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 구미
이전의 여행에서는 자정을 넘겨 숙소에 들어가지 못한 일이 종종 있었다. 애초에 노숙을 하는 일도 있었으니 깜짝 놀랄 일도 아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노숙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인지, 일정이 늦출 수 없다는 급박함인지 자정이 넘도록 걸은 일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래도 상주 시내에 들어서 숙소에 들어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새벽 1시가 되기 전에 숙소를 찾았다.
사진의 글자가 뚜렷하지는 않지만, 상주 발리모텔로 추정하고 있다. 지도로 보았을 때 위치가 그렇고, 소개 사진에서 비슷한 구조를 발견한 때문이기도 하다.
본격적인 8일 차에 앞서 식사를 했다. 오전 11시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브런치.
숙소를 나와서는 중앙로를 따라 동쪽으로 걸었다. 사진의 식당, 철로 등이 그대로 남아 있어 지도로 위치를 찾기가 수월했다.
걸어서 여행을 다니면, 버려진 물건에 눈이 가고 발이 멈추는 때가 종종 있다. 청주에서 충주로 여행하던 때에는 빨래판, 스케이트 보드가 덩그러니 있어 한동안 보았던 기억이 있다.
어쩌면 지금 여행을 떠나도 다시 만나는 물건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걷던 중에 사드(THAAD) 배치를 반대하는 현수막을 몇 번인가 보았고 오후 4시 정도가 되어서, 낙동사거리에 에 이르러 낙동강 그리고 이를 가로지르는 낙단교를 만났다.
15일 차 여행의 중간 정도인 셈인데 이때부터 여행에 큰 변화가 생겼다.
4대 강 자전거길에 발을 디뎠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7일 차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는데, '4대 강 자전거길'이라는 안내판을 따라 포장되지 않은 그저 자연 상태의 길을 걸었던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자전거길에 오른 것은 당장 포장이 된 것에 만족했거나, 차량과 가까이 걷는 일에 피로감을 느낀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니는 사람이 적었다. 놀랍도록 적었다. 덜 알려진 탓이었을까. 여하간 꽤 너른 공간을 혼자서 걸을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15일 차에 가까울수록 글을 쓰는 체력도 당시와 마찬가지로 고갈되는지, 생각을 덜 하고 손가락 움직이는 대로 쓰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오후 8시를 앞두고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분명 걸으면서 차량을 신경 쓸 일이 없었다. 문제는 그런 차량을 위한 가로등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저 캄캄한 강변을 걸을 뿐이었다.
사진 촬영만으로도 배터리가 부족한 휴대폰을 조명으로 쓸 수는 없었다. 손전등과 모자에 부착하는 조명이 있었기에 그나마 걸을 수 있었다. 아마 위 영상은 주변의 어두운 정도를 기록하기 위해 손전등을 끄고 촬영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오후 9시가 되어갈 즈음에 조명이 있는 곳을 만났다.
자전거길 스탬프를 찍는 곳이 아니었을까 싶다. 공원 같은 공간이 조성되어 있기도 했고, 음료수 자판기와 화장실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판기 앞에서 혼자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사람을 만났다. 불안한 마음에 길을 물었는데 '구미까지 얼마나 남았나요?'가 아니라 '자전거길을 벗어나려면 많이 남았나요…?'의 뉘앙스로 기억한다. 대답은 '저런… 안됐지만 많이 남았단다' 정도로 기억한다.
당시 내 관심사는 자전거길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왼쪽에는 차로와 그 너머 넓게 펼쳐진 논밭이 있을 뿐이었고 오른쪽은 낙동강으로 막혀 있었다. 그저 앞으로 쭉 가느냐 뒤로 돌아가느냐의 선택만이 남아 있었다.
화장실 안에 들어가 웅크리고 낮까지 기다리는 건 잠깐 고민하고 말았다. 휴대폰도 전원이 꺼지지 직전이라, 사진이나 영상 촬영을 최소화한 상황이었다. 당장 날이 밝는다고 길이 짧아지거나, 숙소가 나올 것도 아니었다.
되돌아가기엔 애매하게 많이 온 다음이었다. 돌아가는 길에는 또 언제 숙소를 만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계속 걸었다. 상주 진입에 이어 또다시 자정을 넘겼다.
이 여행에서 심리적으로 가장 내몰린 순간이 언제인가? 했을 때, 이날 외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또 길바닥에서 8일 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