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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구 Sep 02. 2023

매일을 다시 태어나기로

Power


인간은 다 똑같다. 사는 게 다 그렇다.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추워진다. 모두의 하루는 매일이 조금씩 다른데. 겨우 그딴 게 뭐라도 되는 것이냐며 한순간에 밀쳐내는 말들. 24시간 중 살아내고 기억하고 곱씹고 슬퍼하는 시간만이 결국 쌓이게 되는 것일텐데. 최진영 작가의 책 <내가 되는 꿈>에서 태희는 주어진 하루를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다가 이내 이런 말을 내뱉으며 사직서를 낸다. “부장님은 계속 그렇게 사세요. 짓뭉개고 깔보면서 아무에게도 존중받지 못하면서. 어디나 똑같다고 말하면서 이곳을 계속 지옥으로 만들면서.” 태희는 지옥에 방치되었던 스스로를 끌어낸다. 퇴사한 오늘의 태희는 어제와 내일의 태희와 다르다. ‘비는 비고 바다는 바다다. 섞인다고 하나가 되는 건 아니지.’ 지옥 같은 회사는 회사고 나는 나다. 지옥 같은 회사에 다니는 나라고 내가 지옥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지.


최진영 작가는 희망이나 꿈 같은 추상을 아주 구체적인 인물들의 말과 행동으로 내 눈앞에 성큼 들이민다. 더 나은 것은 있다고, 불행 재앙 지옥 증오 모욕감 같은 것들이 나를 망가뜨리는 것을 용서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지나는 이번이 마지막 식사가 될지도 모를 때 감자 한 알을 먹더라도 제대로 먹는 방식으로 (<해가 지는 곳으로>), 이나의 고모는 초라한 집을 과시 없이 내어주는 방식으로(<겨울방학>), 태희는 모욕감을 준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의 자동차 보닛에 똥을 싸버리는 방식으로(<내가 되는 꿈>). 어떠한 조건에서도 자신을 소중히 하는 바로 그 방식으로 다른 존재를 대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매일을 다시 태어난다. 옅은 미소를 짓게 하는 인물들에 마음이 쓰여 멍해지는 일은 분명 여러 번 반복해도 좋을 일이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최진영 작가가 세 권의 책을 소개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 중 한 권은 브라이언 그린의 <멀티 유니버스>였다. 이 책에는 끈 이론, 평행 우주, 다중 우주와 같은 개념들이 나온다. 내가 이 세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주 과학적으로 그러할 가능성이 있다면, 거의 무한한 우주 어딘가의 나는 이 세계의 내가 절망하는 동안 무언가를 사랑하며 경이로워 한다면. 그는 그런 상상을 하며 ‘허무를 잊지 않아 낙관’하게 된 것 같았다. 그리하여 더 담대하게 현재에 집중하는 인물들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무겁게, 유쾌하게, 아주 충동적으로, 후회도 하며, 그렇게 존엄을 잃지 않는다. 그런 태도로 스스로를, 주변을, 그 주변의 주변을 자꾸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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