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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사랑법 3

부모님의 사랑의 방정식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by 에이스

부모님께 반항하고

결국 원래 지내던 곳으로 타향살이를 다시 시작했다.


‘홀리몰리~

너무 신나는걸?

이제 내 멋대로 살겠어!

내 앞길에 방해란 없다!!!!‘



인생은 역시 예측불허

: 잘못된 일의 근원을 나로 갖지 말자,

착한 사람 콤플렉스 탈출!



그렇게 살다가 갑자기 부모님의 다급한 전화가 왔다.

부모님이 교통사고 당하셨다고,

차는 폐차직전의 상태라고…


동생에게 바로 전화해서

“엄마아빠 그래서 지금 어딘데?

많이 다치셨대?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사고가 난 건데? “

질문을 퍼부었다.


동생도 당장 알 턱이 없었다.

새벽에 다른 일을 하기 위해 나서던 부모님,

부모님의 외출도 모르고 잠을 자고 있던 동생.

동생도 얼마나 당황스러웠겠나.


부모님의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지 못하고,

옆에서 해결해주지 못하는 딸.

만약에 본가 근처에 있었더라면,

내가 다시 집을 떠나오지 않았더라면,

병원에 잘 모시고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죄책감이 물밀듯이 떠올랐다.


내 인생에 반항은 없었어야 했다,

왜 그랬을까,

고작 내 자유가 그렇게 중요했을까,

또 또 자책의 늪에 빠지던 찰나였다.


거의 매일같이 전화하던 내 소중한 친구가

너 또 자책하고 있지?

그게 왜 너 잘못이야,

어쩔 수 없는 사고였고,

네가 본가 근처였더라도 지금과 달라지는 건 없어.

그냥 병원 잘 가시라고 인사드리고 얼굴이나 뵙고 와 ‘

라며 자책하는 나를 다시 일으켜줬다.

그 한마디에 다시 기운이 났다.

(다시 생각해도 너무 감사해,

내게 이런 친구가 있다니 난 참 행운아야)


친구 말을 듣고 정신 차린 뒤,

부모님께

1. 큰 병원 가서 진료받기

2. 사고 보험접수하기

3. 차… 폐차시키기

4. 후유증 조심하면서 병원 정기적으로 가기


할 일들을 설명하며

침착하게 해결하자고 얘기드렸다.

다행히도 부모님의 사고는 컸음에도 골절 등의 진단까지는 아니었고, 후유증도 한방병원에서 침 맞고, 물리치료받는 수준으로 해결되었다.



지금이야 시간이 흘러 죄책감들이 정리되었지만,

그 당시의 나는

첫 직장을 가진 뒤 매일같이 아빠가 말씀하셨던

“딸아 아빠는 새 차가 갖고 싶단다^^”

라는 소원을 들어주지 않은 나 자신에 대해서 굉장히 질타하고 나쁜 말을 되뇌었다.

하지만 그 또한 나의 잘못은 아닌 거였다.

그저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너무 깊이 박혀있어,

나 스스로가 힘들었던 것뿐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멀리, 가끔, 그러나 가까이


부모님과의 갈등,

왜일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었다.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결국 다 비슷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 친구의 얘기에 공감했다.

“지금 20대 중반, 학교를 졸업하고 자기 인생을 시작하는 우리 나이라서 더 갈등이 고조되는 것 같아.

우리는 머리가 컸고, 부모님들은 우리를 아직 어린애로 보시잖아. 그런 시기인 게 아닐까?

그래도 결국 부모님들은 우리 편이시잖아,

우리도 이해해 드려야지 “


내가 반항하던 그 시기엔

세상에서 가장 미운게 부모님이었다.

나는 늘 부모님이 먼저였는데,

부모님은 늘 부모님이 먼저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지금 부모님의 모습과 행동과 말을 거리를 두고 보자면,

부모님의 사랑의 방정식이 참 어려웠던 것뿐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표현과

부모님이 생각하는 사랑의 표현이 어긋났었다.

그리고 그 엇갈림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랑의 방정식

1. 사랑=말, 표현에 비례
2. 사랑=행동에 비례
3. 사랑=지원(돈, 금전적 자원)에 비례하지 않음.

1.2번이 참 어렵다.

따뜻한 말, 따뜻한 행동이 낯간지러울 수 있다.

익숙하지 않고, 낯선 것들을 하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옛날 어른들은 참 무뚝뚝하다.

예의범절, 공손함을 중시하지만,

아랫사랑을 실천함에는 1,2번이 어려운 것이다.

자식들을 위해 돈을 버는 것,

자식들에게 집을 한 채 마련해 주는 것,

그런 헌신적인 사랑과 지원이 사랑이겠거니,

너무도 열심히 자신을 깎아내리면서까지 희생적으로 지원하면 자식들도 알아주겠거니,

그것이 부모님의 사랑의 방식이었다.


나는 마침내 부모님의 사랑방정식을 이해했다.


정작 도움이 필요한 순간,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
다독인다면 이 거친 세상을 나아가기 힘들 것이다.

혹시나 자식에게 실수를 했다면 과감히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도 부모로서의 위상에 반하는 행위이다.

부모란, 자식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하는 완벽해야 하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부모라고 완벽할 수 있나?

어른이라고 다 성숙한 어른인가?

A에선 성숙하더라도 B에선 미숙할 수 있지 않나?


이젠 이해했고,

이젠 상처라 여겼던 것이 아물었다.

그때의 기억을 돌이키는 것만으로도 울음이 차올랐던 때를 지나 이젠 단단해졌다.

오히려 더 강해졌다.


1.2번에 오류로 여겼던 것들은 3의 방정식을 거쳐

다시 쓰여 내게 돌아온다.

이젠 무슨 마음인지, 무슨 의도인지 이해가 간다.

서투르더라도 그 내면의 마음이, 사랑이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하니 상처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조금은 어려울 때도 있다.

그때는 다시 ‘멀리, 가끔, 가까이’의 방법을 쓴다.

한 친구말처럼 가족도 가끔 봐야 애틋하다던가



사회생활을 한 뒤 가족과 의절한 사람들을 보았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모든 사정을 헤아리긴 어렵지만,

지금부터라도 새 출발을 하길 응원한다. 마음속으로. 나도 새 출발을 했으니.



모든 사랑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저마다 상황이 달라도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이 있다.

“존중”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그를 온전히 사랑하는 것.

그것이 있다면 사랑의 방식이 저마다 달라도,

행복한 사랑으로 그려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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