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숲, 주말농장

이 또한 지나가리라

by 새벽노을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조금씩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제한 사항이 많이 남아있었다. 대중음식점에서 식사하는 것도 최대한 자제하고, 가게 되더라도 가림 판을 사이에 두고 한 테이블씩 떼어 앉아야 했다. 해마다 열리던 지역 특산품 및 꽃 축제 등의 행사도 3년째 열리지 않고 있었다. 축제는 없어도 때가 되면 어김없이 꽃은 피어나기에, 꽃을 보러 올까 봐 지자체에서는 주차장을 폐쇄하고 인파가 몰리지 않도록 여러 방안을 모색하는 등 코로나 전파 예방을 위해 고심해야 했다.

재난 영화에서나 볼법한 일들이 현실이 되면서 사회가 혼란스러웠고 직장 생활은 물론 모임이나 자기 계발 등의 일상생활에도 많은 제약이 따랐다. 그런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평소 건강했던 일반인에게도 우울감이나 무기력증 등 심리적 불안 증세가 많이 나타난다는 소식이 잇따랐다.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였으니…….



그 시기 나는 직장에서의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감이 더욱 가중되고 있었다. 조직의 불합리함과 어둡고 긴 터널 속 같은 조직의 내일에 맞서 꾸역꾸역 버텨오다 더 이상 지탱할 힘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직장에 대한 강한 자긍심과 사명감만으로 그것들을 지켜내기엔 내가 너무 지쳐있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심장이 널뛰듯 팔딱거리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곤 했다. 난생처음으로 정신의학과 병원을 찾게 되었는데,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나에게 일명 ‘연예인 병’이라고 알려져 있던 ‘공황장애’라는 낯선 진단이 내려졌다.

공황장애라는 어색한 옷이 나에게 걸쳐졌고 선글라스를 끼고 헤드 셋을 귀에 걸고 세상과 단절한 채 나만의 세상에 갇혀버렸다. 공황장애와 함께 찾아 온 대인기피증으로 그 누구와의 만남은 물론 전화 통화도 불가능했던 나는, 아마도 코로나 시기라서 더 힘겨웠을 테다. 경치 좋은 곳에서 말이 통할만한 사람들에게 하소연이라도 한바탕 하고나면 괜찮아졌을지 모르겠지만, 코로나로 인해 관계가 축소되고 모두가 힘든 시기였기에 이저저도 조심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그 때 유일하게 숨통 트이게 한 곳이 있었는데, 그곳은 바로 몇 년 묵혀만 두었던 주말농장이었다. 맞벌이 하느라 항상 바쁜 일상에 지쳐있었고 집에서 거리가 있어 마음의 거리까지 생기다 보니 첫 해에만 농작을 조금 시도했다가 내버려 두었던 주말농장! 그 주말농장이 진가를 발휘하며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이었다.


그곳엔 작은 농막¹이 하나 있었는데 6평의 비루한 컨테이너에 불과하였지만 당시 나에겐 5성급 호텔보다도 아늑하고 마음 편안해지는 최고의 휴양소가 되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듯 답답한 가슴이 그곳에 가면 어느새 뻥 뚫리고 실타래처럼 엉켜 온갖 잡음으로 꽉 차 있던 머릿속이 잔잔한 호수같이 고요해졌다. 처음 마주한 ‘낯선 나’에겐 그렇게 새로운 세상으로 다가온 주말농장과 농막이 있었다.


남편이 밭을 일구고 풀을 뽑고 심어놓은 농작물들을 돌보는 동안 내가 하는 일이라곤 그저 캠핑용 의자에 앉아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본다든가 하늘의 구름을 쫓아 시선을 따라가는 일 또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내어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갈 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맞이해주던 꽃과 농작물에 살포시 미소를 지어주는 일이 고작이었다.


