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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Aug 12. 2022

감귤 마켓 셜록 그 두 번째 이야기-8

샤인 머스켓

 그 여자가 또 왔다. 벌써 3년째 샤인 머스켓이 익어가는 계절이 되면 그 여자는 어김없이 과수원에 찾아온다. 처음에 그 여자가 과수원에 오게 된 것은 큰사위인 선록이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샤인 머스켓의 광고글을 올리고 나서부터였다.


[안녕하세요 2205동에 살고 있는 새신랑입니다.

죄송합니다만 홍보를 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글을 습니다.

(혹시 문제가 되면 바로 글을 내릴게요.)

실은 저희 장인어른께서 이 근처에서 과수원을 하고 계십니다.

주로 포도 농사를 지으시는데, 수확된 포도를 어디에 납품을 하시는 것이 아니고, 찾아오시는 분들께만 판매를 하시기 때문에 안 익은 포도를 미리 따지 않고, 잘 익은 것들만 그 자리에서 바로 따서 판매하십니다.

그래서 진짜 싱싱하고 맛있습니다.

(제가 원래 포도를 좋아하지 않는데, 요즘에는 하루에 두 송이씩은 먹는 거 같아요.)

진짜 한 번 드셔 보시면, 다른 포도 절대 못 드십니다. _ 진짜 보장합니다.

우리 아파트와 멀지 않으니 산책 삼아 놀러 오시면 포도도 직접 드셔 보시고 살 수 있어요.

추석을 준비하시는 분들이나 선물하실 곳이 있으니 분들은 참고하시면 될 듯합니다.  저는 아내가 이뻐서 처갓집 말뚝에 절하러 매주 가고 있거든요.

오셔서 저희 아파트라고 말씀하시면 더 많이 드리라고 제가 옆에서 펌프질 좀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제 처갓집 충성이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약도는 밑에 장인어른 장모님 연락처와 함께 첨부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록이 장가를 오고 나서, 그다음 해부터 자신의 아파트 카페에 과수원에 대한 홍보의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과수원의 고객의 반 이상이 선록의 아파트 주민들이 되곤 했다. 그 여자도 그때쯤부터 오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처음에는 검은색 외제차를 끌고 와서 높은 하이힐을 신고, 기우둥거리며, 과수원으로 내려오던 그 여자는 포도를 맛보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5kg짜리를 10박스나 사 가지고 갔다. 처음에는 진짜 많이 사간다고 생각은 했지만, 생각보다 단체로 주문해가는 경우가 좀 있어서 별다르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에 10박스를 사간 이후에 거의 매일마다 방문해서 매번 10박스씩을 사가는 것이다. 첫해에는 그렇게 5번이나 사 가지고 갔고, 결국에는 포도가 다 팔리고 나서야 더 이상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도 그 여자의 방문은 계속되었다. 여전히 매번 5kg짜리 포도를 10박스씩 사 가지고 가곤 했고, 매번 장인과 장모는 고맙다는 말을 했지만, 항상 무표정한 얼굴로 목례만 하곤 돌아갔었다.  그런데 작년부터는 그 여자의 방문이 달라졌다. 몇 년 전부터 새로 심었던 샤인 머스켓이 열리기 시작했고, 홍보를 하면서 까지 팔정도로 물량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가족들이나 자주 오는 지인들에게는 맛 보일 정도는 되었다. 특히 샤인 머스켓이라는 포도가 원체 비싼 품종이고, 흔하지 않던 시기여서, 와서 먹어 본 사람들은 엄청 좋아하곤 했었다. 그 여자도 그 시기에 포도를 사기 위해 자주 오고 있었고, 장인과 장모는 당연히 그 여자에게도 샤인 머스켓을 먹어보라고 권했다.


“이거 우리가 내년부터는 팔 것 같은데, 새로 나온 품종이거든요,”


“샤인 머스켓…”


“어? 이 포도를 아세요? 이거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많이들 모르는데? 드셔 보셨어요?”


