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er
애스터로이드 시티를 보고왔다. 영화를 보고나면 보통 싫든 좋든 어떤 감상이 남는다.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싫었는지 좋았는지를 모르겠다. 1시간 30분이 넘는 시간동안 영화가 언제 끝나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 거지?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화면은 예쁜데 대사량은 왜 이렇게 많은건지, 하는 생각들이 연이어 찾아들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좋아하는 영화평론가의 영화 팟캐스트를 들으며, 그래 나는 아무것도 보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구나, 하며 털어버렸다.
현대미술을 볼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나는 이 그림을 왜 보러 왔는가. 이토록 이해가 되지 않는 그림들을. 제목을 봐도 설명을 읽어도 모르겠는 그림들을. 그런데 그런 감정을 즐기기도 한다는 것을 한참이 지나고야 깨달은 적이 있었다. 이해가 안 되어서 심지어 짜증이 나고 끝까지 다 봐야되는 건가 싶으면서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설명 한 줄 그림 한 구석이라도 더 들여다보려는 그 상태를, 어떤 경우에는 즐기기도 한다는 것을. 중요한 건 이해했느냐 이해하지 못했느냐의 경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실은 삶의 면면에도 그런 경험들이 있다. 분명 같은 언어로 심지어 같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전혀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다 공허함에 속이 느글거리는 경우, 도저히 상대방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되는 경우, 아무리 읽어도 깔끔하게 정리가 안 되는 경우, 몸을 계속 움직여도 뜻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경우.
친구에게 이해할 수 없으면 묘사해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도 그림도 글도 타인도 내 몸도. 이해할 수 없다면 묘사해보려고 해봐, 너가 가진 것들로. 답답하면 답답한 그대로, 명쾌하면 명쾌한 그대로, 잘 모르겠으면 잘 모르겠는 그 상태 그대로. 삶의 곳곳에 이목구비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찬찬히 스케치하는 방식으로. 그러다 선명해지는 것도 있고 영영 멀어지는 것도 있을 것이다. 예술은 내가 그런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시선을 어디에 두는가는 요가나 명상에서도 중요하다. 숨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마음에 시선을 두고 따라가세요. 이 자세에선 발바닥에 추가 매달려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힘껏 들어올리세요. 파워리프팅에서도 마찬가지다. 힘은 고관절에서부터 올라와야 하니까 그 부위에 집중하세요.
신경질 나고 그만하고 싶고 끝이 있을까 싶은 많은 것들에 시선을 가만히 두며 집중하는 게 결국 누군가를 잘 묘사하기 위한 연습이 될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생생하고 충만하게 차오른다는 것은 이런 기분이구나. 새삼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