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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권조 Apr 21. 2024

부산 가는 길 : 4일 차, 낮

안성 ▶ 이천 ▶ 음성

예상보다 내용이 길어져 4일 차를 낮과 밤으로 나누었다. 시간으로 따지면 오후 4시를 기준으로 앞뒤를 나눈 셈이다.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발가락 양말을 늘어놓고 말리는 사진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숙소를 찾으면 무엇보다도 세탁을 했고 건조에 심혈을 기울였더랬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 제법 값을 치르고 얻은 경험이기도 하다.




처음 떠난 도보여행은 강원도 춘천에서 시작해 영월에 이르는 일정이었다. 여러모로 준비가 부족했는데, 날씨조차 알아보지 않았기에 첫날 저녁부터 쏟아지는 비를 맞아야 했다.


길에 버려진 우산을 주워다 쓰기도 했지만 막대가 부러진 것이었고, 차가 지날 때마다 뒤집어져 쓰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게다가 시야가 좁아지는 것이 불안해 결국엔 풀썩 젖은 채 간신히 숙소에 도착했더랬다.


카운터에 있던 사장님께 당신의 젊은 날 무전여행과 현대그룹에 근무한다는 아들 이야기를 한 시간 정도 듣고서야 객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숙박비도 결제했고, 무전여행과 도보여행은 다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조금 들었으나 굳이 따져 말하진 않았다.


젖은 옷을 벗고 물기만 닦아낸 채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야 옷을 말리지 않은 것을 떠올렸는데, 후끈하게 달궈진 장판 위에서 옷이 뽀송하게 말라 있었다. 단순히 운이 좋았고, 그 후로 세탁과 건조를 꽤나 우선하게 되었다.




브이로그의 꿈을 포기하지 못해 주절주절한 영상이 또 있었다. 이쯤 되니 과연 며칠 차까지 출발 전 브리핑 영상을 찍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오늘 며칠 째지? 네, 4일 차입니다. 내일까지 가면 이제 부안과 동일하게 최장기록이 되겠네요. 무인텔에 라면 있다 했는데 누가 다 챙겨가서 라면이 없어요. 아침을 좀 거나하게 먹어야겠습니다. 오늘 목표는 음성을 지나서 괴산까지 가는 게 목표입니다. 또 아슬아슬하게 음성에서 끊기면 잘 곳이 없어요. 그럼 안녕."


안녕은 무슨. 여하간 틈틈이 다니던 여행이었기에 여태껏 3박 4일이 최장 기록이었다. 당시에는 도대체 어쩔 생각으로 영상을 찍은 걸까? 어디 공개할 생각이었으면 세수라도 좀 하고 찍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순두부 찌개는 사랑과 동의어 관계에 있다.

평소보다 출발이 늦어 숙소 근처에서 11시 정도에 식사를 했다. 다른 손님은 없었다. 순두부찌개와 함께하는 브런치, 브런치에 어울리는 글일지도 모르겠다. 모텔에 라면이 없었다는 허탈감을 달래는 식사를 마치고 생수병에 물을 채워 떠났다.


영화나 기타 미디어 매체에서는 주인공이 하염없이 걸으면 배경음악이 깔리지만, 내가 걸을 땐 주로 "쏴아", "쿠구궁" 소리가 옆을 스치고 지나간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순서

왼쪽 아래 사진에는 새끼 양 모습의 석상과 그 아래 KEPA 라 쓰인 문구가 있다. 그 오른쪽에는 솟대처럼 생긴 조형물이 있고 그 아래 '게파'라는 글씨 그리고 알 수 없는 문구가 더 쓰여 있다.


걷다 보면 종종 이해하기 어려운 조형물을 만나곤 한다. 처음 라이온스 클럽, 로터리 클럽 조형물을 보았을 땐 꽤나 놀랐다. 곳곳에서 만나니 비밀 조직이라도 되는가 싶었다. 물론 이제는 그저 평범하게 반가울 뿐.


