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골물과 화엄의 세계 – 원효와 의상이 남긴 질문들

– 신라 불교는 깨달음의 방식부터 달랐다

by 이한

불교는 고요한 사색의 종교라고들 한다.

하지만 신라에서 불교는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다시 보는 방식이었다.

통일신라가 외형의 통일을 이뤄가는 동안 정신의 세계에서는 두 명의 사상가가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며,
신라인의 삶에 전혀 다른 깨달음의 지도를 그려주고 있었다.

그들은 함께 길을 떠났고, 서로 다른 자리에서 멈췄다.
그 이름은 원효와 의상이다.


1. 신라 불교, 다른 문으로 들어가다

인도의 붓다, 중국의 선승, 그리고 신라의 원효와 의상.

불교는 나라를 건너올 때마다 그 땅의 언어, 문화, 정치를 입었다.
신라 불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신라는 자신만의 불교를 만들었다.

기복이 아니라 사상, 관념이 아니라 실천, 특히 통일이라는 새로운 질서 속에서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신라인들만의 방식으로 답하려 했다.

그 중심에 의상은 구조를 그렸고, 원효는 그 구조를 걷어냈다.


2. 해골물을 마신 사람 – 원효

원효는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불경을 공부하러 떠났고, 길을 가다 어느 동굴에서 잠이 들었다.
밤중에 목이 말라 물을 마셨고, 아침에 보니 그것은 해골 바가지에 고인 물이었다.

놀라 뱉은 그는 그 자리에서 깨달았다고 한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 것이다.”
“진리는 먼 곳에 있지 않다.”

그래서 원효는 당나라 유학을 포기한다.


이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그가 불교를 이해한 방식은 분명히 달랐다.

원효는 ‘일심(一心)’을 말했다. 모든 것이 하나의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가르침이었다.

그는 절에 갇히지 않았다. 거리로 나갔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미친 사람인 척하며 노래하고 춤췄고, ‘무애(無碍) 행자’라 불렸다. (무애: 거리낌이 없음)

깨달음은 사원의 경전 속에 있지 않다. 그는 그렇게 불교를 대중의 삶으로 끌어내렸다.


3. 화엄의 구조를 세운 사람 – 의상

의상은 끝까지 길을 갔다.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신라 불교의 이론적 기둥이 되었다.

그가 세운 사원은 부석사이고 화엄경의 사상을 신라에 체계화했다.

화엄의 세계는 복잡하다. 모든 존재는 서로 영향을 주고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하나가 전체이고 전체가 하나다.


의상은 이 세계를 수학처럼 정교한 사상 체계로 설명했다. 그는 수도사이자 설계자였고,
신라 불교를 정치와 권력의 구조 안으로도 들여왔다. 화엄은 질서와 조화의 사상이었다.

통일신라의 정치 이념과도 닮아 있었다.


4. 그들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원효는 사람 속으로 걸어갔고 의상은 사상 속으로 걸어갔다.

원효는 무너진 틀에서 자유를 찾았고, 의상은 틀 속에서 우주를 보았다.

원효는 ‘마음’을 의상은 ‘구조’를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둘 다 신라인의 내면에 질문을 던졌고, “너는 어떻게 깨어 있을 것인가”를 물었다.


5. 우리가 오늘 배울 수 있는 것

“진리는 멀리 있지 않다. 그러나 멀리까지 걸어가야 그것을 아는 사람도 있다.”

원효는 그렇게 돌아왔고, 의상은 그렇게 갔다.

신라인은 이 두 길을 모두 품을 수 있었기에, 싸우는 힘만이 아니라 사유하는 힘도 가진 민족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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