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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May 25. 2022

감귤 마켓 셜록 그 두 번째 이야기-3

유치원

선영은 오늘 회사에 좀 일찍 나왔다. 아침부터 예정되어 있는 임원급 회의를 준비하기 위해서 미리 준비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선영은 아율이의 등원을 선록에게 맡기고 혼자 서둘러 출근을 했다. 다행히 오늘 회의의 분위기는 좋았고, 그 분위기는 새벽부터 발표를 잘 준비한 선영의 덕도 있었기 때문에, 본부장은 괜한 생색을 내며, 선영을 일찍 퇴근시켰다. 그래 봤자 겨우 2시간 먼저 퇴근하는 거였지만, 모두가 회사에 남아 있는데, 먼저 회사를 나서는 기분은 마치 학창 시절로 돌아가 땡땡이라도 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선영은 회사를 벗어나자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평소에는 시간만 나면 하고 싶을 것이 많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시간이 나자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멍할 뿐이었다. 오랜만에 친한 친구를 만나려도 해도 친구들은 모두 회사에 있을 시간이었고, 전업주부인 친구를 만나려고 해도, 모두 먼 곳에 살아서 왔다 갔다 하는 데만 시간을 다 써버릴 것 같았다. 그나마 가깝게 살고 있는 조리원 동기들을 만나서 차나 마실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연락은 자주 해도 막상 얼굴을 보고 만난 적은 너무 오래돼서 그런지, 생각만 해도 그다지 편할 것 같지 않았다. 회사 앞에 차를 잠시 대고 한참을 생각하던 선영은 결국 그냥 아율이를 조금 일찍 찾으러 가기로 했다.


“내가 아율이 먼저 찾을게.”


“왜? 할 거 없어?”


“막상 나오니까 생각나는 게 없네.”


“왜? 마사지를 좀 받던가? 아님 피부과 가야 한다고 했잖아. 병원을 좀 가던가? 아니면 어디 커피숍에라도 가서 차라도 마시면서 좀 쉬어.”


선영은 참 신기했다. 자신이 생각하면 하나도 떠오르지 않던 것들을 선록은 참 쉽게 생각해 내곤 했기 때문이다. 선록은 항상 그랬다. 평소에는 별로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보이는 데도 자신이 필요한 것이나, 하고 싶다던 것들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끔은 자신도 자신의 마음을 모를 때, 선록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지금도 선록은 자신도 모르던 것들을 생각해내서 말해준 것처럼 말이다. 선영은 선록의 말 중에 좀 당기는 것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왕 아율이를 데리러 가기로 마음먹은 거. 그냥 아율이에게 가기로 했다.


“됐어. 어차피 시간도 얼마 안 남았어. 우리 아율이 놀이터 가는 거 좋아하는데, 일찍 데리고 나와서 놀이터에서 좀 놀지 뭐.”


선영은 아율이를 데리러 유치원에 갔다. 선영은 가면서 엄마가 평소보다 일찍 데리러 와서 엄청 반가워할 아율이의 모습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선영의 기대와는 다르게 유치원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고성이 오고 가는 엄마들의 모습이었다.


“아니, 원장님, 애들 관리를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예요! 제가 한두 번 말씀드린 게 아니잖아요.”


“하은이 어머님 진정하시고요.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그게 저희가 막 뭐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요. 저도 이미 몇 번이나 전화로 말씀드리기는 했는데…”


“아니 그래서요. 우리 애들이 언제까지 피해를 보고 있어야 하는데요? 우리 애가 뭐라는 줄 아세요? 유치원만 가면 자꾸 입맛이 없데요. 입맛이 그 냄새 때문에.”


“세호 어머니, 그럼 제가 등원을 하면, 꼭 양치부터 시키겠습니다. 그럼 세호나 하은이나 민정이도 다 괜찮을 거예요.”


“아니, 그걸 왜 담임 선생님이 해요? 담임 선생님이 뭐 걔 개인교사예요? 원래는 그 시간에 우리 애들 챙겨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 그리고 막말로 그럼 저희 애도 이제 앞으로 아침에 양치 안 시키고 보내도 되는 거예요? 예? 그럼 선생님이 다 시켜 주실 거예요?”


선영은 세 명의 학부모가 유치원 입구에서 원장 선생님과 담임선생님에게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당황했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본 결과 그 엄마들이 하는 말이 너무 어이가 없는 내용들이어서 도저히 가만히 듣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막말 맞네요.”


“예?”


“누구세요?”


