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도는 단순한 이사가 아니다. 권력의 중심을 바꾸는 일이다.
역사는 전쟁보다 수도 이전에 더 진심이다. 나라를 옮기는 것보다 수도를 옮기는 일이 더 어렵다.
국경은 칼로 바꿀 수 있지만, 중심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렇기에 천도(遷都)는 ‘결단’이며, ‘새로운 서사의 시작’이다.
고구려의 수도는 본래 어디였을까?
고구려는 건국 당시 수도를 졸본 → 국내성으로 옮긴 뒤, 400년 가까이 만주의 중심부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장수왕은 아버지 광개토대왕의 죽음 이후, 수도 국내성을 떠나 남쪽, 평양으로 향한다.
그것은 단순한 위치 이동이 아니라 고구려가 새로운 중심 국가로 변모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왜 평양인가?
지리적 장점
- 한반도 중심에 가까워 남진정책에 유리
- 비옥한 토지와 교통 요충지
- 문화 전파와 정치통합에 유리한 공간
정복의 상징화
- 평양은 한때 백제의 영역이자 한사군(낙랑)의 중심지였다
- 그곳에 수도를 세운다는 건 “고구려가 이 땅의 새로운 주인이다”라는 강력한 메시지
정치적 안정과 전략적 전환
- 북쪽은 이미 광개토대왕이 장악해 두었고
- 이후 고구려는 한강 유역까지 진출하며 중원 질서에 편입된다
- 수도 이전은 그 변화의 기점이었다
천도는 기억의 축을 다시 짜는 일
장수왕은 단지 공간을 옮긴 것이 아니라 기억의 서열을 바꿨다. 국내성은 고구려의 과거였다.
초창기의 질풍노도, 북방 민족의 기억이 서려 있던 땅. 하지만 평양은 그 과거를 “새로운 나라의 과거”로 재배치한 공간이다. 그곳에서 장수왕은 백제의 한성을 함락했고, 한반도 남부 세력들과 본격적으로 충돌했으며
당시 중원 세력들과의 외교 관계를 더욱 공세적으로 재편했다. 이제 고구려는 변방이 아닌 중심이었다. 천도는 바로 그 ‘중심국 선언’이었다.
수도가 바뀌면, 국가는 달라진다
장수왕의 천도 이후 고구려는 문화, 행정, 외교, 건축 모든 면에서 새로운 고조를 맞았다. 평양은 단순한 도읍이 아니라, 고구려가 자신을 다시 정의하는 중심 언어가 되었다. 역사는 질문한다. "왜 옮겼는가?"라는 물음은 곧, "무엇을 지키기 위해 옮겼는가?"라는 물음이 된다.
현대에서 수도 이전이 어려운 이유
1. 수도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상징의 집합체'
서울은 단지 행정 중심지가 아니라,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언론, 심지어 ‘기억’까지 몰려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수도를 옮긴다’는 건 삶의 방식과 권력의 구조까지 바꾸는 일이라는 점.
2. 기득권의 저항
수도를 옮긴다는 건 곧 기득권의 지도를 다시 그리는 일이다. 자본, 정보, 언론, 정치의 중심이 바뀌는 걸
기존 권력들이 쉽게 수용하긴 어렵다.
3. 시민적 정서와 정통성의 문제
국민들 대부분이 ‘우리 수도는 서울’이라 생각한다. 수도를 옮긴다는 건 곧, “나라의 중심 기억을 바꿔주세요”라는 요청인데, 그건 감정적·문화적 저항도 크다.
4. 막대한 비용과 수십 년의 시간
단순히 청사 하나 짓는 게 아니라, 도로, 철도, 교육, 주거, 상권, 행정 체계, 법령 등 전체 시스템의 이전이 필요하다. 수도를 옮긴다는 건 단순히 청사 몇 개 이전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세종시 사례가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
― 장수왕의 평양천도에서 지금 우리가 가져갈 질문들
1. 중심을 옮긴다는 건, 새로운 질서를 설계하는 일이다.
환경보다 중요한 건 ‘중심의 감각’이다. 우리는 언제든 다시 중심을 선택할 수 있다.
2. 이동은 과거를 잊는 것이 아니라, 재구성하는 것이다.
장수왕은 고구려의 과거를 버린 게 아니라 ‘현재’와 연결되는 방식으로 재배치했다.
3. 정복보다 더 중요한 건 뿌리내릴 장소를 정하는 일이다.
확장은 목적이 아니라 "어디에서 어떤 미래를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준비다.
4. 수도는 단지 땅이 아니라, 기억의 심장이다.
오늘날 수도 이전이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곳에는 행정보다 더 큰 ‘상징과 감정의 덩어리’가 존재한다. 장수왕은 그 심장을 옮김으로써, 고구려의 미래를 다시 썼다.
5. 내가 있는 자리가 나의 말이 된다.
수도는 말이 없지만, 그 자체로 모든 것을 말한다.
"당신은 지금 어디를 당신 삶의 중심으로 삼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