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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버진 바다로 간다

<에세이> 늙은 어부의 노래

by sunb

‘아버진 지금 바다로 간다.’

아이들에게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고 바로 전원을 껐다. 메시지를 받은 아이들이 전화를 걸어올지도 모르고, 통화하다 보면 구구한 말들이 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영문 모른 채 문자를 받을 아이들은 둘째와 막내이다. 큰아이는 군대에 있어 소식을 전할 수조차 없다.

흔들리는 배의 갑판에 서서 잠시 하늘을 우러러본다. 바다의 하늘은 에메랄드를 닮았고, 살갗을 스치는 바람은 시원하다. 그리고 코끝에 스미는 갯내음은 싱그러웠다. 그러나 내게 ‘바다의 낭만’을 즐기고 있을 여유는 없다.

KY○7호.

200t급으로, 어선치곤 비교적 큰 배란다.

똑같은 배 2척이 짝을 이루어 연근해에서 어로작업을 하는 ‘쌍끌이 저인망 어선’이다. 연근해라곤 하지만 멀리 동지나해까지 진출한다고 했다.

내가 타고 있는 KY○7호는 1호선. 수석 선장이 키를 잡고 있다. 그는 2호선인 KY○8호를 포함한 이 선단의 총 책임자이기도 하다. KY○7호에는 나 이외에 또 한 명의 새로운 사람이 있었다. 성이 배裵 씨인 30대 후반의 청년. 알고 보니, 초짜인 나와는 달리 그는 경력자였다. 사람들은 그를 ‘배 반장’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야말로 전혀 새로운 세상에서, 전혀 새로운 사람들과, 전혀 새로운 일에 적응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이고, 직책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소개해 주거나 인사를 시켜주는 사람도 없다. 어부 생활을 많이 한 배 반장도 이곳 새로운 환경이 낯설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문자를 보내놓고 뱃전에 기대어 서 있던 나는 그래도 선상 생활이 익숙해 보이는 배裵를 따라 선실로 들어갔다. 선실은 식당과 침실로 구분돼 있다. 식당을 지나 침실에 들어서니 출입문 쪽과 그 안쪽 두 줄에, 2개 층의 침상이 있다. 배裵는 출입문 안쪽 열 2층에 자기 침상을 먼저 정하고는, 내게 출입문 쪽 1층 침상을 가리키며 사용하라고 했다.

침상은 마치 토끼 굴 같았다. 겨우 쭈그리고 들어가 잠만 잘 수 있는 공간이다. 대단히 음습했고, 퀴퀴한 냄새가 비위를 거슬렀다. 깔려있는 매트리스를 들춰보니 밑에는 물이 흥건하다. 이런 곳에서 잠인들 올까?

컨설팅 회사에서 받아온 큼지막한 가방에는 매트리스와 얇은 이불 한 장이 들어있다. 아직은 여름인지라 이불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가방에서 매트리스를 꺼내어 기존의 매트리스 위에 겹쳐 깔았다. 매트리스 천은 순전히 화학섬유이다. 그것이 몸에 좋은 건지, 나쁜 건지를 따질 처지는 아니다. 가방에는 또 나일론 셔츠와 같은 속옷 몇 벌과 작업복, 면장갑과 양말, 우의와 장화, 슬리퍼 등 잡다한 생활용품이 들어있다. 품질은 매우 조잡하다.

컨설팅회사 담당자는 이 물품 대금으로 35만 원을 내야 한다고 했다. 첫 월급에서 공제되며, 적어도 열흘 이상 일을 해야 그 돈을 탕감할 수 있다고 했다. 만약 그 이전에 하선하게 되면 모자란 만큼의 돈을 물어내야 한다는 것. 침상 안쪽에는 미닫이문이 있는 조그마한 수납장이 있다. 집에서 가져온 배낭과 이들 물품을 쑤셔 넣어 정리했다.

내가 사용하는 침상 위 2층은 중국인 선원이 쓰는 모양이다. 침상 난간에 ‘중국’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씌어있었던 것.

짐을 정리하고 바로 선실 청소를 했다. 아마도 1년이 넘도록, 아니, 한번도 청소를 하지 않은 것 같다. 빗자루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헌 수건으로 먼지와 쓰레기 등을 훔쳐내었다. 시커먼 땟물이 수건을 적시었다. 수건을 빨아 닦으려 했으나 그만 두었다. 어디서, 어떤 물로 빨아야 할지를 아직은 알 수 없기 때문.

청소를 마치고 식당으로 나왔다. 식탁 의자에 배 반장을 비롯한 몇 사람이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배裵 반장이 “수고했다.”면서 “이제 그냥 침상에 누워 쉬세요.” 하고 말한다. 하지만 신입이 어찌 그런 안락을 누릴 수 있겠는가.

“잘 부탁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는 그들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이며 신고(?)를 했다.

그들은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의자라고 해야 판때기로 된, 긴 걸상(벤치)이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내 나이였다.

“나이가 어떻게 되능교?”

키가 작달막한 사나이가 물었다. 그는 약지와 새끼손가락 두 개의 끝이 잘려나가고 없었다.

“쉰셋입니다.”

“아따~ 그런데 그리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능교?”

“다들 그렇게 봅니다.”

나는 시치미를 딱 떼었다.

이곳으로 오기 전 컨설팅회사 관계자로부터 “누가 나이를 물으면 쉰셋이라고 하라.”는 지침을 받았기 때문. 그만큼 나이는 장애 요소였고, 중요한 잣대였다. 실제 나이보다 일곱 살이나 줄여 말했음에도 선원들은 하나같이 내 나이가 많은 것에 대해 매우 못마땅하다는 눈치였다.

“일이 힘든데 할 수 있겠능교?”

깡마른 체구에 머리를 묶어 기다랗게 늘어뜨린 사나이가 시니컬하게 물었다.

“뱃일이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잘 하겠습니다.”

나의 다짐에도 그들은 반신반의했다.

“이전에 60 먹은 아저씨가 왔는데요, 하루도 못하고 욕만 얻어먹고 배를 내려갔어요.”

“나는 아직 쉰셋밖에 안 됐는데요 뭐.”

“이제 한창 일할 나이네요~”

다소 인정이 많아 보이는, 몸집이 후덕한 사나이가 알았다는 듯 얼버무려 주었다.

내가 거듭 ‘쉰셋’을 강조하자 그들은 마치 내 실제 나이를 아는 것처럼 ‘60먹은 아저씨’ 이야기로 바짝 겁을 주었다.

그래, 내 나이가 어때서? 나는 지금껏 내 나이가 몇인지를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다. 왜냐면, 내게 있어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다음으로 관심을 보인 건 멀미였다.

“배멀미는 안 합니꺼?”

“배를 오래 타보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심하게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멀미하면 얼반 죽습니다. 그래도 많이 묵어야 합니다. 많이 묵고 견뎌내야지, 그렇지 않으면 일 못 합니더.”

역시 후덕한 체구의 사나이가 인정을 베풀 듯 말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내가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에 쏠려 있다. 아무래도 나이가 많아 보인 데다, 거기에 멀미까지 해대면 한 사람의 노동력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을 터. 게다가 내 체격과 외모로 보아 뱃일을 제대로 해낼 것 같지 않다는 우려에서이리라.

사실, 배멀미를 얼마큼 할지는 나 자신도 모르는 일. 예전 직장에 있을 때 한두 번 세미나 참석 등으로 제주도를 배편으로 간 적은 있다. 그때 멀미를 하지 않은 기억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처지는 그때의 호화여객선에 비할 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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