갑자기 나타나 자신들에게 말을 건 선영의 행동에 엄마들은 당황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처음 본 여자가 자신들의 대화에 끼어들어서 자신들을 비난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너무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어서 그런지 그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그리고 선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들의 기를 꺾기 위해 바로 말을 이어갔다.


“저 아율이 엄만데요. 그럼 도대체 원하시는 게 뭔데요? 담임선생님이 등원하자마자 양치 지도를 해주는 것도 싫다. 그렇다고 가만히 두는 것도 싫다. 그럼 도대체 어쩌란 말이죠? 선생님들이 밤마다 찾아가서 얘 양치를 시키고 재우라는 건가요? 아님 출근길에 들려서 양치라도 시키고 오라는 건가요? 예?”


선영이 좀 강한 어투로 말을 하기 시작하자 엄마들은 당황하고 말을 얼버무렸다. 하지만 그래도 지기는 싫었는지, 그중에 하은이 엄마가 선영에게 다가가 따지기 시작했다.


“그건 선생님들이 고민해야죠. 그걸 왜 우리한테 물어요? 적어도 그 쓰레기 냄새나는 애 때문에 우리 애가 피해를 볼 수는 없는 거잖아요!”


“말 가려서 하시죠! 애들이 다 보는데!!”


선영은 순간 감정이 격해졌다. 이미 고성이 오고 가고 있어서 선생님들이 말리는 데도, 몇 명의 아이들이 입구 쪽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연호에 대해서 그렇게 말을 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불쾌했기 때문이다. 선영은 하은이 엄마에게 가깝게 다가가 눈을 마주치고, 낮은 목소리로 씹어가며 말을 했다. 하은 엄마가 선영의 포스에 기가 죽자 다시 목소리를 풀어 말을 했다.   


“도대체 아이들이 무슨 피해를 입었는데요?”


“세.. 세호가 유치원에서는 입맛이 없다고 한다니까요!”


선영은 세호 엄마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순간 웃음이 나왔다. 왜냐하면 엄마들의 싸우는 듯한 목소리에 현관 쪽으로 모여 있는 아이들 중에는 세호의 모습이 가장 눈에 띄게 서 있었는데, 세호는 그 순간에도 한가운데서 커다란 과자봉지를 든 채, 이쪽을 바라보며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호 어머니. 저기 좀 보시죠. 지금도 세호는 아주 잘 먹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리고 아율이 얘기 들어보니까 세호가 평소에도 자기 꺼 다 먹고 친구들 꺼 더 달라고 해서 같은 반 친구들이 많이 나눠준다고 하더라고요. 못 들으셨나 봐요?”


“아니 그거야…”


“그리고! 나머지 어머니들도 그래요. 유치원은 공동생활을 배우는 곳인데, 여기서부터 자꾸 자기 자식 입장만 내세우면, 애들이 뭘 배울까요? 제가 보기에는 우리 선생님들 엄마들이 이렇게 난리 치지 않아도 다 잘 가르쳐 주실 분들이세요. 게다가 우리 아이들도 나름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 어울리고 있고요. 그런데 무슨 걱정들이 이렇게 많아요? 우리 엄마들만 빼면 다들 잘하고 계시니까 적당히 하시고 돌아들 가시죠!”


선영은 오늘 임원회의 때문에 평소보다는 더 잘 차려입고 온, 지금 자신의 옷차림도 크게 한몫을 했다고 생각했다. 검은색 바지 정장을 입고, 당당히 서서 엄마들에게 따지는 선영의 카리스마에 엄마들은 확실히 기가 눌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엄마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선영만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 이미 상황이 종료됐음을 인지한 선영은 가벼운 목례만을 하고 선생님들에게 갔다. 그리고 일부러 더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제가 오늘은 일이 좀 일찍 끝나서 빨리 데리러 왔어요.”


“아.. 에.. 아율이 어머니 잠시만요.”


그 모든 상황을 보고 있던 담임선생님은 좀 당황한 채로 아율이를 데리러 들어갔다. 선영은 현관 앞에서 일부러 그 엄마들을 의식하지 않은 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선영에게 화가 난 엄마들이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선영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 맞벌이하는 거 맞지?”


“예. 그런 거 같아요.”


“아니, 남편이 얼마를 벌어오길래 맞벌이를 하나…”


“에효.. 그러니까요. 여자가 밖으로 나도니까 저렇게 독해졌죠. 그냥 우리가 봐줘요…”


마치 선영에게 들으라는 듯이 큰 목소리로 수근 대는 엄마들의 대화는 단 한 글자도 빠지지 않고, 그대로 선영의 가슴에 와서 꽂혔다. 선영은 한 번도 자신이 일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지도 않았고, 남편이 무능해서 자신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은 꽤 열심히 공부를 하던 학생이었고, 치열하게 준비하던 취업 준비생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들어온 직장을 여자라는 이유로 관두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순간 그런 자신의 신념과 노력을, 하찮게 만들어 버리는 말이 들리자 그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아율이를 봐서라도 그냥 넘어가겠다고 생각했던 아까의 다짐은 이미 사라져 버린 것이다. 결국 감정이 터져버린 선영은 그녀들을 향해 걸어가려고 했다.  


