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 중독자다.
뭐, 진단을 받은 건 아니지만
매일 글을 쓰지 않으면 어딘가가 고장 난 기분이 든다.
사람들이 일기장을 먼지 쌓인 서랍에서 꺼낼 때,
나는 그걸 새벽에 뜨는 달처럼 매일 들여다본다.
그리고 거기에, 침묵을, 존재를, 구원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진지한 단어들을 쏟아낸다.
가끔은 스스로도 생각한다.
“너무 거창한 거 아닌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주제들 안에 있는 나는 항상 무너진 사람이 아니라
버티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꼭 거대한 주제가 있어야만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날따라 진지한 생각이 나지 않았고, 세상은 그저 비가 오고 있었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었고,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순간을 쓰고 싶었다.
글로 써놓고 보니, 나라는 존재는 꼭 ‘큰 질문’ 안에서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이런 사소한 하루들 속에서도 살아 있더라.
그래서 나는 조금씩 바뀌었다.
구원을 향한 글에서, 구원받는 글로.
큰 이야기를 증명하려 애쓰기보다 지금 내 눈앞의 컵, 구겨진 티셔츠, 눅눅한 날씨,
그리고 조금 웃긴 내 감정을 기록하는 게 오히려 더 나를 숨 쉬게 했다.
그건 더 이상 ‘글을 잘 쓰는 법’이 아니라
‘내가 존재하는 방법’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글 중독자다.
그런데 이제는, 단어 몇 개로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사람이다.
그 말이 조금은 가볍고, 조금은 웃기고, 조금은 투덜대도 괜찮은 사람이다.
그날은, 그냥 그런 날이었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리고 그걸 이렇게 써놓고 나니, 오늘도 구원받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