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야곱

- 잡는 자가 이스라엘이 되기까지

by 이한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붙잡는 자"였습니다. 형 에서의 발꿈치를 붙잡고 태어났고, 그 이름처럼 남을 추월하고, 넘어뜨리며 살아가는 인생이었습니다.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권리를 샀고, 아버지 이삭을 속여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으며, 결국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도망쳤고, 외롭고 차가운 광야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들었을 때, 하나님은 오히려 그 야곱에게 사닥다리를 내리셨습니다(창세기 28장). 그 사닥다리는 죄 없는 자가 아니라, 속이고 도망친 자에게 임한 은혜의 사다리였습니다.


본회퍼는 이 장면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격을 갖추었을 때가 아니라, 전혀 자격 없을 때 내려오신다.”
— 디트리히 본회퍼, <나를 따르라>


하나님은 야곱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라반에게 속임을 당하게 하시고, 결혼과 노동, 부의 축적, 자식 문제 속에서 삶이라는 연단의 광야를 오래 걷게 하십니다. 라반에 대해 잠깐 얘기를 해 볼게요.

야곱은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칩니다(창세기 28장~29장). 거기서 그는 라반의 딸, 라헬을 보고 한눈에 반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봉사하리이다.”
— 창세기 29장 18절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해 7년을 봉사하지만, 라반은 첫날밤에 언니 레아를 대신 들여보내고,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해 또다시 7년을 더 봉사해야 합니다. 총 14년. 사랑을 위해 견뎌낸 세월. 그 뒤에도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노동 착취를 당하며 약 6년간 재산을 모읍니다. 합하면 약 20년의 시간이 라반 아래에서 야곱의

‘갇힌 인생’이었던 셈이죠. 이 시기는 야곱의 ‘붙잡히는 인생’, ‘자기 꾀에 스스로 얽매이는 시절’이자, 하나님이 그를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빚어가시던 과정의 일부였습니다. 야곱은 한평생 남의 것을 쥐려는 자였지만, 인생 말미에 다다라 하나님께 붙들린 자로 변해갑니다.


얍복강의 밤 — 정체성의 심연과 대면

야곱의 삶에서 가장 결정적인 밤은 얍복강에서 하나님과 씨름한 밤이었습니다.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 창세기 32장 26절


이 장면에서 야곱은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이나 꾀로 축복을 얻지 않으려 합니다. 그는 상대가 하나님임을

알면서도 놓지 않습니다. 부러진 고관절을 안고서라도 끝까지 매달립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에게 새 이름을 주십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하리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 창세기 32장 28절


이스라엘(Israel) —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여기서 ‘이겼다’는 것은 하나님의 싸움에서 인간이 승리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칼 바르트는 이 장면을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야곱은 그날, 하나님을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항복함으로써 이긴 것이다.
그의 패배가 곧 그의 승리였다.”
— 칼 바르트, <교회 교의학 III/3>


얍복강은 요르단강 동쪽 지류로, 현재 요르단 북부 지역의 자르카 강(Zarqa River)에 해당합니다.

성경에서 창세기 32장, 야곱이 가족과 재산을 앞세워 보내고 홀로 남아 씨름한 그 장소가 바로 이 얍복강가입니다. 이곳은 지리적으로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의 경계 지점이며, 신학적으로는 야곱의 정체성이 완전히 ‘이스라엘’로 재편되는 전환점이 됩니다. 야곱은 얍복에서 외적 갈등(형 에서의 분노), 내적 두려움(자기 꾀의 한계), 그리고 영적 위기(하나님과의 씨름)를 모두 경험합니다. 이 장소는 그래서 우리 모두가 삶에서 마주하는 ‘경계선’, 즉 내가 누구인지 다시 질문받는 자리, 붙들고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도 하나님을 붙잡아야 하는 자리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현대 철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은 “주체는 상처를 통해 태어난다”라고 말했습니다. 얍복강에서 야곱은 고관절이 부러지는 물리적 상처, 그리고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냐?”라는 존재적 질문 앞에 정직하게

‘야곱’이라 답해야 하는 자기 고백의 상처를 경험합니다. 그제야 그는 진정한 주체, 곧 하나님 앞에서 다시 태어난 이스라엘이 됩니다.


신학자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은 말합니다.

“야곱은 얍복에서 자신을 포기함으로 하나님께 받아들여진다. 그때 비로소, 그는 복의 통로가 된다.” — <Genesis: Interpretation Commentary>


신약은 야곱을 자격으로 가 아닌 은혜로 택함 받은 자로 기억합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고, 선이나 악을 행하지도 않은 때에
하나님의 택하심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 로마서 9장 11–13절


이 구절은 쉽게 오해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 이전에 사랑을 시작하신다는 은혜의 선언입니다.
야곱은 도덕적으로 완벽해서 택함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존재조차도 하나님이 써 가시는 은혜의 서사가 되는 것이죠.


우리는 누구나 야곱입니다. 붙잡으며 살아갑니다. 사람의 인정, 안정된 미래, 관계의 확신, 신앙의 보장…
그러나 야곱의 인생이 이스라엘이 되어간 여정은 결국 하나님께 붙들리는 과정이었습니다.


C.S. 루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 자신이 되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진짜 ‘자기 자신’은 그분께 항복한 이후에만 드러난다.”
— <순전한 기독교>


야곱은 도망치던 자에서, 붙잡는 자가 되었고 결국 붙들리는 자, 그리고 복을 흘려보내는 자로 완성되어 갔습니다. 야곱의 이름은 더 이상 사기꾼이 아니라, 하나님과 겨루어 항복한 자, 새로운 정체성으로 불리는 사람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는 잡는 자에서 하나님의 사람,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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