복숭아밭은 콘크리트 숲으로 숨 막히는 도시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보였다.
“여기 복숭아가 유명하죠.”
“완전 무릉도원이야!”
낯선 두려움이 말끔히 가셨다. 싱싱한 복숭아를 산지에서 마음껏 먹을 수 있지 않은가! 복숭아밭을 출퇴근길 삼아 오가는 동안 둘째 아이도 생기고, 대출도 정리하여 월세에서 전셋집으로 옮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치열한 경쟁으로 아귀다툼에서 벗어나 유유자적 전원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다. 가끔 올라오는 서울은 숨이 턱 막혀서 이런 회색 숲에서 어찌 살았나 싶었다. 그래서 서울에 반드시 입성하겠다 아내와의 굳은 약속을 깨고 귀향지(?)에 눌러앉아 있다. 돌이켜보니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복숭아밭은 내 영혼을 치유한 무릉도원이었다.
엊그제 용인 5일장을 둘러봤다. 가판대 한편에 자리한 발그레한 햇복숭아가 첫사랑처럼 반가웠다. 아직 살이 푸르고 단단한 개복숭아지만 눈요기만으로도 힘이 불끈 솟았다. 할머니 약손 같은 복숭아가 있는 한, 여름은 어디나 무릉도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