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요셉

– 팔린 자가 구원의 문을 열다

by 이한

요셉은 태어날 때부터 선택된 자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열한 형제 중 아버지 야곱에게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고, 특별한 채색 옷을 입었으며, 미래를 암시하는 꿈을 꾸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과 재능은 오히려 형제들의 미움을 샀고, 결국 그는 은 20개에 팔려 이방의 노예로 전락합니다.


그곳에서 요셉은 또다시 억울함을 겪습니다. 주인의 아내에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며, 반복된 격변 속에서 자신을 변호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잊힌 존재가 되어 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반복해서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 창세기 39장 2절, 21절

하나님의 동행은 요셉의 운명을 반전시키는 근거였습니다. 그는 감옥에서도 사람을 섬겼고, 타인의 꿈을 해석하며 여전히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결국 바로의 꿈을 해석하면서 그는 애굽의 총리로 세워집니다. 한때 종이었던 자가 제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진정한 위대함은 그의 지위가 아니라, 해석의 능력에 있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 창세기 50장 20절


이 말은 단순한 용서가 아니라, 고난의 신학적 재구성입니다. 요셉은 과거의 억울함을 '하나님의 섭리'로 해석했고, 그 해석은 자신만이 아닌 민족 전체의 생명 구원으로 이어졌습니다.


신약의 스데반은 이 요셉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지시고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그를 애굽과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 — 사도행전 7장 10절


요셉은 고난을 통과한 해석자였으며, 섭리를 읽는 영적 독해자였습니다.


신학적 시선에서 본 요셉

칼빈은 <창세기 주석>에서 요셉의 생애를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요셉은 사라진 듯 보였으나, 하나님의 뜻은 그의 침묵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인간의 시선이 머물지 못하는 곳에서, 하나님의 섭리는 조용히 역사를 짓고 있었다.”
— 칼빈, <창세기 주석> 창 37–50장


디트리히 본회퍼는 <옥중서신>에서 자신의 투옥된 삶을 요셉의 감옥과 겹쳐 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고통을 허락하심으로 우리가 그분의 뜻을 묵상하고 해석하게 하신다. 침묵은 무(無)가 아니다. 그것은 해석을 요구하는 하나님의 언어이다.”
— 디트리히 본회퍼, <옥중서신-저항과 복종>


요셉의 삶은 하나님께 ‘붙잡힌 삶’이자, 섭리를 읽어낸 해석신학의 전범입니다.


철학과 문학에서 본 요셉

요셉의 고백은 실존주의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키르케고르는 <두려움과 떨림>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은 부조리 속에서 도약하며,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하나님 안에서 재구성할 때 발생한다.”


요셉은 바로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고통을 견디고, 과거를 재해석하며, 도약하는 믿음으로 이해되지 않는 고난을 은혜의 언어로 번역한 사람이었습니다.


한편, 토머스 만은 그의 대작 <요셉과 그의 형제들>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요셉은 축복받은 꿈을 가진 자였고, 동시에 고통받은 실존이었다. 그러나 그는 잊지 않았다.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요셉의 생애는 우리가 겪는 고난과 억울함이 반드시 불행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해석되지 않은 고난은 상처이지만, 해석된 고난은 소명이 됩니다. 그리고 요셉처럼, 우리는 그 고난을 통해 누군가를 구원하는 문이 될 수 있습니다.


C.S. 루이스는 <고통의 문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통은 하나님의 메가폰이다. 그것은 잠자는 세상을 흔들어 깨우기 위한 하나님의 음성이다.”



그렇기에 요셉처럼 해석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붙잡히는 순간에도, 버려진 듯한 감옥 속에서도,
“이 또한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신뢰를 품고 살아가는 것—그것이 곧 신앙입니다.


결론 — 해석하는 신앙, 구원을 여는 언어

요셉의 삶은 한 마디로 말하면 “해석의 삶”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억울함과 고난을 단순한 피해의

서사로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것을 하나님의 선한 손 안에서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형제들에게 팔렸을 때, 그는 피해자였습니다. 감옥에 갇혔을 때, 그는 억울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그는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이 나를 먼저 보내셨다”라고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게 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 창세기 45장 7절


요셉은 단지 미래를 해석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과거를 은혜의 언어로 다시 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고통의 순간을 다시 바라보며,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의 그림자를 읽어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믿음의 능력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기적을 바라는 신념이 아니라,

과거의 고통과 현재의 기다림 속에서 하나님을 ‘해석해 내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 해석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구원의 문을 여는 일로 이어져야 합니다.


C.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은 어둠 속에서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걸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이해해야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해에 이른다.”


요셉은 그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끝내 팔린 자가 구원의 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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