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 11시,
나는 갑자기 강아지의 여름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얘가 너무 더워하는 것 같아..."
그러고는 한 손에 바리깡, 한 손엔 애정 반, 충동 반,
그렇게 털 밀기 작업에 돌입했다.
그런데...
바리깡이 배터리가 거의 없었다. 아 몰라, 그냥 해.
그날 밤 나는 바리깡 충전 30%, 나의 인내 70%로
새벽 4시까지 강아지의 털과 씨름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에 나오니 마치 밤새 무장봉기를 준비한 것처럼
빨래들이 바닥에 널려 있었다.
나는 이 집의 자랑스러운 빨래 담당이다.
근데 오늘은 그 빨래들이 빨래가 아니라, 혁명군 같았다.
"빨래여, 진정해라..."
마음을 달래며 식탁에 앉았더니, 이번엔 싱크대 속 그릇들이 나를 노려본다.
"아니, 어제 먹었으면 씻어야 할 거 아니야?" 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피곤했다. 이 세상 모든 물건이 나한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심지어 바리깡도 “나 때문에 밤샜지?” 하고 씩 웃는 것 같았다.
그래도, 샤워 한 번 하고, 빨래 개고, 설거지 끝내고,
드디어 커피 한 잔 내려 소파에 앉았을 때.
나는 이어폰을 끼고 정훈희 & 송창식의 〈안개〉를 틀었다.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
생각하면 무엇 하나 지나간 추억
그래도 애타게 그리는 마음
뚜루 뚜루루루 뚜룻뚜
뚜루 뚜루루루 뚜룻뚜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그 멜로디가 귀를 감싸는 순간, 내 안에 있던 성난 빨래의 분노가
조금씩 정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김훈의 『칼의 노래』 첫 장을 다시 펼쳤다.
"그래도 바다에서는 늘 먼 섬이 먼저 소멸하고, 먼 섬이 먼저 떠올랐다...
나는 적의 근거를 알 수 없었고 적 또한 내 떨림의 깊이를 알 수 없을 것이었다...
그들의 언어가 없었다...
죽은 말의 눈동자에 비치는 내 봉두난발을 들여다보았다."
어제와는 전혀 다르게 읽혔다. 문장마다 내 나름의 해석도 달았다.
그들의 언어가 없었다...(현실에 닿지 못하는 말들. 무의미한 말의 폭력)
죽은 말의 눈동자에 비치는 내 봉두난발을 들여다보았다.
(타자의 시선을 통한 자기 인식. 죽음 앞에서 드러나는 존재의 민낯)
도대체 첫 장을 며칠을 읽고 있는 건지... 글이 벽돌처럼 무거워서 도무지 넘어가기가 힘들다. 어떻게 저렇게 꾸욱꾸욱 누루고 눌러 글을 쓸까?
그 문장 "죽은 말의 눈동자에 비치는 내 봉두난발을 들여다보았다"는 바리깡에게도, 빨래에게도, 그릇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 같았다.
그날은, 그냥 그런 날이었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인데—
커피 한 잔, 안개 한 곡, 그리고 칼 한 줄이
나를 다독여주었다.
나는 오늘도 무너질 뻔하다가,
그냥 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