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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희 Nov 11. 2022

나는 하양 너는 노랑


땅바닥 풀을 뽑다가 구부러진 손이 멈추네

질경이 앞에서 바닥을 평생 기어 다닌 기억들은

하얀 알갱이 


빌어먹을 그때도 질경이만 남아있는 봄날이었지

우리가 걷던 길은 애기똥풀 꽃으로 무성했지 


잡초의 근성도 모르고 시집 온 엄니는

꽃 모가지만 비틀어 잘랐지 


어떤 어긋남에 대해

손가락 끝에서 노랑꽃까지

발버둥 칠수록 느낌은 이상하고 슬펐지 


생활 앞에서 의지를 재발견이라도 하듯

어느 때보다 더 잡초를 밟으면서

밤낮없이 숟가락질만 했지 


질경이처럼 모질 긴 삶이 생각나지 않게

내 곁을 사납게 떠돌던 것들이

맹렬하게 들고 일어났지 


젠장, 그것이 울게 내버려둔 게 맞을 거야

손안에 움켜쥔 꽃이 빠져나갈까봐

둥굴레뿌리 같은 손가락을 쓰다듬어 주면서 


손가락과 풀뿌리는 동급이라고

비오는 날 잡초를 붙잡고 울었지 


딸아, 너만은 이렇게 살지 말거라 하는 말에

수없이 주저앉아서

구부러진 손마디가 무언지도 모르고 중얼거리다가 


흰 뼈 드러내며 서로를 품고 살아온

저 길에서 지금도

잡초가 무성해질 뿐일 텐데 


서로는 받은 몸을 무시하는 죄를 지은 것이여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맨발에서 흩어지지도 않는 발자국으로

침대에서 흰 비늘로 바닥에서 노랗게 우는 것이네 


우리는 그냥 아득한 몸짓으로

흰 침대도 노랑 바닥도

그렇게 죽음도 물고 늘어지는 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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