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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권조 May 06. 2024

부산 가는 길 : 9일 차

상주 ▶ 구미


9일 차 자료는 사진 9장과 영상 1개가 고작이다. 그마저도 자전거길 위에서 찍은 건 사진 1장과 영상 1개가 전부다.


뒤늦게 사진첩 만드는 기분으로 시작한 글이지만, 그저 글자만 늘어놓는 9일 차를 맞았다.


자전거길을 벗어나, 구미에 이르기까지 인상에 남은 3가지가 있다. 시간 순서도 자세한 상황도 흐릿하지만 굳이 나누자면 끊어진 길과 아무도 없는 캠핑장, 자전거 데크길이다.




홀로 걸어서 여행을 다니는 사람은 낯선 길에 익숙하거나 의연하리라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내 기준에서는 그렇지 않다. 되레 포장되지 않거나 끊어지고 굽은 길을 보면 겁부터 먹게 된다. 버스로 한 정거장 거리에 불과한 만큼을 되돌아 걷는 걸음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포장된 자전거길을 멀쩡히 걷던 나는 대뜸 흙길을 만났다. 역시나 오른쪽은 강, 왼쪽은 도로인 것은 그대로였다. 아마 낙동강의 지류로 실개천이 흐르는 곳이 아니었을까. 그런 탓에 흙을 덮고 길을 새로이 만드는 공사를 하는 모양이었는데, 중요한 건 무언가 진행이 되기 전 내가 다다랐단 점이었다.


가장자리에 풀이 높게 자란 길을 걸으면서 두려움보다는 의심이 커지기만 했다. 이 길이 맞나? 사실 내가 멀쩡한 길로 들어서는 갈래를 못 보고 지나친 건 아닐까? 길은 나들목처럼 차도 아래를 지나고 오르내리면서 이어졌다. 아케이드 게임을 하는 듯 구불구불 이어져 있기도 했다.


의심을 떨치고자 멀리 손전등을 비추어보았던 기억이 있다.




다시 포장된 도로에 오른 나는 캠핑장을 맞닥뜨렸다. 지도로 보았을 때엔 '구미 해평 청소년수련원 야영장'이 아닐까 싶다.


설치된 텐트가 하나도 없었고 주변이 조용한 데다가 빛도 보이지 않았다. 여태껏 영업을 중단한 휴게소도 보았고, 폐허가 된 건물도 종종 보았으나 늦은 밤 캠핑장은 처음이었다. 괜히 으스스한 분위기가 돌았다.


뒤늦게 지도를 보니, 구미 해평 청소년수련원이 따로 있고, 그 근처에 야영장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니 관련자는 수련원에 있었던 것 아닐까.


캠핑장을 멀리 돌아서 지나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캠핑장을 지나 걸었다. 기억이 분명하지 않지만, 철문을 끼익 하고 밀고 들어간 기억이 있는 듯하다. 캠핑장을 가로지른 것인지, 아니면 옆으로 끼고 걸은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당연하게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밤늦게 걸은 다음 또다시 자정을 넘어 걷는 중이었고, 바짝 오른 경계심은 사소한 것에도 쉬이 반응했다.


뭐, 결국 무서웠단 얘기다.




어느 정도 구미에 가까워졌단 생각이 들었을 때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쏟아지는 비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마음이 급해지기엔 충분했다.

손전등을 켜고 걸으면 이런 느낌

터덕터덕 걷던 중에 벤치를 만나 앉았다. 숨을 돌리면서 휴대폰을 한참이나 보았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 마음이 좀 차분해질까 생각했다. 물론, 그럴 시각이 아니었다.


그리고 서너 명이 자전거로 길을 지났는데 잔뜩 웅크려 몸을 숨겼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사람들이 나를 꽤 섬뜩하게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결국 어디에도 전화를 걸지 않고 다시 걸었다.


그리고 강변이 아니라 낙동강 위를 지나는 자전거 데크길이 나왔다. 발을 디딜 때마다 끼익 끼익 소리가 났다. 길에서 수면까지 높이가 제법 되어 보였고,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에 자칫 사고가 나면 구조를 받을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이전에 홀로 걷는 여행에서는 종종 노래를 불렀다. 사방이 탁 트인 도로에서는 최소 반경 2~3km 안에 아무도 없는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런 탓에 여행을 떠나는 이유를 '자유로움'에서 찾기도 했다. 그러나 구미에 들어서는 길은 그런 마음과는 꽤 거리가 멀었다. 무언가에 쫓기듯 도망치면서 입을 꾹 다물고 숨는 과정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런 것이 인생이느니 하는 멋들어진 말은 정리하지 못했다.


그리고 새벽 1시, 산호대교에 도착했다.

가로등과 도시 불빛이 이렇게 반가웠던 적이 또 있었을까

산호대교를 건너자마자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구미공단이라는 말도 얼핏 들어본 정도였던 나는 가득한 공장에 눈이 번쩍 뜨였다.


숙소나 식당은 보이지 않았고, 넓고 낮은 공장이 쭉 이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놀랐던 건 빗물받이로 새하얀 김이 솟고 있는 것이었다. 추정하건대 역할을 다한 냉각수 따위가 아니었을까 싶다. 낙동강을 끼고 공장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일까?


여하간 다리를 건너고 1시간이나 더 걸어서야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식당 위층에 있는 곳이었는데, 건물 입구에 사람이 한 명이 있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계단을 올랐다.


처음 도보 여행을 떠났을 때 낯선 곳에서 만난 어르신이 내게 보인 경계심 가득한 얼굴을 나도 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저 지인들과 술 한 잔 마시고, 잠깐 바람을 쐬던 입장에서는 유난스러운 일이었을 테다.


그렇게 모든 여유를 쏟아낸 나는 그렇게 9일 차 아침을 맞았다.




그야말로 건조장

9일 차에는 이동하지 않았다. 서혜부가 온통 새빨갛게 쓸려서 걸을 수가 없었다. 지난밤에는 급한 마음에 참고 걸었으나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9일 차는 평범한 구미 관광 ♪ 이 될 뻔했으나, 했던 일이라고는 '롯데리아에 가서 햄버거 사 먹기' + '누워서 아파하기'가 전부였다.


병상 셀카 아닙니다.


종일 누워서 지낸 채 9일 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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