이른 봄에 뿌린 씨앗이 천지개벽하듯 꿈틀꿈틀 새싹을 밀어 올려주고, 햇볕과 바람의 손길로 열심히 줄기를 내고 풍성한 잎을 만들어 몸집을 성장시키고 있었다. 어느 샌가 꽃망울이 툭 터지고 벌에게 꿀을 내어준 꽃은 이내 탐스러운 열매를 보여준다. 가히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바쁜 일상에 치여 계절의 변화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달려온 날들 속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 같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한주의 기다림 끝에 다시 찾은 주말농장에선 내가 없는 동안 도대체 어떤 마법이 부려진 건지……. 또 다른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폭풍 성장해 있는 아이들을 보면 그동안의 고뇌와 번민이 한 순간에 사르르르 녹아내려 무장해제 되는 것이었다. 이 신기루 같은 자연의 오묘함을 집에 와서 다시 생각하면 그것이 꿈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아득하기만 했다. 주말농장에 다녀오면 집에서 기다리는 한주가 어쩜 그리도 길기만 한지 농장의 아이들 소식이 궁금해서 안달이 났다.


어린 시절 소꿉놀이할 때 계란이라며 요리했던 것이 개망초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주말농장 덕분이었다. 봄에 어린 싹을 데쳐서 나물로 무쳐 먹어도 좋고, 말렸다가 묵나물로 먹으면 쌉소롬하면서도 봄과 여름이 함께 섞여 있는 특유의 향이 그 어떤 나물보다도 또 별미였다.

주말농장이라고는 하나 남편 혼자 농사짓기엔 버거워서 농작물을 심지 않은 곳까지 잡초를 베어내기엔 일손이 부족할 때가 많았다. 흔하디흔하고 마구 자라기에 남들은 일찌감치 뽑거나 베어 버리는 망초대를 그냥 두었더니 6월이 되자 개망초꽃이 농장 한편에 가득 피었다. 하얀 눈송이처럼 자잔하고 순박한 작은 꽃들이 어우러져 마치 몇 년 전 유명 배우 커플이 결혼식을 올렸던 강원도 어느 시골의 메밀꽃밭 같았다. 잡초라 보면 눈에 거슬리는 잡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테지만, 여느 들꽃을 보듯 여리여리한 소박한 꽃에 고운 시선을 내어주니 낭만 가득한 메밀꽃밭으로 보였던 것이다.

“고운 눈으로 다시 보니, 꽃이 아닌 것이 없더라!”

작고 수수한 들꽃을 좋아하는 나를 위한 작은 꽃밭이 전혀 의도치 않게 만들어졌고 나는 또 여린 꽃이 주는 변하지 않는 진리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그들과 함께 서서히 치유되고 있었나보다.



내 인생의 위기였던 그 힘든 시기에 주말농장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다만, 확실한 건 위기의 시간 속에 나에게는 엄마의 품같이 포근하고 따사로운 주말농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얼었던 땅이 녹고 새싹이 움트고 여린 줄기가 굵어지고 열매를 맺고 그리고 또 다시 희망의 씨앗을 내어주는 그런 주말농장이 말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시간만 정지된 듯 멈춰있는 시기가 있고 한두 번 인생에 큰 위기가 있기 마련이다. 거기서 결코 헤어나지 못할 것 같은 무게에 짓눌려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은 지나가고 있었다. 그 시간들을 ‘어떻게든’ 지나왔기에,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빛 일지 몰라도) 오늘 이렇게 빛날 수 있는 것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되뇌던 솔로몬의 인생 명언,‘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코로나라는 생각지 못했던 난국에서도 봄은 있었고 꽃은 피고 지기를 반복했다.

올해는 일찍부터 추워져서 겨울이 더 길게만 느껴진다. 한겨울의 추위가 닥쳐오다가도 갑자기 봄날의 기운을 느끼게도 하고 그러다 다시 강추위가 이어지고……. 2월에 때 아닌 매화꽃이 피는가 하면 폭설이 내려 종종 걸음을 걷게 한다. 종잡을 수 없는 올 겨울의 날씨다. 이런 기후 위기 속에서도 봄은 어김없이 올 것이고 나는 또 설레는 마음으로 봄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나의 아름다운 주말농장에는 얼어붙은 땅속 깊은 곳에서 새로운 희망의 씨앗이 꾸물꾸물 움틀 채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


[각주 1-농막 : 농지법에 의거 농사를 지을 때 농자재 및 수확물 보관, 농사 중 일시 휴식 등을 위해 설치되는 시설로 연면적 20㎡(약 6평) 이하로 제한됨]








* 글과 캘리그라피의 저작권은 작가(새벽노을)에게 있습니다
* 불펌금지 * 수정금지 * 상업적사용금지
* 2차가공금지 * 무단도용금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