식사로부터 2시간이 지나지 않아 안성을 벗어나, 이천에 들어섰다. 안성과 이천은 시내를 들르는 일 없이 북부를 스치듯 지났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아쉬운 감이 있다.

바람개비까지 세트였던 것 같다

충청북도 곳곳에서 마스코트 캐릭터 조형물을 자주 보았다. 이제와 홈페이지에서 이름을 찾아보니, 고드미와 바르미라는 듯하다. 어찌 되었든 드디어 충청북도 음성군에 들어섰다. 음성이 초행은 아니었다.




이전에 청주에서 충주까지 가는 도보여행을 하던 중, 음성을 들른 일이 있었다. 피로를 이기지 못해 국도를 벗어나 읍내로 들어섰고 눈에 보이는 사우나를 찾아 들어갔다.


지도와 로드뷰를 참고해 떠올리기로는, 음성 종합운동장 근처의 라벤더스파가 아닐까 싶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나이지리아와의 경기 즈음이었다. 날짜를 제법 정확하게 기억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당시에 손님이 없어 큰 욕탕을 홀로 썼다. 목욕을 마치고서 찜질방을 이용했는데 거기에도 다른 이용객이 없었다. 나는 수면용 토굴에 들어가 핸드폰을 충전하고, 지도를 보며 경로를 확인하다 잠에 들었다.


잠에서 깬 나는 어째 밖이 소란스러운 것 같아 토굴을 나섰다. 찜질방 가운데 텔레비전이 커다랗게 있었는데 그 앞에 열 명 정도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축구 경기가 한창이었고, 자연스레 나는 웅크리고 앉아 경기를 관람했다.


경기를 뒤집는 박주영의 프리킥이 터졌고, 사람들이 환호했다. 열광적인 분위기까지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서로 모르는 사이였던 모양이다.




틈틈이 지난 여행 이야기를 더하게 된다. 기존에 기록을 남겼던 싸이월드에 이제 접속할 수가 없어, 사진조차 확인할 수가 없다. 오늘의 교훈, 데이터는 백업을 철저히 하자.


충북 음성에 진입하기 무섭게, 금방 또 경기 이천에 진입했다. 도심과 도심, 터미널과 터미널을 다니는 길이라면 겪지 않을 일이다. 지역을 나누는 경계선은 네모 반듯하지 않고, 구불구불한 길을 걷다 보면 이리된다.


걷다가 덩그러니 놓인 건물을 보았다. 3층 정도로 규모가 있었는데, 검도관이었다. 가까이 주거지도 있지 않아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화장실이 개방되어 있었다. 그날 내내 감사한 마음을 품게 해 주었기 때문에 기억한다. 아침부터 자극적인 순두부찌개를 먹은 게 문제였을까.


그리고 건물 가까이 눈을 끄는 표지판이 있었다.


흔치 않은 경로 이탈(순서는 좌측 위부터 시계순)

사진을 정리하던 중 '영남길'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일종의 스탬프 투어 코스인데 당시에는 사진만 찍고 깊게 알아보지 않았는지 기억이 흐릿하다. 그 옆으로 어재연 장군 생가가 가까이 있다는 내용에, 잠시 경로를 벗어나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물론 이럴 때 마을 어르신을 만나 환대와 간식을 받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내가 '6시 내 고향'의 리포터가 아니란 사실은 첫 여행에서 깨달았다. 달리 생각하면, 초췌한 꼴로 터덜터덜 다니는 낯선 사람이 집 근처를 어슬렁어슬렁거리는데 경계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그러니 누구 눈에 띄기 전에 서둘러 다녀오는 게 상책이다.


어재연 장군 생가에서는 지붕의 이엉을 교체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주변을 찬찬히 둘러볼 여유는 없었기에 슬쩍 보고 말았으나, 제법 기억에 남는다. 초가집 지붕을 교체해야 한다는 사실을 저때에야 알게 된 것으로 기억한다.


재활용 아님

그리고 떠났던 이천을 다시 한번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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