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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ㅈㅑㅇ Mar 28. 2023

자, 다들 식사하세요.

<고리오 영감> 삶은 부엌, 또는 식사와 식사 사이에 산다


끼니를 챙겨먹고 나와 드라마 같았던 책 <고리오 영감>에 대해 끄적인다. 책을 처음 펼친 것은 어느 화요일 저녁, 식전이었다. 이 책 사이사이에는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한 일상, 밥이 있었다.


<고리오 영감>에서 하숙집 보케 부인도 말했다.

고리오 씨가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 직후에.



자, 다들 식사하세요.
수프가 식겠어요.



삶은 식사와 식사 사이에 있다.
 
그 사이마다 감정들이 펼쳐지는 이야기, 연극,
가끔 시詩가 되기도 하는, 그것이 인생이다.
<고리오 영감>에서 삶은 그러하다.
 
장조아킴 고리오.

Jean Joachim Goriot.


그의 삶은 이러하다.


프랑스 대혁명 때 그는 제면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당시 공장장이 처형되면서 별로 눈에 띄지 않게 누구의 시기도 받지 않고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가 눈에 띌 무렵엔 성공한 제면업자였고, 두 딸과 아내와 행복한 가정을 꾸린 상태였다.


아내가 죽고 두 딸이 각각 귀족, 사업가와 결혼한 후엔 왕정이 복고된 때. 고리오 씨는 말하자면 사교계에서 어울리기엔 좀 시대적으로 곤란한 사람이 되었다.


이때부터 고리오 씨는 자식들과 같이 밥 먹지 않고, 보케 부인의 하숙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살았다.


그가 하숙집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풍채가 좋았다. 자식들의 성화로 사업은 정리한 상황에서, 여전히 자녀들의 허영과 행복을 위해 돈을 지출해야 하다 보니. 그는 자꾸 값이 싼 방으로 거처를 옮겨가고, 점점 남루해진다.


급기야 하숙집의 왕따 '고리오 영감'으로 자리 잡는데, 그는 뭐 이런 것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에게 그의 인생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아이들의 허영과 행복만이 곧 그의 인생이었다.


그가 정리한 평생의 사업, 청산한 연금, 죽은 아내의 은식기는 첫째 딸의 화려한 드레스가 되고, 둘째 딸의 연인이 기거할 아파트가 된다.


마지막에는

자신의 시체를 덮을

시트 한 장 살 돈도 없었다.

나참. 어쩌다 그 지경이 되었을까.




이야기의 배경은 프랑스. 빵이 주식이다. 그는 매 끼니의 재료를 탐구했다.


보케 부인의 하숙집에서 식사 때마다 그는 왕년의 제면업자답게 빵 냄새를 맡아보고 색깔을 관찰하면서 그것이 어느 지역 어떤 환경에서 자란 밀로 만든 것인지 가늠했다.


사업수완도 좋았다. 감각이 살아있는 사람이다.


그의 감각은 딸들 앞에서 마비되었다. 자식들이 주연인 드라마에 평생 취해, 마비된 것처럼 살았다. 자신에 대해 좀처럼 보지를 못하고, 종영 없는 딸들의 드라마를 살았다. 도대체 그의 삶과 시간은 어디로 증발했나.


인생이 식사와 식사 사이 어디쯤에 있긴 하지만.

끼니 그 자체가 인생은 아닌 것이다.

끼니 사이사이에 채울


고유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J는

중소 제조업체에서 일한다.

여기서 번 돈으로 가정을 꾸린다.


중소 제조업체가 모여있는 공장가는, 높이 5m 옹벽에 개나리 피는 계절을 제외하면, 고리오 영감 하숙집이 있는 뇌브생트주느비에브 거리를 떠올린다.


길거리 벽 함부로 붙은 간판과 광고전단지, 목줄 없이 돌아다니는 개들과 그 개들의 짝짓기, 이런저런 공장가 소음과 화학약품 냄새가 있다.


이 유쾌하지 않은 공간에서 쇼핑몰의 쾌적한 공기를 만드는 에어컨 부속 소재가 생산되고, 휴대전화 반도체 세척액이 처리되며, 대형 까페 및 식당용 냉장고가 유통된다.