“예.. 예전에요.”


“좀 떨리네요. 저희도 올해 첫 수확하는 거라서 맛이 얼마나 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우선은 지금 좀 드셔 보시고 내년에는 많이 팔아주세요.”


그 여자는 매번 끼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고 샤인 머스켓 한 알을 따서 입에 넣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눈물을 글썽이며 웃었다. 장인과 장모는 갑자기 우는 그녀의 반응에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여하튼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보는 밝은 모습에 걱정보다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맛이 어때요?”


“진짜 맛있어요. 정말 최고네요.”


“아 그래요? 정말 다행이네요.”


“제가 원래 단 과일을 안 좋아하는데, 샤인 머스켓은 처음 먹어보고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었거든요. 그래서 이거 진짜 비싼데도 하루에 한 송이씩은 꼭 먹었었어요.”


“언제요? 어디서요? 이거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아. 일본에서요. 제가 일본에 좀 오래 있었거든요. 일본에서 먹어 봤던 거예요.”


“아…. 맞아요. 이거 종자가 일본에서 만든 거예요. 뭐 지금은 개런티가 나가고 그런 건 아니지만.”


“저 한국에 들어오고 나서 입덧할 때도 이게 그렇게 먹고 싶었는데, 진짜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엄청 난리였었거든요. 근데 여기서 이걸 먹게 될지는 꿈에도 몰랐어요.”


“다행이네요. 맛있다고 하니까. 우리가 기분이 다 좋네요.”


그 여자는 샤인 머스켓을 먹더니 수다쟁이가 되어버렸다. 몇 년 동안 보여줬던 그 도도하고 차가운 이미지는 완전 다 사라졌고, 장인과 장모에게 수다를 떨면서 참 야무지게도 샤인 머스켓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어느새 장모가 씻어서 내온 샤인 머스켓을 세송이나 먹어 치웠고, 여자는 뽈록 나온 자신의 배를 만지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어떻게 해요. 제가 너무 많이 먹었죠? 이거 제가 계산할게요. 얼마 드리면 돼요?”


“아니에요. 이건 아직 파는 것도 아니고요. 내가 맛보라고 준거잖아. 그냥 가도 돼요.”


“아니에요. 이게 얼마나 비싼 건데요. 이거 일본에서도 제일 비싼 과일이었어요.!”


“지금은 파는 거 아니라니까. 그리고 그동안 우리 포도 팔아준 게 얼만데 돈을 받아. 내가 몇 송이 더 싸줄 테니까. 가지고 가서 가족들하고 더 먹어요!”


돈을 받지 않겠다는 장모의 단호함과 오히려 잘 먹으니 더 싸주겠다고 봉지에 벌써 담고 있는 장인의 고집에 그 여자는 결국 두 손을 들었다. 그녀는 결국 샤인 머스켓이 든 검은 봉투를 든 채 떠밀리듯이 과수원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다음 날 그녀는 그전과는 다른 아주 편안한 복장으로 다시 과수원에 찾았다. 그녀의 손에는 백화점에서 산 한우 세트가 들려 있었고, 극구 사양하는 장인과 장모의 눈앞에서 포장을 뜯어 버림으로써 자신의 고집을 보여주고야 말았다. 그 뒤로 그 여자는 수시로 과수원에 비싼 음식들을 사 가지고 와서 어르신들과 식사를 했고, 후식으로 샤인 머스켓을 몇 송이씩 먹고 가곤 했다.


