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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그리고 거기

출장 후 일상에서 느끼는 이질감과 안도감

by ㅈㅑㅇ



월요일 낮 회사 근처 작은 도서관에 갔어요.


이번 주까지 반납해야 하는 책이 있었거든요. 종종 가는 곳인데, 가는 길에 눈이 감겼습니다. 너무 졸렸어요. 주말에 17시간 비행기 타고 돌아와서 출근한 날이었거든요.


도서관에 계시던 익숙한 분들과 평소처럼 인사했지만, 내심 지금 제 상태를 광고하고 싶었습니다. 평소와 똑같은 것 같지만 그게 아니라고. 장시간 비행기 안에서 쪼그려 앉아있던 탓에 어깨도 아프고 너무나 졸리다고. 저쪽과 이쪽의 이런저런 일들 사이에서 좀 어리둥절하다고.


아주 먼- 길을 다녀왔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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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대략 12시간 차이가 나는 곳에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미국 오대호 주변의 어느 도시로 다녀왔죠. 그러니까 여기서 한밤중이면 그쪽은 한낮이고, 여기가 한낮이면 그쪽은 한밤중인 곳으로요.


출장 중에 저를 찾는 핸드폰 전화는 보통 새벽 2, 3시에 울리더군요. 그러려니 했습니다. 여전히 한낮에 심각하게 졸린 순간이 있지만, 적어도 한밤중에 저를 찾는 전화는 울리지 않네요. 다행입니다.


이제 티브이를 켜면 화씨 90도에 가까운 날씨가 시작될 거라는 일기 예보 대신, 낮 최고 31도 정도의 더운 날이 될 거라는 멘트가 나옵니다.


지금 거기에선 섭씨 대신 화씨, cm대신 inch로 이야기를 하고 있을 테지요. 여름휴가철을 위한 바비큐 그릴 광고도 계속 나오고 있겠죠?!


이스라엘이 지금 폭격을 받아 피난처와 옷, 마실 물과 음식이 필요하다며 당장 도움이, 당신의 행동이 필요하다는 광고가 나올 테고요.


거기와 달리 여기에선 그런 광고는 보기 힘듭니다. 여기에선 오히려 어쩌다가 팔레스타인 구호 물품 모집하는 광고는 봤던 것도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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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로비나 건물 입구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마주칠 때면 소소한 인사를 나누고 있을 겁니다. 가게에서도 점원과 용건 외에 두 세 마디 예의상 주고받을 거고요.


여기에선 너무 어색한 한 행동이지만요.


겨우 3~4일 있다 왔을 뿐인데, 왠지 누구라도 마주치면 hey how are you 인사해야 할 것 같아요. awesome, great이란 말도 입에 달아야 할 텐데. 여기에선 좀 더 무표정을 장착해야 하지요. 물론 제가 속한 일상이기에 금방 적응할 거예요. 누구보다 무표정한 얼굴로 군중 속으로 들어갈 겁니다.


그게 또 편안하기도 해요.


그냥 몸이 느끼는 피로감만큼이나 마음도 어리둥절합니다. 이질감과 안도감 사이에서 졸고 있는 기분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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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운전해서 출근하는데 어쩐지 운전이 낯선거 있죠. 요 며칠 거기서 운전하지 않고 탑승만 했다고 말이죠. 산타페나 소렌토, 모하비가 제법 큰 차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보통 사이즈예요.


거기에선 사이즈가 엄청나게 큰 차를 탔어요. 출장으로 만난 사람이 타는 차가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였거든요. 공식 연비가 8km 정도 되니, 실제로는 더 낮겠죠... 오늘 제가 운전한 차는 국도에서 평균연비 19km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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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나 익숙하던 거리의 풍경도 오늘따라 다릅니다. 여기 건물들이 너무 빽빽하고 사람들이 아주 많이 모여 지내네요. 이곳 가게에서는 주로 K-pop이 들리죠.


그곳의 낮은 건물들과, 일부 벽돌이나 돌로 지은 높은 건물이 기억나요. 거리나 가게에선 재즈가 흘러나왔어요.


자율배식 식판에 고추 장아찌, 된장국, 누룽지를 받아 드니 정말 이곳에 왔구나 실감이 됩니다.


샌드위치, 짭짤한 계란 오믈렛, 과일, 요거트, 커피는 당분간 안 먹어도 될 것 같아요.


여기는 정말 달라요.

아니 거기가 다른 걸까요.


여기서도 거기서도

2025년 6월의 어느 하루가 잠들고 깨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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