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집과 상갓집
나는 분명히 이번에는 엄마가 나를 데리고 시골 잔치집에 갈 줄 알았다.
왜 엄마는 맨날 언니나 오빠를 데리고 잔치집에 가는 것일까. 오빠가 충청도에 있는 시골집 잔치에 다녀와서 말린 상어포를 들고 약을 올리는 바람에 나는 눈물을 쏟으며 떼를 썼고 엄마에게 다음에는 꼭 나를 데리고 시골에 가겠다고 약속을 하셨다.
드디어 갑자기 시골집에 간다는 엄마를 따라나선 나는 너무 신나서 가는 내내 버스 창 밖을 바라보며 맛있는 음식을 먹을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엄마와 단 둘이 길을 나선 것도 형제가 많아 늘 북적이니 따로 엄마를 독점한 것 같은 기분에 더 들뜨게 했다. 시골에 가면 할머니나 친척들이 용돈도 주시겠지. 그런데 도착한 뒤에 시골집은 조금 이상했다. 지지미 냄새는 나는데 웃음소리는 없었고 다들 하얀 한복을 입고 일을 하시는데 하얀 천막 안에서 어이어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상갓집이었던 것이다. 엄마는 그래도 가겠냐고 하신 건데 어린 소견에 시골 간다니 무조건 간다고 했던 것. 엄마는 상복으로 갈아입고 머리에 하얀 나비모양으로 묶은 작은 천이 달린 머리핀을 머리에 꽂으셨다. 형님 저 왔어요. 동상 댁 왔는가. 엄마는 도착하자마자 부엌에 들어가 바닥에서 솥뚜껑에 들기름을 바르며 쪽파 지지미를 시작하셨고 이내 정신이 없으셨다.
물컹거리고 맛없는 파를 먹을 리가 없는 나는 먹으라고 할까 봐 눈치껏 부엌에서 멀리 도망을 쳤다. 급박한 부고에 직장에 다니는 아빠는 같이 못 오시고 언니랑 오빠는 장례라니 안 온 것이고 나는 졸지에 아무것도 모르고 나섰는데 쪽파나 먹을 수는 없었다.
쪽파 지지미를 피해서 마당 천막을 지나 한옥집 뒤로 숨었는데 우물가에서는 마침 남자 어른들이 돼지를 잡고 계셨다. 비명을 질러대는 살아있는 돼지 잡는 것을 처음 본 데다 이내 조용해진 돼지의 털을 긁는 칼의 석석거리는 소리에 쭈뼛거리며 뒤로 걸어 나와 백구가 있는 곳으로 가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시골집은 무서운 곳이라 아무렇지도 않게 돼지도 잡고 백구도 잡아먹겠지. 생각하니 조금 슬펐다.
어린 소견에 생각은 깊지 않았고 금방 다른 데 정신이 팔렸다. 불쌍했지만 꼬질꼬질한 시골 개 백구에게 오꼬시 과자를 몇 개 던져주고 이내 작은 툇마루와 연못, 화초에 나무가 예쁜 뒷마당으로 돌아다녔다.
기름을 발라 반질반질한 툇마루와 뒷마당은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비가 보슬보슬 오기 시작해서 툇마루에 앉아 물이 떨어지는 것을 구경하고 있다 보니 편안했지만 쓸쓸한 기분이 동시에 들었다. 아마 간간히 나던 향냄새와 곡소리가 더 그렇게 느끼게 해 준 것 같다.
어렴풋이 곡소리가 창호지 문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보니 왕할머니가 돌아가신 방 앞이었던 것 같았다. 오히려 쓸쓸했지만 마음이 차분해지고 무섭지 않았다. 가끔 어린아이답지 않다고 엄마가 싫어했어도 그날 주인을 잃은 툇마루와 비는 나에게 상갓집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할머니는 비가 오면 뒷문을 열고 비가 오는 것을 지켜보셨을까. 비가 오는데 우산은 없고 집을 둘러 뱅 돌아서 한 바퀴를 돌고 보니 앞마당 가운데 마루에서는 여자 어른들께서 종이꽃을 펼쳐놓고 상여 꽃을 만들고 계셨다. 같이 만지작거리며 연꽃 색이 분홍과 흰색이 어울려져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눈앞에 보이지 않아서 나를 찾아 나선 엄마에게 붙들려 부엌에서 쪽파 지지미를 먹어야만 했다. 역시 파는 맛이 없고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엄마에게 나중에 듣고 보니 어린아이에게 상여 꽃을 만지게 한 어른들에게서 나를 구출하신 것이었다. 연분홍색 종이꽃이 얼마나 예뻤는데 엄마는 잘 몰라주나 보다 했다.
시골 장례는 길어서 우리는 하루인가 이틀을 더 지나고 나서야 집에 올라올 수 있었다. 장례가 끝난 뒤 시골 어른들이 싸 주신 떡이며 전 등을 싸들고 지친 얼굴의 엄마와 서울에 올라오는 내내 뒷마당에 매여 있던 멍멍이 백구랑 우물가의 돼지, 툇마루에 떨어지던 비, 상여 꽃, 향냄새 등이 번갈아서 떠올려졌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기억이지만 이후의 잔치나 장례는 기억에 남은 것이 거의 없다. 장례란 어쩐지 사진처럼 남아있는 시골집의 상가에 가족들이 모이고 지지미 냄새도 나고 며칠 동안 같이 슬퍼하던 모습으로 남아있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서 부고가 들리면 대형병원의 장례식장에 가서 부조금 내고 육개장 먹고 잠시 상주와 이야기를 나누고 이내 자리를 뜨는 인사치레 장례에 익숙해졌다. 충청도 시골집도 장례를 집에서 치르지 않고 장례식장에서 간소하게 장례를 치른다. 기억이란 미화되고 좋은 것만 남기지만 초등학교 시절의 왕할머니 장례는 잊지 못할 사진처럼 남아있고 나는 파지지미를 잘 먹는 어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