일견 우울해 보이지만. 회사는 J와 가족의 안락한 집과 식사를 충당해 주는 소중한 곳이다. 단 이렇게 일하고 가정을 꾸려가는 게 J 인생의 전부가 된다면 굉장히 우울하고 인생이 텅 빈 느낌이 들 것이다. G도 때로 우울하지 않았을까.


밤에 원서 읽기를 하거나

이렇게 고전문학을 뒤적이는 것.

시간을 내서 끄적이기도 하는 것은.

끼니와 끼니 사이에 이야기를 채워가고 싶은

욕망의 발로이다. 여기에 내가 비로소 실존한다고 믿기에. 생기가 돈다고 어렴풋이 느끼기 때문이다.  






일상에는 의무로서의 끼니가 꽉 차있다. 아무리 우스꽝스럽고 비참한 일이 일어난다 해도 삶에서 식사를 뺄 수 없다. 한두 끼 빼먹어도 계속 안 먹고 버틸 재간이 없다. 먹는 행위는 삶에 필수불가결하다.


식사는 때때로 끼니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특별한 날의 근사한 식사에는 마음이 넉넉해지고. 함께 있어 좋은 사람과 식사하면 뭐든 맛있다. 세상의 모든 재미에 시들해진 책 속 귀족들도 최고의 정찬으로 삶의 재미를 탐닉한다. 먹는 방송을 재미있게 보는 사람들도 많다.



혹시 우리는

우리 이야기가 빈약할수록

식사 그 자체에 무게를 두는 것은 아닐까.


끼니는 음식으로 채워지고,

음식은 부엌에서 탄생한다.


고리오 씨는 딸들의 부엌이었고

부엌엔 항상 설거지거리가 쌓여있었으며.

딸들은 그가 공들인 정찬에 그를 초대하지 않았다.


책에서 스스로 지옥의 시詩가 되는 보트렝은

인생을 부엌에 비유했다.



 

부엌보다 더 멋질 것도 없고
부엌만큼이나 고약한 냄새도 많이 나지.
음식을 훔쳐 먹고 싶으면
손을 더럽혀야 하는 거야.
단지 손을 잘 씻는 법은 알아두게.
우리 시대의 도덕은 이게 전부라네.

 
 
 


보트렝은 냉철하고 힘 있지만 뒤틀려있다. 그에게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부엌이 인생을 보여주는 특별한 장소란 점은 절감한다. 부엌에서 식사가 잉태되니까.



주방에선 주로 음식이 만들어지지만 쓰레기도 꽤 나온다. 피를 보기도 하며, 끊임없이 청소를 해줘야 한다. 식사에는 이런저런 과정과 대가가 수반된다. 누가 됐든 반드시 치러야 한다.



그 음식으로

사람들이 움직이고, 생명이 계속된다.
이야기가, 연극이 계속된다.
가끔은 시詩가 된다.



책의 마지막.
주인공 외젠 라스티냐크는
고리오 씨의 장례식을 초라하게 치른 후
그의 연인, 둘째 딸 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간다.
의기양양하게.
 


나도 이제 그만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겠다.
오늘 저녁엔 뭘 먹을까.



한가롭게 이 책을 들고 있는 당신,
푹신한 의자에 깊숙이 엉덩이를 파묻고 앉아 '이 책 재미있겠는걸' 하고 혼잣말하는 당신은 바로 다음과 같이 할 것이다. 고리오 영감의 은밀한 불행 이야기를 읽은 다음 당신은 자기의 무심함일랑 저자의 탓으로 돌려 버리고 맛나게 저녁을 먹을 것이라는 말이다. 참 과장도 심한 저자라고 토를 달며, 시적으로 썼다고 탓하면서 말이다.

아! 이것을 알아 두시라. 이 극은 허구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다. <All is true>. 너무도 사실적인지라, 읽는 사람은 저마다 자기 집에, 필시 자기 마음속에 있는 요소들을 이 작품 속에서 식별해 낼 수 있다.

p.12 <고리오 영감> 발자크, 열린책들


Unsplash - Juliette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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