그리고 작년부터는 기존에 사가던 캠벨 포도 대신 샤인 머스켓을 거의 쓸어가듯이 사가곤 했고, 올 때마다 덤으로 그 자리에서 2~3송이씩은 먹어 치우고는 했다. 장인과 장모는 언제부터인가 너무 밝은 표정으로 자신의 과수원에 찾아주는 그녀가 너무 고마웠다. 여전히 어딘가 모르게 도도하고 차가운 느낌을 숨길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자신들에게는 항상 살갑게 대하며 자신들의 포도를 엄청 많이 팔아주는 그녀는 이제 어느새 단순한 단골이 아닌, 그 이상의 정이 쌓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올해는 왠지 보이지 않았다. 몇 년째 수확시기만 되면 매년 찾아오던 손님이었고, 전화로 주문하는 일도 없고, 항상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결제를 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연락처를 물어본 적도 없었다. 장인과 장모는 서로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내심 그녀가 오지 않는 것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예년 같았으면 벌써 왔을 시기를 한 달이나 지나 샤인 머스켓의 수확량이 떨어질 때쯤 그녀가 갑자기 찾아왔다.


그런데 일 년 만에 찾아온 그녀의 모습은 그녀가 몇 년 전에 찾아왔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근사하게 차려입은 옷차림에 과수원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자와 선글라스, 구두까지 신고 있었고,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차가운 표정과 딱딱한 말투도 예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장인과 장모는 처음 봤던 그 모습이어서 낯설지는 않았지만, 또 작년까지 그들이 봤던 모습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어서 어색했다.


“오랜만이야. 올해는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벌써 샤인 머스켓 많이 팔았는데.”


“예.. 제가 올해는 일이 좀 있어서요. 혹시 이제 못 사요?”


“아니야 그래도 아직 많이 있어! 얼마나 필요한데? 아니 우선 그보다 내가 실한 놈으로 따올 테니까 맛부터 좀 봐봐.”


장인과 장모는 어색함을 누르고 예년처럼 편하게 그녀를 대했다. 그녀도 어색해하지는 않으며 자연스럽게 그들의 마음을 받았다.


“역시… 진짜 맛있다.”


그 여자는 과수원에 처음 왔던 것처럼, 아니 샤인 머스켓을 처음 먹었을 때처럼 자신도 모르게 밝은 미소와 눈물이 고였다. 장모는 그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그때, 장모의 눈에 그 여자의 손이 들어왔다. 그 여자의 오른손은 마지막 마디마다 반창고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손은 왜 그래?”


“그냥 좀 다쳤어요.”


그 여자는 장모의 질문에 조금 움찔하는 듯하더니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을 하고 샤인 머스켓을 먹었다. 장모는 밴드 붙인 손으로 포도를 따먹는 그녀의 모습이 괜히 짠하게 느껴져서 말없이 지켜보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구급상자를 들고 와서 안에서 밴드를 꺼냈다.


“밴드 갈자. 그거 포도 물 들어가면 더 쓰리고 아파. 보니까 방수밴드도 아닌데.”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 여자는 장모의 친절이 불편한지, 인상을 쓰며 거부를 했고, 장인은 괜히 잘 먹고 있는 사람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손짓으로 치우라고 했다. 하지만 장모는 그래도 마음이 쓰이는지 이미 꺼내놓은 방수밴드를 다시 넣지 못하고 그 여자 앞에 쓱 밀어주었다.


“그럼 다 먹고 집에 가서 갈아. 요즘에는 밴드가 참 잘 나와서 웬만한 건 밴드만 잘 갈아줘도 흉도 안남고 다 아물더라고, 이게 소독도 되는 거라고 하니까. 그냥 붙이고만 있어.”


그 여자는 장모의 마음이 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거절하지 않고, 가벼운 목례만 하고 그가 건네는 방수밴드를 가방에 넣었다. 그러고는 또 아무런 말도 없이 장인이 따다 준 커다란 샤인 머스켓 한 송이를 다 먹어 치웠고, 마지막 한 알까지 다 먹고 나서야 다시 말을 꺼냈다.


“저 이거 100 상자 맞춰줄 수 있으세요?”


“뭐? 100 상자?”


