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누나 인간이 학교에서 돌아와 투덜대기 시작했다.
“엄마, 왜 구름이는 말을 못해? 앵무새를 키운다고 자랑했는데, 친구들이 무슨 말 하냐고 물을 때마다 할 말이 없어!”
“그래? 친구들한테 구름이는 아직 유치원을 졸업 못해서 말을 못 배웠다고 해.”
“헐~”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 인간이 뭔가를 찾더니 내게 와서 말했다.
“구름아, 한번 따라해 볼래? 안녕.”
이런 시시한 말이나 따라하라고 하다니, 어이가 없다.
“구름아, 안녕.”
“자, 따라해 봐, 안녕.”
왜 나에게 계속 ‘안녕’이라고 말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이게 만나서 반갑다는 건지, 잘 가라는 건지, 아니면 그냥 인사치레인지.
내가 계속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침묵을 지키자, 엄마 인간은 핸드폰을 찾아서 내 앞에 내밀었다. 화면에서는 예쁜 언니가 나와서 내 앵무새 친구에게 ‘안녕’이라고 말을 걸었다. 그런데 그 ‘안녕’이라는 말이 끝도 없이 반복되는 것 아닌가!
마침내, 구원투수처럼 누나 인간이 방에서 나왔다.
“엄마, 뭐해? 너무 시끄러워!”
“한 시간 동안 ‘안녕’만 반복하면 앵무새가 따라 한다는 영상이라서...”
“계속 똑같은 말만 들으니 귀가 아파. 이제 그만 좀 해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누나 인간이 대신 해 주고 있다. 역시 직설적인 누나 인간, 마음에 든다.
사람들은 모든 앵무새가 사람 말을 잘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 중엔 말 흉내를 잘 내는 친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다. 흉내를 내지 못한다고 말을 못하는 건 아니다.
사실 앵무새가 사람 말을 흉내내는 것은 같이 세 들어 사는 인간을 닮고 싶어서다. 함께 사는 인간을 좋아하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을 따라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과의 교감이 깊어질수록 말도 빨리 배우게 된다.
그렇다고 내가 집에서 사는 인간들과 교감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나 같은 모란앵무는 단지 사람 말 흉내내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내가 사람 말을 못 따라 한다고 해서 사람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내 이름을 부르면 고개를 들어 쳐다보고, 칭찬해주면 기분이 좋아지고, 소리 지르고 화를 내면 놀라서 슬퍼진다. 다행히도, 나와 함께 사는 인간들은 내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듣는 것 같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을 알려주자면,
화가 나거나 싫어하는 장난을 당했을 때 “꽥~!”
기분이 좋을 때는 “삐약”
인간들이 외출할 때, 특히 누나 인간이 아침에 학교에 끌러 갈 때면 “삐리릭” (인간 언어로 번역하면 ‘화이팅’이다.)
인간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소리가 들리면, “삐릭”
졸릴 때는 “꾸룩 꾸룩”
인간들이 다 같이 모여 웃고 떠들 때는 나도 끼어들어 아빠 인간의 어깨에 앉아서 목청껏 한 마디 거든다. “빠약, 삐약, 빠약”
잠을 자고 싶지 않지만 억지로 엄마 인간이 나를 집으로 넣어 버릴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약간 불만스럽지만 칭얼대며 말한다. “뾱, 뾱” 엄마 인간은 이 말을 제일 좋아한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들의 삑삑이 신발에서 나는 소리 같다고.
인간은 왜 자신의 언어를 앵무새에게 가르치려고 할까?
인간이 우리 앵무새의 말을 배울 생각은 없는 것인가? 인간은 참으로 지구 상에서 가장 교만한 종이다.
엄마 인간은 이제 나에게 인간의 말을 가르치기를 포기했다. 대신 나의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참으로 기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