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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어부체험 르포- 에세이

by sunb

<늙은 어부의 노래>는 필자가 나이 60에 어선을 타고 망망대해에서 어로작업을 하면서 겪은, 일종의 어부체험 ‘르포르타주Reportage’ 이다.

회사에서 조기 퇴직(구조조정) 후 노가다 등 온갖 직업을 섭렵했으나 내가 원하는 만큼의 소득이 보장되는 곳은 없었다. 그리하여 생활정보지에 난 ‘어부 모집’ 광고를 보고 이에 지원했다.

어선을 타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나이를 속여야만 했다. 일반 선원의 나이는 45세 이하로 돼 있었기 때문. 하지만 청장년층의 기피로 어부를 구하기가 어려웠던 2000년대 초·중반기, 대부분 나이를 그리 문제 삼지는 않았다. 또 나이를 몇 살 줄이는 관행이 용인되었던 시기였다.

세상을 살다 보면 행복과 불행은 늘 겹쳐 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동전의 양면처럼. 특히 불행은 한꺼번에 오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필자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으니까.

아무 일도 없어 보였던 내게 닥친 불행은 아내의 사업실패로부터 시작됐다. 이로 인해 이혼했고, 곧바로 실직으로 이어졌다. 그 와중에 아들까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길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파산자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들 세상을 살아갈 희망이 있을까? 그러나 내겐 아직도 두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아버지인 이상은 그들에게, 그들의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아버지로 인해 아이들의 눈에 눈물을 보이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이것은 내게 주어진 숙명이었다.

그리하여 다양한 직종의 일을 닥치는 대로 했다. 에이전트agent가 돼 방문판매를 했고, 대형마트에서 하루 13시간씩 일을 하기도 했다. 또 수도관 매립을 위한 지름 80cm 강관 속에서 땅굴을 파는 노가다 일도 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노동 강도에 비해 소득은 턱없이 적었고, ‘정액 임금제’도 아니어서 대단히 불안했다.

해서, 소득이 훨씬 나은 것으로 생각되는 배를 타기로 한 것. 하지만 나이 60은 엄청난 장애물이었다. 결국, 나이를 속이고 바다로 갔다. 환갑에 200t급 어선을 타고 동지나해의 망망대해에서 고기를 잡았다.

하루 두 차례씩 그물을 치고, 올리는 일이 반복됐다. 그물이 갑판에 쏟아놓은 생선을 종류별, 크기별로 분류해 상자에 담았다. 이어 그 상자를 들어다 급속 냉동고에 넣어야 한다. 파도에 흔들리는 갑판에서 초짜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반복되는 과정에서 갈치 이빨에 손가락이 베이고, 가시에 찔린 손가락이 곪아 터지기도 했다. 또 고기는 없고 해파리만 그물 가득 담겨 왔을 때, 해파리 독에 노출되어 피부가 퉁퉁 부어오르기도 했다. 어디 그뿐이랴. 그물에는 늘 폐그물 등 인간이 버린 쓰레기도 함께, 그것도 잔뜩 올라오곤 했다.

뭍에서 그 많은, 힘든 일을 경험했다. 하지만 해상 경험은 참으로 버거웠다. 자칫하면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으니까. 고기 상자 무게는 20kg과 40kg 두 종류가 있다.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 이를 들어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고기 상자를 나르다 넘어져 가슴이 찧여 멍이 들기까지 했다.

나이를 속일 수는 있어도 세월을 속일 수는 없었다. 체력이 따라주지 않았던 것. 나는 바다로부터도 버림을 받을 위기에 처했다. 아니, 나를 버리는 것은 바다가 아니라 인간의 이기심이다. 그 조그마한 이기심에 굴복(하선)하고 말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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