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나는 이제 나랑 잘 지내보기로 했다

by 이한

나는 어느 날 문득, 내가 좀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이가 중년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정작 나한테 박수 한 번 제대로 쳐준 적 없다는 걸.


가만 보니, 나는 나한테 너무 야박했다.


잘했을 땐 “에이, 뭐 그 정도는…”

못했을 땐 “이게 다 너 때문이야!”

힘들 땐 “참아. 다 그런 거야.”

울고 싶을 땐 “그럴 시간이 어딨어?”


이 정도면 전생에 나랑 무슨 원한이라도 있었나 싶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제부터 나는 나랑 잘 지내보기로 했다.

하루에 세 번, 아무 이유 없이 나한테 말 걸기로 했다.

“야, 잘 버텼다. 역시 넌 대단해.”


심지어 엘리베이터 거울 보다가 혼자 윙크까지 해봤다.
근데 눈에 뭐 들어간 줄 알고 다시 깜박거렸다.
나는 역시, 나랑 어색하다.


그래도 연습 중이다. 잘 먹었으면 칭찬하고,

늦잠 자도 “훌륭하다, 충분히 쉬었다!” 하고,
가계부 마이너스 나도 “와, 이 와중에 살아 있는 거 진짜 천재다.”
이런 식으로.


그리고 요즘은, 밤에 잠들기 전에 내 마음속에서
나와 내가 조용히 대화한다.

“오늘 힘들었지?”
“…응.”
“그래도 잘했어.”
“…응, 다음엔 좀 덜 힘들게 살아보자.”
“그래, 근데 내일 카드값 빠져나가는 거 알지?”
“… 알지. 그래도 잘 자자.”


나는 이제 나랑, 적당히 웃기면서 잘 살아보기로 했다.


그날은, 그냥 그런 날이었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인데—
내가 내 편이 되기로 한 첫 번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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