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쟁이와 야바위꾼
70년대에 초등학교에서 기억에 남은 가장 즐거운 날은 소풍과 운동회, 방학이었다.
소풍은 새벽부터 김밥을 어마 무시하게 말아 재끼던 어머니의 큰 손에 척척 여섯 식구의 입과 가방에 들어가 사라지며 경쟁하듯 먹던 김밥 꽁지로 시작되었다. 온 집안이 잔치하듯 참기름 냄새가 고소하게 퍼지고 부엌에서 냄새로 도시락으로 쌓여 있었다.
김밥 도시락과 과자, 음료수를 가방에 담고 집을 나선 하늘도 맑고 파래서 기가 막히게 좋은 날이었다. 이 기분은 학교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져도 좋았고 출발해서 걷는 동안에도 좋았다. 옛날 소풍은 대부분 잠실 주변의 선능, 뚝섬, 어린이 대공원 등으로 갔는데 인원이 너무 많아서 가까운? 곳은 모두 일렬로 걸어서 이동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왕복 몇 시간을 걸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막상 도착하면 점심 먹고 조금 놀다가 다시 집으로 출발해야 하는 소풍이었다. 어머니회와 반장 부반장 어머니들은 선생님들 도시락까지 들고 따라왔는데 그때 어머니들도 함께 걸어서 이동을 했고 무거운 짐은 머리에도 이고 오셨었다. 자리를 깔고 식사를 대접하는 선생님들의 메뉴는 김밥, 통닭, 잡채와 전, 과일과 냄비의 닭볶음탕도 있었고 커다란 수박을 담당한 분이 신문지로 싸놓은 식칼로 수박을 자르기도 했다.
학생들이 소풍을 가면 어떻게 알고 왔는지 주변에는 상인들이 가득했는데 현란하고 마음을 뺏는 물건들이 너무 많아서 구경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삐 소리 나며 불어 재끼는 나팔과 뱅뱅 돌아가는 팽이, 줄줄이 늘어나는 젤리와 불량식품들, 빨대로 바람을 불어서 크게 만드는 본드 냄새나는 껌 등등. 그 속에서 엄마가 주신 돈은 충분하지 않았는데 내 마음을 뺏은 것은 커다란 사탕 잉어였다. 잉어 주인아저씨는 모여든 우리에게 네모가 그려진 천이 위아래로 붙어 있는 작은 나무판을 보여주며 바늘을 위에서 아래로 통과시킬 때 네모 안에만 들어가면 사탕 잉어를 준다고 하셨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내 손에 든 돈은 사라지고 우리는 아무도 네모를 통과시키지 못했다. 어른들이 말하던 야바위꾼이 이런 것이었나. 눈물이 날만큼 속상했지만 아저씨는 단호하게 우리를 쫓아냈고 나무판과 바늘의 비밀은 한동안 알지 못했다.
나는 그 와중에 바닥에서 종이돈 오백 원을 주웠는데 나에게는 눈물이 쏙 들어갈 만큼 큰돈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누가 볼까 봐 무서워서 돈을 들고 선생님과 어머니들이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오백 원을 들고 갔다. 착한 어린이는 돈을 들고 신고를 하면 상을 받는다고 배웠기 때문에 나는 오백 원을 신고하면 내 것이 되거나 포상금을 주실 줄 알았다. 그런데 무심히 보면서 칭찬도 하지 않은 선생님은 '어, 알았다'하시며 자기 주머니에 넣고 가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도덕 시간에 착하고 정직하게 살라고 가르치시던 선생님이 경찰 아저씨한테 돈을 가지고 갈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아채고 얼마나 놀랐는지. 내 돈을 먹은 잉어 아저씨와 남의 돈이지만 내 것이 될 뻔했던 오백 원을 가로챈 선생님은 내 기억 속에 까맣게 남아버렸다.
어른들이라고 다 믿을 수는 없구나. 아까운 내 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