“언제까지? 이게 한 번에 100 상자는 못 나오는데, 다 익는 게 달라서.”


“한 번에는 아니어도 돼요. 대신 부탁을 더 드릴 게 있어요.”


“뭔데?”  


“혹시 택배로 발송도 되나요?”


“아. 이게 우리는 다 익은 다음에 따는 거라 과육이 약해서 택배는 안돼”


“그럼 혹시 직접 배달을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배달비는 넉넉하게 드릴게요.”


“배달? 어딘데? 한 군데로 가는 거야?”


“아니요. 100박스가 다 달라요.”


그 여자는 주소가 빼곡하게 적힌 메모지를 장모에게 전했고, 장모는 그 주소를 보며 깜짝 놀랐다. 대부분은 서울이었지만, 대구나 부산, 광주나 여수까지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지역도 다다르고 너무 먼데도 있는데?”


“예. 우선 제가 배달비 포함해서 박스당 10만 원씩 드릴게요. 부산이나 여주 같은 데는 부족하면 더 드리고요.”


장인은 순간 계산이 돌아가지 않았다. 샤인 머스켓의 가격에 배달료를 얼마를 받아야 하나? 기름 값이랑 톨게이트비는 얼마나 나오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하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금 샤인 머스켓 100 상자를 팔아서 1000만 원을 벌게 되는 것이었다. 배달은 얼마든지 저녁때라도 다녀올 수 있는 것이었고, 가족들한테 부탁을 해도 되는 것이었다. 그저 과수원을 하고 처음으로 거래해보는 금액이라서 장인과 장모는 얼떨떨할 뿐이었다.


“우선 1000만 원은 지금 바로 현금으로 드릴게요. 그리고 먼 지방은 따로 계산해서 더 드리고요.”


“아니야. 아니야. 아무리 먼데가 있다고 해도 서울이 거의 대부분인데, 한번 움직이면 하루에 10군데도 더 돌 수 있으니까. 우리가 이득이면 이득이지 더 줄 필요는 없어. 근데 이거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많이 쓰는 거 아니야? 포도로 1000만 원을 쓰는 건데? 선물하는 건가?”


“예 제가 꼭 인사를 드리고 싶은 분들이거든요. 마지막으로. 그래서 부탁드려요.”


그 여자는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고, 그녀가 말했던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실제로 가는귀가 밝지 않은 장인에게는 전혀 들리지도 않았다. 장모에게도 정확하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 단어를 못 들었다고 해도 그 말을 하는 그녀의 모습은 뭔가 쓸쓸하고 우울했다. 그들은 그녀의 분위기 때문인지 그녀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했고, 그녀가 바라는 대로 해주기로 했다.


“순서나 시간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샤인 머스킷이 다 팔리기 전까지만 상황이 되는대로 편하게 배달해주세요.”


그리고 그녀는 한 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을 장모에게 전했다.


“실은 이게 제가 거기에 계신 분들께 쓴 편지들이거든요. 번거로우시겠지만, 포장하실 때, 섞이지 않게 하나씩 넣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아. 예.. 알았어요.”


장모는 그녀가 하는 요청 하나하나가 모두 생소하고 어색했다. 몇십 년째 이곳에서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녀의 부탁은 모두 처음 경험해보는 일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쇼핑백 가득 담긴 편지와, 푸른색 파우치에 두툼한 5만 원짜리 현금 묶음을 담아 장모에게 건네고, 과수원을 떠났다.


“이거 아무래도 배달은 애들한테 시켜야겠지?”


“뭐. 주말에 알바하는 셈 치고 다니라고 하죠. 뭐.”


“그래, 그럼 내일 애들 좀 모이라고 해.”


“그래요.”


그렇게 그다음 날 과수원에는 온 가족이 다시 모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 새벽에 갑자기 발동된 장인의 호기심 때문에, 장인이 가족들에게 해야 할 부탁의 종류가 전혀 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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