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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권조 Apr 21. 2024

부산 가는 길 : 3일 차

용인 ▶ 안성

3일 차, 오전 7시 30분 정도에 일어났다. 3분이 넘도록 주절주절 떠든 영상이 남은 덕에 알 수 있었다. 구구절절 민망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그대로 옮겨놓을 정도로 넉살이 좋지는 못하다. 대강 어째서 부산으로, 그것도 걸어서 가는가 하는 이유에 대한 내용이었다.


한 번은 국내에 잔존한 성곽의 사진과 그 설명을 담은 책을 본 일이 있다. 대원사에서 1991년 발간한 『한국의 성곽』으로 기억한다. 부산의 금정산성이 다른 산성에 비해 남아 있는 부분이 많아 흥미를 가졌다는 모양.


그러나 8년 전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자니,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겠다 싶다. 달리 말하자면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아서는, 무엇에라도 성공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아마도, 용인시의 통일공원

영상에 등장하는 생선구이 백반전문 식당은 아무리 검색해도 인터넷에서 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지금은 남아 있지 않기에, 어쩌면 이 식당을 담고 있는 건 로드뷰와 이 글 외에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위협적인 포유류 × 2 (이)가 나타났다

도보여행을 다니며 개 때문에 곤란한 일이 종종 있다. 어렸을 적 개에게 종아리를 물린 이래로 재미난 먹잇감으로 전국에 소문이 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째 나만 보면 잘들 짖는다.


많이들 목줄 없이 다니고,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구는데, 그런 개와 나 사이에는 차도가 있는 일이 많다. 도보 여행을 하다가 낯선 개를 차에 치이게 하고 싶지는 않다.




부지런하게 걸어 용인 원삼면과 백암면 인근을 다녔다. 각각 원삼, 백암이 표시된 버스 정류장에서 찍은 사진이 정오와 오후 2시 정도에 한 장씩 남아 있다.


버스 정류장은 여러모로 좋은 휴식 장소다. 볕이나 비, 바람을 피하기 좋으나 무엇보다 적당한 높이의 의자가 있다. 짐과 신발을 정리하는 건 어디서나 가능하지만, 쪼그려 앉거나 한 발로 서서 무언가 하는 건 피로가 쌓인 상황에서 반길 일이 되지 못한다.

정확한 위치는 평생 모르지 않을까

논밭이 있는 국도를 따라 걸을 때면 탁 트인 전경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다만, 지역과 지역 사이에 건물보다 자연물 또는 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 자연스레 차가 달리는 속도가 빨라진다. 그러다 보니 가드레일에 바짝 붙어 걷는 일이 많아진다.

운전자 입장에서는 또 얼마나 성가셨을까

오후 4시를 조금 넘겨, 용인을 벗어나 안성에 진입했다.


당시 용인의 슬로건은 시옷을 한자 사람 인(人)과 비슷하게 쓰는 게 특징이었던 모양이다. 시내를 걸으면서도 저 슬로건을 몇 번 보았던 듯하다.

축소한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뒤쪽 녹색 표지판에 경기도 안성시가 표기되어 있다.

나는 57번 지방도를 따라 걸으며 원삼면에 들어섰고 318번 지방도를 따라 안성시에 진입해서는 17번 국도에 올라 용설 저수지 방향으로 걸었던 모양이다. 사진만 가지고도 이렇게 이동 경로를 추적할 있다니, 다행스러운 일인지 걱정스러운 일인지.


내게 있어 국도는 국가를 이루는 단위인 도와 도를 걸쳐 연결하는 길이다. 그러니 지방도는 도 안에서 시·군과 시·군을 잇는 길이다. 시도(市道) 또는 군도(郡道)는 시군 내의 구·동, 읍·면·리를 잇는 길이다. 정말 그러한지는 모를 일이지만.




여하간 나는 안성의 시도인 장암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는데 이미 오후 7시 접어든 시점이었고 주변에 숙소 같은 건 없었다. 


노숙이라면 이전 여행에서도 심심찮게 했으나 장거리 여행에서 최대한 숙소를 이용하고 싶었다.

그나마 사람도 차도 없어 다행

드문드문 주택이 있는 지역에 들어서자, 집집마다 개가 짖기 시작했다. 종일 걸어서 땀 냄새를 풍긴 때문인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먼 곳에서도 개가 짖었다.


문제는 그 소리를 듣고 외양간의 소가 운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다시 근처의 개가 짖는다. 이 과정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니, 주민들이 뛰쳐나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어떻게든 숙소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달리던 중 식당 겸 편의점을 발견했다. 실내 평상에 어르신 두 분이 앉아 계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는 모양

가게에 들러 길을 물을 때엔 무언가 구매한다. 당시에는 탄산음료를 꽤 많이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제를 하면서 주변에 모텔 같은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정확한 위치는 알지 못하셨는지 방향만 겨우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개 → 소 → 개 → 소로 이어지는 울음을 피해 걸음을 서둘렀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가게에서 들은 방향에는 숙박업소가 있었다.

아무리 급해도 사진은 찍는다

소는 꽤 늦게까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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