“저기여! 뭐라고요?”


그런데 그때, 갑자기 큰 키에 하이힐을 신고, 발목까지 오는 긴 트렌치코트를 입은 한 여자가 런웨이 위를 걷는 듯한 우아하고 당당한 걸음걸이로 그들의 사이를 지나갔다. 화려한 액세서리에 까만 선글라스까지 낀 그녀는, 선영과 엄마들의 싸움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유치원의 현관 쪽으로 유유히 걸어갔다. 선영과 엄마들은 그녀의 등장만으로 순간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모든 행동이 정지되었고, 그녀는 그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이 그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원장 선생님에게 말했다.


“연호요.”


순간, 선영과 엄마들은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지금 이 모든 상황에 대한 원인은 연호였다. 아니 연호의 부모였다. 그런데 선영이 그녀를 대신해, 그녀들과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그녀는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듯한 태도로 등장을 한 것이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연호도 그런 엄마를 닮았다는 것이다. 연호는 마치 이런 상황은 익숙하다는 듯이 무표정으로 걸어 나왔고, 밖에서 모두 자신만 쳐다보고 있는 상황에서도 아무런 동요도 없이 신발을 신고 엄마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걸어 나가려던 연호는 뒤돌아서 담임선생님에게 작고 조금 소극적이지만, 정확한 발음으로 말을 했다.


“안녕히 계세요. 그리고 선생님. 오늘부터는 제가 자기 전에 꼭 양치질하고요. 아침에도 꼭 양치질하고 올게요.”


그 순간, 선영은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밖에서 어른들이 다투던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무표정하게 인사를 하는 연호의 모습에도 웃음이 났고, 자신들이 뭐라도 되는 냥, 유치원에 갑질을 시전 하러 온 엄마들의 벙진 모습에도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선영이 가장 시원했던 건. 연호 엄마의 말이었다. 시크하고 당당한 걸음으로 그 여자들의 앞을 지나가던 그녀는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딱 한마디를 한 것이다.


“남자들이 오죽 못났으면, 저런 것들이랑 살까?”


선영은 그 한마디에 정말 큰 소리로 웃었다, 때마침 신발을 신고 뛰어나오는 아율이를 데리고 놀이터로 갔다. 선영은 정말 사이다 2리터짜리를 원샷한 것만큼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반대로 엄마들은 그 자리에서 분을 이기지 못하고 씩씩거리고 있었고, 유치원 선생님들은 그런 엄마들 때문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표정에는 웃음이 배어 있었다.


그런데 문득 선영은 엄마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연호의 뒷모습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아율이와 자신이 잡고 있는 것처럼 다정하게 손을 맞잡은 것이 아니라, 그녀가 연호의 손목을 잡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렇게 잡힌 연호의 손은 비정상적으로 많이 떨고 있었고, 심지어 연호의 걸음도 얼핏 보면 당당해 보였지만, 조금만 보고 있어도, 엄마의 걸음에 맞추기 위해 종종거리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연호의 엄마는 무표정으로 연호의 손목을 잡고 있을 뿐, 연호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그녀의 심장을 덜컥 떨어지게 만든 순간은 그렇게 잘 걸어가던 연호가 뒤돌아서 자신을 보내는 눈빛이었다.


“어? 연호 또 우네.”


선영의 옆에서 그들을 같이 바라보던 아율이가 갑자기 한마디를 했다. 선영은 순간, 그 말에 너무 놀라서 자신이 잘못들은 줄 알았다.


“뭐?”


“연호 또 운다고.’


다시 한번 되물어서 받은 아율이의 대답은 분명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 자리에서 아율이에게 많은 것들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녀에게 지금 더욱 신경이 쓰였던 것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기껏 자신이 연호에 대해 걱정하기 말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런 사건으로 문제가 된다면,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너무나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영 바로 아율이를 품에 안아서 차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를 향해 아율이를 안고 뛰는 내내 머릿속으로는 연호의 표정만 반복적으로 재생되었다. 그렇게 선영이 차에 도착했을 때, 본인이 아율이를 안고 뛰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지금 자신이 느낀 그 감정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선영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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