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건넌 스님, 세계를 품다 –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by 이한

1. 스님의 발아래, 실크로드가 있었다

8세기 초, 한반도에서 출발한 한 스님이 있었다.
그는 무려 4년간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여행했고, 그 기록은 훗날 실크로드 문명의 숨결을 생생히 전하는 사료로 남는다. 그의 이름은 혜초(慧超). 그가 남긴 여행기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은 중국도, 인도도 아닌, 한반도인에 의해 기록된 최초의 세계기행문이다.


2. 해양을 넘어 세계로 나간 불교

많은 이들이 실크로드 하면 육로만 떠올린다. 하지만 혜초는 통일신라의 선단 기술과 항해력을 바탕으로 해양로를 따라 인도로 향했다. 그는 바다를 건넜고, 히말라야를 넘었으며, 수많은 왕국과 사원, 언어와 문화를 접하며 한반도 불교가 세계 속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지를 몸소 확인했다.


3. 혜초의 눈에 비친 ‘세계’란

<왕오천축국전>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그는 각 나라의 정치 체제, 민중의 생활, 종교의 실천과 차이를

기록했다. 그 속에서 불교가 다양한 문화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관찰하고, 하나의 진리가 어떻게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지는지를 고민했다. 그가 세계를 설명하며 남긴 문장은 유명하다. 이 한 문장은 혜초가 세상을 바라본 좌표축이었다. 오늘날 지구본을 돌리며 대륙을 인식하는 우리와 달리, 그는 자신이 살아온 반도와 그 주위를 둘러싼 강대국들을 ‘세계의 구성 요소’로 여겼다. 지금 기준으로는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인도와 아랍, 중앙아시아, 지중해 세계까지 다녀온 그가 자신의 세계를 ‘왜, 백제, 고구려, 당’으로 요약했다는 건 놀라운 축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그 시대의 세계 인식이자 정체성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민족과 문화, 정치를 기준으로 자신이 속한 질서와 외부 세계를 구분했다.
혜초가 자신이 속한 문명의 영역을 중심에 놓고 주변을 구성한 방식은 자문화 중심적 인식이라기보다
정체성의 지도를 그리는 방식이었던 셈이다.


동쪽으로는 왜, 남쪽으로는 백제, 북쪽으로는 고구려, 서쪽으로는 당나라가 있다.


물론, 이 문장이 말하는 ‘고구려’는 당시 존재하지 않았다. 혜초의 시대는 고구려 멸망 이후, 통일신라의 전성기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며, ‘고구려’라는 문화적 기억을 지리적 개념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는 ‘나라의 경계’보다 ‘문명의 연속성’을 중시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4. 신라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

혜초는 자신을 ‘동방의 불자’로, 그리고 ‘세계 속의 순례자’로 인식했다.
그가 남긴 기록은 단순한 민족적 자부심을 넘어서, 지식과 신앙, 실천이 결합된 동아시아의 지성의 전형을 보여준다.


5. 혜초가 남긴 질문

혜초는 묻는다. 진리는 어디에 있는가? 모든 나라가 자기 방식으로 진리를 말할 때,
우리는 무엇을 기준 삼아 살아야 할까? 그의 여정은 하나의 대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진리를 향한 여정 자체가 이미 해답이었다는 것이다.


6. 우리는 혜초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세계화의 시대, 자기 문명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남을 만나는 태도

신앙이란 믿음의 문제일 뿐 아니라, 관찰과 이해의 실천이라는 통찰

고정된 국경이 아니라 흐르는 문명으로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


7.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

혜초는 세계를 정복하지 않았다. 그는 세계를 기록하고, 경청하고, 껴안았다.
그의 발걸음은 군사의 발자국이 아닌, 질문하는 이의 고요한 발자취였다.
한반도 동남쪽 끝에서 출발한 작은 스님 한 사람.

그는 문명의 경계를 허물고, 세계의 중심을 이동시킨 사람이었다.

그리고 천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가 남긴 <왕오천축국전>이라는 발자국을 다시 읽는다.
이제는 묻는 쪽이 우리 차례다. 나는 무엇을 향해 걷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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